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47 (금)
[일요일만 대담하게] 합법화된 폭력성을 내재한 격투 스포츠, 과연 말초 신경만 자극하기 위한 것일까? 아님 비폭력 사회를 향한 또 하나의 발로(發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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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만 대담하게] 합법화된 폭력성을 내재한 격투 스포츠, 과연 말초 신경만 자극하기 위한 것일까? 아님 비폭력 사회를 향한 또 하나의 발로(發露)?
  • 양태진 기자
  • 승인 2022.09.19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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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의 시작과 끝을 잇는 주말. 앞뒤, 위아래 잴 거 없이 '대담'한 주제들을 선정해, 현재를 관통하는 역사 속 위대한 현인들의 살아있는 대담을 끌어내 보는 시간. 과연 그들의 결론은 무엇일까?

열정은 여러 형태로 표출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폭력에 기본을 두고 있는 격투기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거운 상황. 전 세계적인 열광은 과연 인간 본연의 화합을 도모하는 스포츠일 뿐인 것인지, 아니면 폭력을 부추기는 과거 인류의 잔재일 뿐인 것인지, 이에 대한 현인들의 생각을 들어본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양태진 기자)

격투 스포츠가 우리 삶의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한지도 꽤나 오랜 기간 흐른 지금, 예전 로마의 검투사들이 그랬듯, 원초적인 힘의 대결 만으로 우리에 갇힌 단 한 사람 만이 살아남는 경쟁은 인간 본연의 관심을 끌기 충분한 것이다.

영화 <글라디에이터>로 대변되는 잔인한 인간 역사의 한 페이지 일 뿐, 그런 과오를 반복하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바, 뭐 어쨌든 인류는 태초 이래로 여러 다양한 방식의 격투를 즐겼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 기정 사실인 것이다.

 

 

복싱을 비롯한 이종 격투기 스포츠 관련 사진.(상단)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의 한 장면 스틸 컷.(하단)(사진=IMDB)

로마 시대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현대의 모든 이들 또한 갖가지 형태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 시달림이란 부정적인 표현은 물론 불쾌하기 짝이 없는 폭력의 어두운 면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단지 폭력이 그 폭력성 안에서 부정적 결과만 초래하는 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어느 정도 필요해 보인다.

인간 내면에 자리 하고 있는 자기 보호 본능이라든지, 원초적인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과연 폭력적이라고 할 때, 이 폭력에 관한 부분은 여러 논란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물론이다. 개개인의 육체적 방어가 필수로 어필되어야 하는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고 하는 이들이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물론 그들의 생각도 일정 부분 맞다. 과거 원시 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폭력성은 미래를 지향하는 현재의 입장에선 적극 배제시켜 나가야 함이 분명 옳다.

 

 

 

[가상대담 | On Air] 

사회자 : 하지만, 육체적 폭력 외에 언어 폭력이라든지 다양한 폭력이 도사리고 있는 현대 사회를 비추어 볼 때, 단지 원시적 보호 본능 만을 퇴색시켜 나가야만 할지, 여러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육체적 빈틈을 최강의 방어 태세로 구축하여 나름 강인한 정신력까지 무장해 대결을 펼치는 격투기가 그 존재 이유를 갖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데요. 그럼 먼저, '장 폴 사르트르'님?

 

 

1905년 태생인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는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상을 대표적으로 내세운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1970년대 말까지 프랑스의 지식인들과 정치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로, '문학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잘못'이라 비판하며 1964년 노벨문학상을 거절하기 까지 했다.(상단) 그는 사범 대학을 나와 교사 생활을 하였고, 평생의 동반자 '보부아르'(사진 오른쪽)와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레지스탕스 운동에도 적극 가담했다.(하단)

사르트르 : 네, 늦은 주말인데 모두 또 한 자리에 모였군요. 이번 격투기에 관한 주제는 시대마다 서로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을 텐데, 일단 제가 생각하는 격투기란 무엇보다 현대인들의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각자 즐기는 영역들이 더욱 세분화 되다 보니까 나타나게 된 한 사례일 뿐이라 생각 되는데요. 제가 살던 시대에만 해도, 그저 복싱 정도가 가장 폭력적인 스포츠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오히려 더욱 과거 원시시대의 폭력성으로 되돌아간 것 같아 조금은 우려가 되기는 합니다만,

이것은 각자 현대인 스스로가 느끼는 현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과도 직결되어 있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현 사회가 지금껏 유지될 수 있도록 한 이들의 노력에 적어도 반하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이러한 부분은 서로 각자의 취향에 관한 폭력성을 즐기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각자 스스로가 자신한테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스스로의 생각보다 훨씬 더 지대한 것이니까 말이죠. 그것은 전 인류를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격투기 관련 유투브 채널 중,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좀비 트립 2' 메인 화면(상단 좌측) 좀비란 한국의 대표 이종격투기 선수 '정찬성'의 별명이자 애칭으로 전세계적으로도 그 유명세는 국내에서 가히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적인 격투기 대회 UFC에서 두 번이나 같은 체급 챔피언 전까지 치뤄냈던 유일무일한 국내 파이터이기에 더더욱 그렇다.(상단 우측) 채널 '좀비트립'의 메인 간판 파이터로 일반인 도전자를 상대로 싸움의 개념과 파이팅 넘치는 격투기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고 있는 개념 파이터, '박문호'(사진 오른쪽)의 모습. 이 채널에서 선보이는 컨텐츠들은 보통 일반 시민들 속에 내재된 폭력성을 전문 격투가들과 대결을 벌이는 형태로 조금이나마 와해시키려는 의도로 제작된 영상물이 대부분이다.(하단)

사르트르 : 제가 제 시절에 노벨 문학상을 비판했고,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는 등 정치와 사회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사회에 가져야 할 책임의식을 어필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요. 결국 싸우는 스포츠에 관한 생각도 그것이 폭력적이기만 한 것에서 그쳐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사회적 비폭력에 대한 의식 제고로 환원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책임의식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폭력이 곧 폭력을 부른다고만 하기보다, 본인 안의 내재된 폭력성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책임질 있을 만한 올바른 실체로 환원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자신 스스로의 제 역할에 또한 보다 충실할 수 있다면, 이러한 다양한 스포츠는 분명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매서운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에 대한 고민을 하는 그 시간에 어떻게 하면 사회에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활동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그 어떤 종류의 스포츠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니까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실패를 맞도록 되어 있는 만큼 우린 항상 이점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보다 실존하는 가치에 대해 조금은 더 성숙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요.

 

 

 

1788년 생인 '쇼펜 하우어'의 생전 모습.(좌측) 그의 젊은 시절 초상화(우측)로 그는 주로 민간 문필가로 활약하며 헤겔의 철학을 비판한 독일의 철학자로 유명하다. 그런 그는 냉철한 통찰과 이성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저서를 발간했으며, 그것으로 여러 유명 사상가들에게 또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쇼펜 하우어 : 뭐가 됐든 누군가가 즐길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건 정말 소중한 일입니다. 어느 한 사회에서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를 곧 여러분의 시대 용어로 바꿔 말하자면 '엔터테인먼트'라고도 지칭할 수 있을텐데, 제가 살던 시대에는 그저 하나의 쾌락 정도로 명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도자들이 은둔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본연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 은둔 생활에서조차 자신을 위한 삶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건 인간이 가진 아주 긍정적인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함에 폭력을 즐긴다는 건, 또 하나의 스스로의 성취를 맛볼 수 있는 것일 테구요. 누군가 그런 타고난 능력으로 상대를 쓰러뜨리거나 그 상대의 무력에 맞부딪혀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이는 또 하나 인간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위대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의 모습.(상단) 폴란드 '그단스크'에 위치한 '쇼펜하우어'의 엣 생가.(하단 좌측) 프랑크푸르트에 세워져 있는 '쇼펜하우어'의 흉상 모습.(하단 우측)

쇼펜 하우어 : 헤라클래스처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사람이 보석 세공을 하거나 학문 연구를 한다면 그는 타고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은 불행을 면하기 어려운 것처럼, 본인만의 장점을 활용하여 그러한 격투 스포츠로써 누군가를 열광시킬 수 있다면, 그야말로 그 사회에 있어 어느 정도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모든 것이 과하면 그릇될 수 있듯이, 과한 폭력은 배제되어야 할 것일 테구요. 꼭 그러한 좋은 격투기 스포츠만이 어떤 시대에서든 계속 생존해 올 수 있었듯이 말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늘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노예일 뿐인 것처럼, 늘 주인의 눈치를 살피고 주인의 명령을 따라야 함에 그런 눈치를 봐야 한다면 삶의 의미는 없다고 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만일, 그런 남의 눈을 의식하는 태생적 결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마음의 평화 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나 자신이 좋아하는 또 즐길 수 있는 그런 스포츠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 우린 엄격한 기준은 남겨둔 채로, 그런 스포츠의 향유는 자유로운 시장 안에서 형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명 '앙투안 마리 장바티스트 로제 드 생텍쥐페리'는 1900년 6월 출생으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공군 장교로서 활동했다. 그는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로서 북서 아프리카, 남대서양, 남아메리카 항공로의 개척자이며, 야간 비행의 선구자 중 한사람이었다. 그는 본인의 체험을 토대로 쓴 소설로 명성을 얻었는데, 그 작품으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어린 왕자'(하단 좌측)이다. 그는 1943년 부터 다시금 프랑스의 공군 조종사로 활동하다가 1944년 7월, 비행 중에 실종되었다.

생텍쥐페리 : 한 시대가 만들어낸 소산일 수 있는 어느 스포츠에 대해, 그 누가 됐든 단 한 사람의 의견만으로 그걸 좌지우지 하듯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건, 그 자체로써 분명한 가치가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렇기에 많은 이들에게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주는 것들은 분명 이 세상이 알아서 사소한 부분으로 치부해 버릴 것입니다. 요한 괴태님께서 말했듯이, 가장 중요한 것들이 가장 사소한 것들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아니되는 것 처럼 말입니다.

분명 누군가 열광하는 그런 스포츠에는 이 시대가 요하는 중요한 것들이 내재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걸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구요. 시대가 발전해오면서 거기에 맞춰진 스포츠도 분명 함께 발전해 온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한 내재되어 있는 중요한 것들은 무엇보다 마음으로 보아야만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말이죠. 전 그렇게 계속 제가 살던 시대보다 더 나은 세대인 지금의 세계가 제 스스로 현명함을 찾아 발전해 갈 것이라 믿습니다. 오직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잘못된 길목에 서성이다 되려 발목 잡힐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말입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종합격투기 경기단체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의 실제 경기 현장 모습. 경기장은 그 각진 모양대로 '옥타곤'이라 지칭한다.

사회자 : 네, 그럼 이 분들 말고도 더 많은 현인 분들께서 할 말씀이 참 많으실 줄로 아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그래도 바쁜 시간에 참석해 주신 이 세 현인 분들의 대담 말씀으로, 격투기 스포츠 문화에 대한 여러 입장들을 정리,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현 격투 문화가 원시적일 뿐이라고 비난하는 사례는 물론, 그런 생각들도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것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남은 사람들은 대체 왜 이런 합법적인 폭력에도 열광하는 것인지, 그것이 또 사회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리고 이것들을 즐기는 것이 곧 폭력을 부추긴다거나 방치하는 것만은 아닐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들을 각자 소신껏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럼 현인 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시사캐스트]

 

※ 총 참여 인원 3명('사르트르', '쇼펜 하우어', '생텍쥐페리')의 굵은 글씨체가 그들이 직접 언급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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