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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실용의 가치는 정신이 깃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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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실용의 가치는 정신이 깃들어야 한다
  • 김재한 시사평론가
  • 승인 2008.06.18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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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키워드는 ‘실용’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실용주의’는 새 정부의 정책노선을 견인하는 동시에 그 성공과 실패를 가름할 핵심 강령으로 자리 잡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기자회견에서 “이념이 아니라 실용을 선택한 국민에게, 건국과 산업화·민주화를 넘어 경제와 삶의 선진화를 추구함으로써 위대한 대한민국을 열어갈 것”을 천명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시대정신을 ‘발전과 통합’으로 규정하고 “선진화를 통한 세계 일류 국가 실현”을 새 국가비전으로 설정했다.

이명박 정부는 ‘고품격 국가’를 지향하는 ‘화합적 자유주의’(Harmonious Liberalism)를 국정철학으로, ‘창조적 실용주의’(Creative Pragmatism)를 그 행동규범으로 설정했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에도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첫째, 실용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일관성에서 비롯된 신뢰, 민주적 절차 및 제도를 존중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광우병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한·미 FTA 합의 또한 국민들의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추진되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한다면 그것에 대한 국민적인 만족도 또한 높아지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하면 국민 다수로부터 신뢰와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면 그 정책 또한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용주의는 특히 현실 적응능력과 유연성이 뛰어나고 효용성을 창출하는데 유리하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가치판단의 기준을 유용성(有用性)에 둠으로 인해서, 자칫하면 도덕과 원칙을 무시하거나 실리주의와 편의주의에 빠질 위험성을 안고 있다.

실용주의적 사고는 대중들 사이에서 마치 ‘도덕과 원칙을 무시하고서라도 성공적인 결과를 낳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도덕과 원칙을 무시하는 ‘탈도덕적인 현실주의’는 탈법과 부조리를 조장하고 양산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질서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강자의 약자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함으로써 사회의 안정을 해칠 수도 있다.

실용주의의 문제점은 자칫 결과를 중시하는 데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결과만 중시하다보면 과정이나 절차가 무시된다. 중론을 모아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민주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다. 자칫 독선으로 흐를 수도 있다.

‘탈도덕적 실용주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원리와 원칙을 무시하고 효율성과 성과만을 중시할 때, 그 사회는 도덕 불감증과 안전 불감증에 노출되기 쉽다. 무엇보다 도덕과 원칙은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도덕과 원칙이 한낱 쓸모없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매우 유용한 가치임을 인식할 때 실용주의는 비로소 건강한 진보의 이념으로 다가오게 될 수 있다.

둘째,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별 의미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미 전 정권이며, 초야에 묻힌 사람이다. 그 또한 탈정치적인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국민들을 놀라게 한 것은 탈권위주의였다.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제자리에 돌려놓았고, 검사와의 대화와 같은 파격적인 소통도 시도했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솔직한 나머지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이념적 과잉’에 시달려 지쳐버린 대다수 국민은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선언과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태도에 반사적으로 신선함과 희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실용주의와 노무현 전 정부가 기치로 내걸었던 탈권위주의 공히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실용주의는 국민과 직접 소통을 하는 강점이 있으나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적으로 변화하게 되는 제도적인 취약성을 노출하고 있다.

셋째, 실용은 이익 위주의 경제논리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흑묘백묘(黑猫白猫) 논리로서는 안된다.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가 천박한 경제주의, 시장주의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경제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신이 살아야 하며, 문화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경제와 실용을 내세우고 있는 그 이면에 우리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안양과 일산의 어린이 유괴사건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이 어제 같은 데, 최근 대구에서는 집단 어린이 성 폭력사건이 일어나는 등 사회 전체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구호에 그친 지 오래이며, 버스와 지하철의 경로석은 그 팻말이 부끄러울 정도가 된 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노약한 어른들이 승차를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이들이 경로석 자리에 버티고 앉자 있는 것이 일쑤이다. 또한 지하철 또한 온갖 잡상인들의 천국으로 인해 출퇴근길에서 휴식이란 불가능한 상태이다.

지금 우리 대학에서는 실용을 앞 세워 인문분야가 쇠퇴 일로를 걷고 있다. 실용이 중시되면서 철학과 인문 분야 보다는 취업을 위한 영어교육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기본과 원칙을 가르치는 대신 부자학과 재테크를 가르치고 있다. 기초질서와 도덕 같은 것은 필요 없게 되고, 재테크를 잘해서 부자만 될 수 있다면 기본과 원칙은 무시해도 좋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실용과 시장 경쟁력을 추구한답시고 인문학의 많은 강의가 이미 폐지됐고, 일부 대학은 철학과를 아예 없애려고 한다. 이와 달리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는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다. 다 합쳐야 7000명이 안 되는 하버드 대학 학부생 중에서 수강생이 800명에 이른다는 기사가 새롭게 와 닿는다.

우리는 로마 멸망에서 미래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에서 언급한 것 처럼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계속 평화로울 수는 없다. 국외에는 적이 없다 해도 국내에 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이 접근하지 못하는 건강한 육체라도, 그 육체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내장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의미 있게 들린다.

‘정신이 무너질 때, 우리의 미래는 없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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