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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복서 ‘최요삼’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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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복서 ‘최요삼’ 잠들다
  • 최진철 기자
  • 승인 2008.01.15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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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1차 방어 성공하고 쓰러져
9명에게 새 생명 기증하고 먼 나라로

프로복서 최요삼(35)이 끝내 3일 새벽 0시 1분에 끝내 사망판정을 받게 됐다. 최요삼은 지난달 25일 광진구 자양동 광진구민체육센터에서 벌어진 세계복싱기구(WBO) 플라이급 인터컨티넨털 타이틀 1차 방어전에서 헤리 아몰(25ㆍ인도네시아)을 판정으로 물리쳤지만 경기 후 뇌출혈 증상으로 투병 중에 있었다.

그간 최요삼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다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9일 만에 다른 세계로 떠났다.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그는 폐와 심장, 췌장 등의 장기를 7명에게 이식하며 새 삶을 찾아 줬다.

최요삼의 큰 형 최영식씨는 “요삼이가 가는 길에 받은 사랑이 큰 만큼, 100분의 1이라도 돌려주고 가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장기 기증은 평소에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했던 고인의 뜻이기도 했다.

최영식씨는 “아직 우리나라에 장기기증 문화가 확산되지 않아 두 번 죽이네 어쩌네 하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다면 뜻 깊은 일 아닌가. 가족들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말했다.

장기뿐만 아니라 생체 기능이 남아있는 혈관과 연골, 조직 등도 서울아산병원에 보관돼 다른 환자들이 새 삶을 찾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35세의 길지 않은 생애였지만 너무나 값지고 아름답게 살다 갔다. 1982년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서 레이 맨시니(미국)에게 패한 뒤 혼수상태에 빠졌다 사망한 김득구에 이은 프로복싱계의 두 번째 비극이다.

■ 마지막 말은 “풀어줘”

“손, 손, 손...글러브, 글러브...풀어줘”

최요삼이 경기 도중 쓰러진 지난달 25일 오후 3시2분께 서울 광진구 자양동 광진구민 체육센터에서 도전자를 판정으로 이기고 자기 코너에서 쓰러진 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글러브를 풀어달라’는 호소였다.

이 말을 뚜렷하게 들은 이는 최요삼과 함께 밀리오레 발전위원회에서 근무하는 직원 장봉수(33)씨.
장씨는 “코너 옆에 있다가 요삼이 형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링 위로 올라갔다”며 “내가 코너 의자에 앉아있던 요삼이 형을 안아 캔버스에 누인 뒤 가슴을 문지르고 있는데 뭐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손, 손, 손’이라고 하기에 내가 귀를 기울이며 `뭐? 뭐?’라고 했더니 `글러브, 글러브...풀어줘’라고 했다”며 “힘이 없긴 했지만 지금도 그 말이 생생하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링 위엔 강씨 외에도 조민 관장과 장병인(49) 사범, 이동포(41) 코치, 동생 최경호(32)씨 등이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경호씨는 “형이 `어, 어’ 하며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을 뿐 봉수씨가 들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요삼은 이후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렸다가 2일 뇌사 판정을 받은 만큼 마지막 말을 들었다고 하는 건 지금까지는 강씨 뿐이다. 최요삼은 경기 중에는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조 관장 등의 지시를 들었을 뿐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들은 최요삼에게 경기 중 “먼저 치고 들어가라. 때리고 나서 가만히 서 있지 마라”고 주문했다. 최요삼이 경기전 라커룸 안에 있을 때 장 사범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경기 중에) 제가 가드가 내려가면 가드 올리라고 소리쳐주세요”라는 것이었다. 상대 선수가 훅을 잘 치는 걸 걱정하고 있었던 셈이다.

최요삼은 경기 전 헤리 아몰의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그가 복부에 약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경기 초반 배를 주로 노린 건 이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안면이 자주 비었고 이 때문에 도전자에게 양 훅을 자주 허용했다. 경기 중반에는 도전자의 스트레이트에 맞고 고개가 뒤로 젖혀진 적도 있었다.

최요삼은 이 코치에게는 “6회까지 승부를 걸겠다. 그게 안되면 판정으로 가겠다”고 했다. 이 코치는 “그 말을 듣고 `요삼이가 오늘 경기는 좀 서두르는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경기 전까지 주변 지인과 가족들이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4월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세계복싱기구(WBO) 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같은 체육관 식구들에게는 “여권 준비해야죠”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 “이제는 끝내고 싶다. 맞는게 두렵다”

뇌수술 후 나흘째 되던 날 최요삼의 일기가 공개되면서 팬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최요삼이 작년 여름부터 지난 25일 경기 직전까지 틈틈이 써둔 다이어리 한 권 분량의 일기엔 마음 속 상처,링에 오르기 전 그가 느껴야 했던 공포감, 소박한 소망 등이 담겨 있었다.

2005년 6월 링을 떠났다가 작년 12월 복귀전을 치른 그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작년 7∼8월 무렵. 당시 최요삼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여파와 식어버린 복싱 열기로 방어전 일정조차 잡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인간적인 배신 등 갖가지 심적 고통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를 버리고 간 사람들이 너무나 생각난다. 권투도 나를 버릴까”나 “내 가슴 속에 상처가 너무나 많이 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등은 최요삼의 심정을 잘 대변해 준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도 컸다. 2002년 4차 방어전에서 세계타이틀을 잃은 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세 차례나 정상 복귀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그는 또 다시 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또 패장이 될 것인가”, “집중이 되질 않는다. 다 끝내고 싶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잘못을 했나 보다”, “한계를 느끼고 있다. 너무나 오래 쉬었다. 자신이 없어진다. 내일이 두렵다”, “오늘은 잠이 오질 않는다. 감각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외로움이 너무나 무섭다. 너무나. 더 외로워야 할까” 등 복서로서 겪는 괴로움이 그의 일기장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런 고통은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데 이어 지난 9월 세계복싱기구(WBO)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 되고 25일 1차 방어전을 치르기 전까지 계속됐다.

미혼의 최요삼은 이를 다른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한 채 자신에 대한 반성과 질책으로 이겨내야 했다.“냉정하지 못했다.한번 더 생각하는 현명한 사람이 되자”, “(경기가) 40일 정도 남았다. 벼랑 끝 승부라고 생각하겠다. 나는 밀리면 죽는다”, “반드시 할 것이다.(돌아가신) 아버지가 나를 도울 것이다. 가자. 가자. 가자. 저 외로운 길 내 꿈이 있는 곳에 가자. 요삼아” 등은 최 선수의 고독함을 잘 나타낸다.

작년 8월 몽골 전지훈련을 갔을 때 적어둔 그의 일기 한 켠엔 세상사람 누구나 꿈꿀법한 소망이 적혀 있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예쁜 집을 짓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평범하게 살고 싶다.이제는 피 냄새가 싫다. 내일이 두렵다”

■ 고 최요삼 선수 체육훈장 추서

최요삼 선수에게 체육훈장이 추서됐다. 행정자치부는 같은 날 프로복서로서 국위를 선양하고 사후 장기기증으로 새 생명을 살리며 사회의 귀감이 된 점을 감안해 고인에게 체육훈장 백마장(4등급)을 수여했다.
한국권투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훈장 추서를 요청했던 김종민 문화관광부 장관은 4일 오후4시30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빈소를 찾아 유가족들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최요삼 선수에게 추서되는 백마장은 지난 1982년 11월13일 세계복싱협회(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레이 시니(미국)에게 14회 KO패한 뒤 나흘 만에 숨진 고 김득구 선수에게도 추서된 바 있다.

한편 김 장관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들을 격려했다. 이 당선인은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헌화한 뒤 어머니 오순이씨(65)와 동생이자 매니저인 최경호 HO스포츠매니지먼트 대표 등을 위로했다.

이 당선인은 “복싱계의 큰 별이 졌다”며 “유족들의 심정은 헤아릴 수 없이 아프겠지만 고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고 위로했다.

■ 오열 속 영결식

6명의 말기 환자들에게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프로복서 최요삼의 영결식이 오열속에 엄수됐다. 5일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병원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는 최요삼의 가족과 친지, 복싱계 인사, 팬, 친구 등 200여명이 참석해 투혼과 봉사의 삶을 살다 간 고인의 뜻을 기렸다.

홍수환(58) 한국권투인협회장은 추모사에서 “벼랑 끝에 선 한국 복싱의 중흥을 바랐던 고인의 마음을 누가 다 헤아리겠느냐”며 후배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한 때 최요삼에게 스파링 지도를 받았던 현 여자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김주희(21) 선수가 울먹이며 “마지막 길 가시는 오빠, 지금 보이시죠? 가슴으로 느끼고 계시죠? 부디 아픔 없는 편안한 곳으로 가세요”라며 조시(弔詩)를 낭독하자 장례식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전 세계챔피언 장정구, 유명우, 변정일, 지인진 그리고 평소 고인과 친분이 있던 마라토너 이봉주, 2000년 시드니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김영호 등이 최요삼의 관을 운구했다. 최요삼의 시신은 고인이 구슬땀을 흘리던 서울 중곡동 숭민체육관과 의정부 자택, 성남화장터를 거친 뒤 경기 안성 추모관에 안장됐다.

■ 스포츠 경기 응급치료체계 개선 시급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 스포츠경기 전반에 대한 응급의료체계의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스포츠 선수들은 종목에 따라 경중은 있겠지만 항상 신체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더욱이 복싱과 같은 과격한 격투기는 목숨을 잃을 위험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 스포츠계의 응급의료체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경기장마다 구급차와 응급구조사가 배치되기는 하지만 심장박동기 등 구호장비가 부실하게나 아예 없는 차량들이 상당수다.
 
최요삼 선수만 하더라도 구급차내의 산소호흡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충분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했으며 뇌압을 낮춰 주는 약품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형식적인 메디컬테스트도 큰 문제다. 현재 우리 복싱선수들에 대한 시합전 메디컬 테스트는 고작 혈압체크·시력검사나 하고 주먹 몇번 쥐었다 폈다 해보라고 하는게 전부다. 선수의 안전을 책임지는 검사치고는 너무 허술한 것이다.
 
스포츠 강국으로 자부하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현실이 이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고가 생기면 그때만 호들갑 떠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제2의 최요삼’이라는 불행한 선수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스포츠 응급의료체계의 개선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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