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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살아 남을수 있을까” 걱정-불안에 잠못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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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살아 남을수 있을까” 걱정-불안에 잠못이뤄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8.02.12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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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 개편 발표후 공직사회 분위기…

통폐합·축소 대상부처들 생존경쟁 ‘올인’

재경부, 예산결정권 흡수설에 ‘표정관리’
과기·해수부는 해체 소문으로 전전긍긍

대통령직 인수위가 지난 16일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 발표하자 통폐합 대상으로 결정된 정부 부처 직원들은 이미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폐지가 확정되자 침통해 하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직원들은 특히 해수부 실무 조직인 전국 지방해양수산청의 수산 기능을 자치단체에 이관하는 것으로 결론나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해수부 직원들은 “해수부의 폐지로 여수박람회 개최 준비와 어민 보호 업무가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해수부 폐지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해수부 한 관계자는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면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해수부 존치의 당위성을 끝까지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부는 대통령직 인수위가 ‘조직의 기능을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부 등에 분산시키면서 정통부를 해체하겠다’고 밝히자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통부 관계자는 “지난 94년 부처 출범 이후 한국을 정보통신 강국으로 이끄는데 이바지했는데도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해체당하는 아픔을 겪게 됐다”면서 인수위의 결론을 쉽게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통부가 이동통신과 소프트웨어와 같은 통신 정책에 집중했어야 하는데 로봇과 홈네트워크 등 산업 진흥과 관련된 정책까지 맡게 돼 알력을 조장하게 됐다”면서 “여야 협의 과정에서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민영화가 추진되는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공무원 신분을 잃게 되는 사태를 우려해 일부 직원들이 벌써 다른 부처로 옮기려 하거나 다시 공무원 시험을 치르려고 하는 등 동요가 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라 보건복지부로 업무가 통폐합된 여성가족부는 이번 결과를 “여성 정책의 후퇴로 본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인수위가 복지부로 통합시키려는 업무들은 이미 복지부가 담당하다 한계가 있어 여성 관련 부처로 이관된 것인 만큼 복지부로 다시 업무를 넘기는 것은 여성 정책의 후퇴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묶어 ‘인재과학부’로 바꾸겠다고 밝히자, 1948년 정부 출범 이후 처음 ‘교육’이란 이름을 잃게 될 처지에 놓인 교육부의 공무원들은 당혹해 했다. 교육단체들도 진보·보수 성향 관계없이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교육부의 한 서기관은 17일 “교육이란 이름을 없애다니 충격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간부는 “지금까지의 관념을 버리라는 뜻인 것 같은데, ‘교육부 해체’처럼만 느껴진다”며 허탈해했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지난 15일 오전 ‘교육과학부’ 등을 예상하며 ‘부처 폐지는 모면했다’는 표정이었다가, 돌연 낯선 이름이 등장하자 아리송해하며 용어 풀이를 하는 등 내내 술렁거렸다. 교육부 한 공무원은 “교육은 놓아두고, 인적 자원 개발에 신경쓰라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부처 이름 변경은 막바지에 급하게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인수위 발표 자료에 ‘교육과학부’란 이름이 남은 곳도 있다. 인수위 자문위원이 참여한 보수 성향 교육단체도 “단 하루 만에 공개적 논의도 없이 바꾸느냐”고 따졌다.

교육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성명을 내어 “이명박 정부가 백년대계인 교육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며 “교육부로 수정하지 않으면 제18대 총선은 물론 새 정부의 교육정책 추진에 전혀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엘리트를 뜻하는 ‘인재’ 육성을 교육의 전부인양 착각한 이명박 당선인의 협소한 교육철학을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고,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는 “교육을 ‘인재-인력’ 개념으로 접근하며 국가의 교육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선 때 이명박 당선인을 공공연하게 지지했던 ‘뉴라이트 계열’ 교육단체들도 “교육계를 부정하면서 어떻게 교육개혁을 실현하겠는가”라며 “사과하고 엉뚱한 이름을 거둬들일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교육계의 반발이 확산되자 인수위는 지난달 21일 결국 인재과학부 명칭을 포기하고 ‘교육과학부’로 부처 명칭을 최종 확정발표하면서 명칭을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참여정부에서 기자실 폐쇄 조치로 부처 폐지 압력을 받았던 국정홍보처는 결국 폐지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인수위는 국정홍보처 폐지 이유에 대해 “국정홍보처가 지난 5년간 사실상 언론을 통제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했으면서도, 정부가 의도한 (홍보)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국정에 부담만 줬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과 관련해 언론의 취재원 접근권을 막고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했다며, 현행 제도는 사실상 언로(言路)를 막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이는 취재지원 선진화가 아니라 퇴보이며, 언론자유에 역행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홍보처 기능을 어떻게 재편하고,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며 폐지에 대한 최종 결론을 정부부처 개편 문제라는 종합적인 틀 속에서 검토할 것”이라며 “다만 홍보처 폐지는 당선인 공약”이라고 못박았다.

정부 부처가 통폐합 되면서 관가에는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공무원들의 불안이 팽배해지고 있다. 통폐합 대상에서 제외된 부처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과천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글쎄, 어떻게 되겠죠”라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인수위의 정부부처 개편안에 따르면 경제관련 부처는 이전에 비해 오히려 등치가 더 커지게 되지만 자리 보전을 장담하기 어려워지는 건 마찬가지란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특히 관료사회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출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발언이 공무원들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당선인은 “공무원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발언도 했다.

이 당선인은 지난 18일 삼청동 인수위에서 열린 간사단 회의에서 “인수위가 살아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현장 가서 확인하지 않고 페이퍼(문서)로 하면 지금까지와 똑같다. 민생 관련 일을 하려면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규제완화도 마찬가지다. 건수만 많지 실제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탁상공론 행정의 구체적인 사례로 산업자원부를 들었다.

이 당선인은 “내가 작년에 목포 대불공단에 갔는데, 거기 업체들이 생산한 대형 블록을 조선소로 옮기는 대형 트레일러 운행이 어렵다고 해서 전봇대를 옮겨달라는 애로사항을 건의했다. 한데 산자부하고 목포시에 몇 달을 얘기해도 안 되더라. 아마 지금도 안 됐을 거다. 산자부장관, 목포시장, 도지사 다 뭐했나, 서로 얽혀서 안 된다”라고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지금도 전봇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거라는 대목에서 이 당선인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공무원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물론 당선인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산자부는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이 당선인은 공무원들의 자리보전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내놨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남는 인력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막연하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당선인은 “국민들이 뭐라고 보겠나. 왜 조직 개편했냐고 오해만 산다. 그리고 업무상 필요한 인력은 남고, 개편 대상 인력은 철저히 교육을 시켜서 다시 돌아오게 하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줘야 한다. 교육받는 사람도 그걸로 끝난다고 보면 안 된다. 막연하게 ‘괜찮다’는 말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직사회의 불안을 다독이기 위해 신분보장을 약속했던 인수위 측 발표와는 다른 의지가 엿보이는 발언이다.

공중 분해되는 해수부, 통일부 등은 정부조직법 통과가 결정되는 국회를 상대로 막판까지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벌이고 있다. 공사화 추진으로 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나는 체신노조도 20일 여의도에서 대규모 궐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단체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체신노조는 성명에서 ‘노동계와 더불어 4만여 우정 종사원들이 강력한 대정부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신분불안에 공직사회가 떨고 있지만 직급별로 느끼는 온도차는 다르다. 허리 이하라고 볼 수 있는 서기관(4급), 사무관(5급)들은 부처 간 통폐합이 돼도 소화가 되니까 큰 걱정이 없다고 한다. 부이사관(3급), 서기관으로 구성된 과장들도 대국(局) 체제로 가는 만큼 국 밑에 과를 늘리면 자리가 해결되지 않겠나하는 여유가 보인다.

문제는 국장급 이상 관료들이다. 고위급 자리부터 크게 줄이겠다는 방침에 따라 당장 기획재정부로 통합되는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의 경우 40여 명의 국장급 자리 중 절반가량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보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흡수해 지식경제부라는 거대 공룡으로 탄생하는 산업자원부도 18명 국장 중 몇 명이 살아남을지 불분명하다고 한다. 한 산자부 관계자는 “자리를 받지 못하면 재교육을 받든지, 규제완화 업무로 가야하는데, 거기 갈 경우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고, 다들 좌불안석이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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