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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뿌리 같았건만 나몰라라한 사람들… 부나비가 불을 보고 뛰어드는것과 같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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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뿌리 같았건만 나몰라라한 사람들… 부나비가 불을 보고 뛰어드는것과 같은꼴”
  • 정수백 기자
  • 승인 2008.01.21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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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계 2인자 최형우 뇌일혈로 정계은퇴
서석재 홍인길 문정수 등도 역사의 뒷길로
결국 YS 정권 이후 4분5열된 쇠락의 길

김덕룡등 YS직계 민주계의원들 MB에 올인
민주계 드러내지 않던 사람들 다시 모여
YS 팔순잔치 정관계 800여명 참석 힘 과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민주계는 우리 헌정사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쿠데타나 체육관에서 지명된 전임 대통령과는 달리 정상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대통령을 만든 첫 정치인맥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민주계에 몸담았던 인사는 YS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숱한 사선(死線)을 넘나들며, 그를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려놓았다. 이들의 ‘땀의 결정체’로 인해 YS는 대통령이 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YS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인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93년 YS 정부가 탄생하자 이들은 요직에 앉았다. YS정권 기간 동안 최대의 권한을 누렸던 인사는 최형우 전 의원이다. 최 전 의원은 내무부장관 등을 거치면서 ‘민주산악회’, ‘정동포럼’, ‘21세기 정보화 전략 연구소’ 등 조직을 만들어 대권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뇌일혈로 쓰러져 사실상 정치무대에서 사라졌다. 상도동 측 한 관계자는 “온산(최형우)이 추구하던 대동단결의 정신이 아쉽다”고 소회했다.

상도동의 금고지기에서 출발, 총무수석까지 지낸 홍인길 전 의원 역시 YS의 지역구(부산 서구)까지 물려받아 금배지를 달았으나 한보비리로 투옥돼 정치생명이 끝났다.

‘나라사랑 실천본부(나사본)’를 이끌며 ‘조직의 귀재’로 불렸던 서석재 전 의원도 9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 ‘반 이회창’ 전선을 형성했으나 유권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아, 정치판을 떠났다. 지금은 ‘이투데이’라는 인터넷 신문사를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지사를 지낸 민주당 이인제 의원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을 탈당해 단기필마로 대선전에 뛰어들었으나 낙마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당시 노무현 후보에 발목을 잡혀 패했다.

이후 자민련과 다시 민주당을 오가는 행보를 보여 국민들 사이에 ‘철새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1%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을 얻었다.

황명수 김운환 등도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여권으로 옮겼으나, 지난 16대 총선에서 낙마했다.

최기선 전 인천시장과 김동주 전 의원도 자민련으로 말을 갈아타며 한때 재기하는 듯 보였으나, 허망한 꿈으로 끝났다. 최 전 시장은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인천시장 후보로 나와, 도전했으나 낙마했다.

김광일 전 청와대비서실장, 문정수 부산시장 등도 ‘YS대리인’을 자처하며 지난 16대 총선에서 ‘민국당’간판을 들고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서청원 전 의원도 한화와 썬앤문그룹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사실상 17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YS 비서실장을 지내며 유일하게 민주계의 맥을 이어왔던 김덕룡 의원도 지난 5.31 지방선거와 관련, 금품수수 혐의로 인해 정치판을 떠나야 할 위기였다.

강삼재 전 의원도 비록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안풍 사건으로 인해 정치생명이 위기에 몰렸었다.

YS 대변인 격인 박종웅 전 의원도 지난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지도부의 견제로 인해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으나 낙마했다.

김수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16대 국회를 끝으로 정치계를 떠났다.

민주계가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이유는 구심점이 없었다는데 있다. 특별히 YS가 지지할 후보가 없었다는 것.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이회창이 나섰기 때문에 YS가 ‘이회창 지지’를 하기도 어려웠다. 이회창이 한나라당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척을 졌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에서 YS가 이인제를 지지하려했던 근거들은 여기저기서 나온다. 하지만 이인제 역시 노무현에 무릎을 꿇어 대선 본선에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부활했다. 물론 일부세력은 이탈했지만 YS의 진두지휘아래 ‘이명박 지지’를 함으로써, 민주계는 YS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도 성공을 거뒀다.

박종웅 전 의원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민주연대 21’를 이끌며 일찌감치 이명박 지지를 선언했다. 이후 박 전 의원은 통합신당의 네거티브 선거를 차단하는데 주력했다.

김덕룡 의원 역시 ‘이명박 캠프’에서 6인회를 주도하며 다시 부활했다. 한때 온산(최형우 아호)계로 분류됐던 이재오 의원 역시 이명박 당선자의 최측근으로 불리며 향후 이명박 정부에서 주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안경률 의원이나 정병국 의원도 일찌감치 이명박 지지를 선언하며 이 당선자 캠프에 합류한 경우다.

특히 지난해 6월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 32명의 민주계 전직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후보야말로 정통 민주세력을 잇는 지도자”라며 지지 의사를 밝힘으로써, 민주계는 공식적으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노병구 민주동지회장은 이에 대해 “민주계 인사들은 길게는 50년 이상 YS와 같이 한 사람들이고, 짧게는 10년 정도 된다. 특히 YS는 사심이 없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YS가 ‘이명박이다’ 나오면 그 중에 몇 사람은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물론 YS가 이명박 지지를 선언했음에도 이를 따라가지 않은 인사들도 있다. 박근혜 캠프에 몸담았던 인사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우다. 서 전 대표는 박근혜 캠프의 좌장 역할을 맡았다. 이 밖에 YS 대통령 시절 민정·사정비서관 등을 지냈던 김무성 의원 역시 박근혜 전 대표를 도왔다.

YS 대통령 시절 정무행정관을 지낸 이성헌 전 의원도 박근혜 전 대표의 초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인연으로 박 전 대표 캠프에서 일했다. 특히 이 전 의원의 경우, YS 인맥이라고 보기보다는 김덕룡 의원 계보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김덕룡 의원과 이 전 의원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서로 다른 길을 택한 경우다.

아무튼 민주계는 이명박을 앞세워 10년 만에 정권탈환에 성공했다. 정권탈환의 성공 때문이었을까. 지난 11일 YS 팔순잔치에는 정관계 인사 800여명이 참석해 힘을 과시했다. 한때 IMF 등으로 YS 인기가 추락하자 애써 민주계임을 드러내지 않던 인사들까지 다시 모여들었다. 격세지감을 느끼는 듯하다.

YS의 대변인으로 불리는 박종웅 전 의원의 말은 새삼 이를 깨닫게 해준다.

“몸을 사리고 애써 자신이 민주계임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인사를 볼 때면 유감을 넘어 분노까지 느낀다. 정치적 뿌리가 같은 사람들이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해서 발뺌을 하고 다시 좋아져 달려든다면 부나비가 불을 보고 뛰어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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