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포커스] 농장·병원·공장을 바꾼다…혁신기업의 다음 무대

2026-10-06     이아름 기자

(시사캐스트, SISACAST= 이아름 기자)

 

혁신기업의 무대가 달라지고 있다. 한때 새로운 앱과 플랫폼이 혁신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공장과 병원, 농장, 에너지 시설처럼 오래된 산업 현장으로 기술이 파고들고 있다. 공통분모는 AI와 로봇, 바이오다. 사람이 하던 일을 자동화하고, 버리던 자원을 다시 쓰고, 경험에 의존했던 판단을 데이터로 바꾸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환경 분야에서는 탄소를 단순히 줄이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원료로 바꾸는 기술이 주목받는다. 영국 기후기술 기업 페이즈 바이오랩스(Phase Biolabs)는 미생물을 활용한 가스발효 기술로 이산화탄소를 에탄올로 전환하고 있다. 이렇게 만든 물질은 화학제품과 e-퓨얼의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기존 산업시설에 별도 설비를 덧붙이는 방식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캐나다의 알트 텍스(ALT TEX)는 버려지는 음식물을 활용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발효해 화학 원료를 만든 뒤 기존 폴리에스터를 대체할 수 있는 섬유 소재로 가공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폐기물 자체를 새로운 원료로 바꾸겠다는 접근이다. 아직 대규모 상용화를 향해 가는 단계지만, 순환경제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의료와 바이오에서는 AI가 신약개발의 앞단으로 들어왔다. 대표적인 기업이 아이소모픽랩스(Isomorphic Labs)다. 딥마인드의 알파폴드 연구를 기반으로 알파벳이 2021년 설립한 회사다. 알파폴드에서 출발한 AI 기반 약물설계 기술을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을 찾고 있다. 노바티스와 일라이릴리 등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업도 진행 중이다.

다만 AI가 유망한 물질을 찾아주는 것과 실제 약을 만드는 건 다른 문제다. 후보물질이 임상시험에서 약효와 안전성을 입증해야 비로소 의약품이 된다. AI가 신약개발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줄이는지는 앞으로 쌓일 임상 결과가 말해줄 가능성이 크다.

한국

로봇 분야에서는 AI가 말 그대로 ‘몸’을 얻고 있다. 독일에서 출발한 로봇 스타트업 마이크로AGI(Microagi)는 사람이 일하는 모습을 센서로 수집해 로봇이 이를 학습하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자동차와 물류, 식품 제조 등 실제 산업 현장의 작업을 범용 로봇이 빠르게 익히게 하는 게 목표다. 최근에는 5500만 달러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고 로봇 연구자 8명을 영입했다.

한국에서도 피지컬 AI의 중심에는 로봇이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분석한 국내 피지컬 AI 스타트업 149개사 가운데 로봇 분야는 70개사로 47%를 차지했다. AI·소프트웨어 플랫폼과 자율주행, 드론·UAM보다 많은 숫자다. 제조업 기반이 강한 한국에서 AI와 로봇의 결합이 빠르게 사업화되고 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농업도 달라지고 있다. 올해 농식품 창업콘테스트에서는 로봇을 활용한 수직농장 시스템을 개발한 로웨인이 대통령상을 받았다. AI 기반 스마트농업 자동제어 솔루션을 개발한 알트투도 우수상을 받았다. 농촌진흥청이 선정한 ‘2026 농업과학 10대 유망기술’에도 AI 기반 농장 통합관리, 에너지 자립형 스마트팜, AI 기반 병해충 예측 기술 등이 이름을 올렸다.

농업

대기업도 농업 혁신에 뛰어들고 있다. 종합 농기계 업체 대동이 대표사로 참여한 컨소시엄은 전남 무안에 대형 AI 온실을 구축하는 국가 농업 AX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온실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생육진단과 수확 예측, 재배 의사결정에 활용하고 AI·데이터 플랫폼과 정밀 농작업 서비스까지 연결하는 사업이다. 기존 스마트팜이 온도나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농업 생산 과정 전체를 데이터와 AI로 묶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 기업이 바라보는 문제는 묘하게 닮아 있다. 사람이 부족한 곳에는 로봇을 투입한다. 경험에 의존하던 판단에는 AI를 붙인다. 버리던 폐기물은 다시 원료로 만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던 연구개발에는 데이터를 활용한다.

물론 기술이 새롭다고 모두 산업이 되는 건 아니다. 로봇은 가격과 안전성을 넘어야 한다. AI 신약은 결국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스마트팜은 초기 투자비와 에너지 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탄소기술 역시 기존 원료와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생산단가를 낮춰야 한다.

결국 혁신기업을 가르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얼마나 신기한 기술을 만들었느냐보다 오래된 산업의 문제를 얼마나 싸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혁신의 다음 무대가 앱 밖으로 옮겨가고 있는 이유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