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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후진국, ‘이천 참사’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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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후진국, ‘이천 참사’ 낳았다
  • 박성희 자유기고가
  • 승인 2008.01.18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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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식 부재, 허술한 시스템 근본 원인
관련 법규 손질… 통합 대응 체계 구축 시급

40명의 인명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의 냉동창고 화재 참사는 전형적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공장과 건설현장, 물류창고 등 각종 대형시설이 밀집해 있는 수도권 지역의 경우 화재 등 대형사고에 취약한 `사각지대’가 많아 시급히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의 1차적 책임은 공기(工期) 단축을 위해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공사를 강행한 시공회사 `코리아2000’ 측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

하지만 건축, 소방, 안전에 관한 법제도가 제대로 정비되고 현장에서의 철저한 이행을 담보할 수 있을 만큼 당국의 행정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이번 사고를 원천적으로 예방했거나, 설사 막지 못했더라도 인적, 물적 피해를 대폭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특히 이번 사고를 통해 건축, 소방, 안전 등 분야의 법규와 제도상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 유사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공사현장의 안전의식 제고, 안전 관련 매뉴얼 제정, 허술한 법, 제도의 재정비, 소방, 안전 통합 대응체계 구축, 인력시장 감독강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소방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관련 법규 대폭 손질해야

대규모 인명피해를 낸 경기도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 참사는 공사 감리와 소방검사 등에서 많은 허점을 드러내 관련법 개정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소방전문가 등에 따르면 이번에 화재가 난 냉동창고는 우레탄폼 공사 등을 해야 하는 위험도가 높은 건축물이지만 소방당국은 현장점검조차 하지 않고 검사 대행기관으로부터 관련 서류만 받아 소방안전점검 필증을 교부, 형식적인 검사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행 소방법상 다중이용업소, 청소년시설 등 ‘위험도가 높은 시설물’은 반드시 현장확인을 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냉동창고는 위험도가 높은 시설물로 분류되지 않아 서류심사만으로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특히 면적이 50㎡ 이상인 지하시설은 비상구를 둬야 하지만 몇 개를 설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2만여㎡에 이르는 이천 냉동창고는 비상구가 단 하나밖에 없어도 사용승인이 내려졌다.

백동현 경원대 소방방재공학과 교수는 “냉동창고는 위험 시설물로 포함시키고 소방법에 제연(除煙)시설 설치 기준을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건축법을 고쳐서라도 면적에 비례해 비상구 수량을 늘려서 짓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나의 계열사가 설계·시공·감리를 모두 시행한 데 따른 문제점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현행 감리법은 정부가 발주하는 사업에 적용되는 건설기술관리법(건기법)과 민간 건축주에게 적용하는 건축사법으로 구분되며, 건기법상에는 한 회사가 시공·감리를 동시에 할 수 없도록 돼 있으나 건축사법에선 이를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심용호 건설관리시스템연구소장은 “공사 중 많은 인력이 투입되고 위험성이 높은 시설물은 건기법상의 책임감리에 준하는 감리를 받도록 건축사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안전의식 부재, 허술한 시스템 근본 원인

경민대 소방기술지원센터장 김엽래 교수는 “이번 이천 화재 사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작업을 할 때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사현장 안전 관리자가 현장 작업자들에게 작업 전 안전교육을 시키고 인부들도 작업을 할 때 이를 철저히 준수해야 하는데 이런 수칙들을 모두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용접작업 중 불티가 튀어 유증기를 폭발시키고, 이 불이 건물 벽을 이루고 있던 샌드위치 패널의 스티로폼에 옮아 붙으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관리공단 안전작업지침에 따르면 용접작업을 할 때는 작업장 주변에 인화성 물질이 있는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할 때는 수시로 공기 중 인화성 물질 농도를 측정해 일정 농도 이상일 경우 작업을 중단하고 환기를 하도록 돼 있다.

김 교수는 “안전 규칙에 따라 작업을 하고 안전 관리자가 작업자에게 이를 제대로 주지시키도록 하는 것이 이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이다”고 강조했다.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과 최영상 교수는 이번 화재 사고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현장 관리감독 소솔에 무게를 뒀다.
 
최 교수는 “공사현장의 안전 관리자가 화재발생 위험이 있을 때 공기를 환기시켜주거나 가연성 물질을 없애는 등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밝혀야 한다”며 “감독자가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인부가 있는지 살펴보는 등 안전조치를 제대로 했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부실한 소방법 등 현행 법규도 문제로 꼽았다. 현행 소방법과 건축법은 공장, 창고 등과 같은 비상업용 건축물에 대해서는 비상구 설치에 대한 의무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고가 난 냉동 창고는 가로 180m, 세로 127m, 면적 2만3천338㎡로 축구장 3개 크기의 대형 반지하층 건물인데도 비상구는 1층으로 통하는 계단 한 곳과 외부로 바로 이어지는 출입구 한 곳이 전부였다.
사고 당시 인부들이 멀리 떨어진 외부 출입구로 달려갔더라도 대부분 도중에 질식해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점도 가까운 데 출입구나 대피구가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계명대 장준호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입구 앞에서 죽었는데, 냉동창고라 물품 보관만 생각했지 비상구 등 대피통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며 “창고를 만들 때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비상구를 중간 중간에 설치하는 등 대피통로가 고려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건물이 다 지어진 상태였다고 해도 추후에 대피로를 추가로 만들었더라면 그나마 이번 같은 대형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대형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공사 현장 작업자 등의 안전 불감증이 계속 지적돼 왔지만 안전의식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번 사고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통합 대응 체계 구축 시급

완공 이후 잦은 구조변경에 대한 제대로 된 사후감독이 사실상 불가능한 점도 문제다. 소방 완공검사가 끝나면 감리원이 철수하게 돼 있어 추가적인 점검이 전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소방당국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사고현장의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은 화재로 인한 파손 때문으로 보이지만 불법 구조변경으로 인해 원천적으로 작동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번 사고와 같은 비상시를 대비한 `위기관리 통합매뉴얼’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소방당국의 한 관계자는 “그간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각종 사건, 사고로 인해 공공, 정부 분야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위기관리 매뉴얼이 마련돼 시행되고 있다”면서 “이제는 이러한 위기관리 매뉴얼이 민간 부문에도 전파돼 적용될 수 있도록 행정력을 모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정부나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매뉴얼의 타당성을 점검한 뒤 이를 민간분야로 전파해 사업주, 현장근로자들이 반드시 숙지하거나 현장에서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안전의식과 관련된 매뉴얼의 준수를 강제화하기 위한 규제.처벌 조항도 필요하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이와 함께 대형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관련 부처들이 `나몰라라’ 식으로 안이하게 대처하는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일각에선 각 부처에 산재돼 있는 재난 관련 업무를 특정 기관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업무를 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등 통합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큰 사건, 고가 터지면 항상 `관련 법규가 각 부처로 산재돼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업무 영역에 따라 관련 규정이 각 부처로 나뉘는 것은 당연한 일인 만큼 이는 잘못된 지적”이라며 “문제는 사고를 총괄해 지휘, 통제할 수 있는 단일 지휘체계를 구축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단일 지휘.통제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부처로 하여금 사건.사고에 우선적으로 대응케 하는 것은 사후에 책임도 혼자 지라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재난과 관련된 통합 지휘체계를 신속히 구축, 범정부 차원에서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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