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타임] 자칫 '혼삶'이 외로워 질 때면, 주눅일랑 들지말고, '주먹왕 랄프' 처럼 (2/2)

'1인 삶' 숨고르기의 일환으로, 화면 속 살아 숨 쉬는 그림_캐릭터들(애니메이션)을 통해, 매주 마법같은 이야기를 소개받는 코너. 월트디즈니사가 숨을 불어넣은 전자게임, 'Wreck it Ralph'의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그 하(下) 편.

2020-05-19     양태진 기자

(시사캐스트, SISACAST= 양태진 기자)

여느 영웅 이야기가 본론으로 치달아갈 때면, 한 평범한 조력자가 나타나 위기에 처한 그를 도와준다. 아니, 이래 봬도 영웅인데? 설마하는 실망감에 영웅 맞는지 되물을라치면, 한낱 영웅도 외로움 앞에선 무기력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보다못한 진리(?) 하나가 고개를 치켜든다.

지난 시간에 이은 '주먹왕 랄프'도 이러한 공식에서 크게 벗어날 생각은 없어보인다. 그저 '악당'이란 껍데기를 벗어내려 애쓰는 정도에서 꼭꼭 숨겨진 영웅 심리가 제 본색을 드러낼 때까지, 그의 주변을 맴돌던 연민과 애정의 소용돌이는 이내, 한 조력자를 만나면서 조금씩 평온을 되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넬로피'.

영화의 전반 이후부터 깜짝(?) 등장하는 이 깜찍한 조력자는 '랄프'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원하던 삶에 오히려 재를 뿌리는 존재로도 오인하기 충분한 것이었지만, 팍팍한 가슴에 달큰한 단비로 젖어들기까지, 그녀만의 귀여운 저력은 어느새 조력 이상의 것을 자처하고 있었다. '랄프' 만의 우울한 고독감이 외로운 그녀, '바넬로피'만의 슬픔과도 상당 부분 닮아 보여서 였을까?

이쯤에서 영화는 또 하나의 결정적 위기 상황을 대두시키는데, 그건 바로, 먹고, 복제하며, 본인이 게임 캐릭터인 줄도 모른 채, 파괴만을 일삼는 바이러스, 일명 '사이버그'로 부터의 테러다.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이 또 하나의 퇴치 대상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게임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극중 최대의 긴장감은 극 후반부까지 미련없는 공세를 이어간다.

 

 

애써 주인공을 유지(?)하려는 '랄프'와, 대체 누가 조력자인건지 헷갈림의 매력을 마구 남발(?)해대고 있는 '바넬로피'만의 숨겨진 능력은 둘만의 놀라운 우정을 지렛대 삼아, 난공불락의 위기 상황을 어렵사리 극복해 가는데..

영화 내 주(主) 동력으로서의  '바넬로피'가 깨물어 주고 싶은 표정과 앙증맞고 귀여운 몸동작들로 게임 세상 '슈가 러시'를 맘껏 누비고 다니는 동안에도, 그저 게임 속 오류일 뿐이라는 동정심은 물론, 그녀 스스로도 뭔가 확신하고 있는 듯한 정체성 관련 호기심은 시종일관 보는 이의 관심을 놓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바넬로피'만의 유머와 그에 걸맞은 제스처는 애니메이팅 된 생김새를 넘어, 톡톡 튀는 목소리와도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 성우 역할을 맡은 배우 '사라 실버맨 (Sarah Silverman)'은 일찍이 '스탠딩 코미디언'으로도 유명세를 얻은 바, 이 영화에서의 기교넘치는 목소리 연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코믹배우로서의 타고난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잭 블랙' 주연의 <스쿨 오브 락 (School of Rock)>이 있으며, 그 외에도 <There's Somthing About Mary (1998)>와 '워렌 비티'의 <Bulworth(1998)>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카툰 시리즈에서 코믹한 일품 연기를 뽐내며, 때론 작가로, 재기 넘치는 지성파 여배우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과시하고 있다.

 

이 영화를 말하는데엔 또 하나의 큰 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자오락실이 문을 연 시간대 만큼은 다른 게임에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엄연한 룰이 존재함에도, 이 금기를 깬 게임 '터보 타임' 속 '터보' 캐릭터의 경우, '로드 블라스터'라는 게임이 새로운 인기를 얻자, 이를 시기질투 한 나머지 자신의 게임을 박차고 나와 '고장(out of order)'의 상황을 맞이하며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랄프'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다른 게임 속으로 들어가 마찬가지의 혼란의 상황을 야기시켰음에도, 그의 순수성과 소중한 누군가를 위한 진심어린 노력 때문인지, 이전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상황으로 발전될 조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같은 우를 범한 상황에서도, 순수한 애정과 그에 따른 나름의 희생에 경주한 이는 오히려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좋은 삶의 지침 또한 제공해 주고 있다.

 

결국, 영화는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만 원하는 '메달'을 되찾을 수 있다는 설정으로 '악당'과 '오류 투성이'라는 두 캐릭터의 허물이 결코 쓸모없는 것들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삶 속 또 하나의 윗 단계로 나아갈 수도 있을, 이 세련된 깨달음이 내포된 디즈니 사단의 스토리라인은 그래서 더 감동일 수 밖에 없는 것. 영화의 연출을 맡고 있는 감독 '리치 무어 (Rich Moore)' 또한 이 역할에 상당 부분 일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만화 시리즈의 미술과 제작 분야를 도맡아 온 베테랑, '리치 무어'는 시리즈 <퓨쳐라마(1999-2003)>의 제작 경험을 살려, 이 영화 이후 개봉한 <주먹왕 랄프2 : Ralph breaks the Internet>의 연출 또한 도맡았던 만큼 애니메이션 계의 타고난 실력자로 손꼽힌다.

이에 <주먹왕 랄프>는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Best Animated Feature'부문의 수상후보이기도 했으며, 당해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과 'BAFTA 어워드'에서 또한 각각 'Best Animated Feature Film' 부문과 'BAFTA Children's Award'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한다.

 

각자의 꿈과 희망은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기에, 그저 혼자만 지내야하는 외톨이라해도 전혀 외롭지 않은 모습으로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도 있는 것. 이에 그 모습이 잘 담겨져 극 중 재미까지 더해진 명장면 중 하나가 바로, 악당 캐릭터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의 이야길 들어주는 씬이다. 이 각자가 속마음을 털어 놓고 회개(?)하는 모멘텀의 현장이란, 그야말로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는 영화의 주요 장면 중 하나인 것이다.

이외에도 게임기 뒷편의 전선을 따라 전류처럼 이동하는 열차 씬 또한 가히 놀라운 상상력 선사한다. 한 곳에 모였던 악당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몸을 실은 채, 그 길로 중앙 스테이션에 다다르는 모습이란, 정말 상상력의 총동원체라 하겠다. 그곳 중앙역(?)에서 등장하는 반가운 게임 캐릭터들 또한 엄청난 눈요기 거리.

 

다양한 게임 속 각축전을 통해 흥미가 자극 되다가도, '오류'(?)나 그밖의 소외된 것들에 대한 편견 마저도 깨어주며, 어떤 것이든 그 원천을 알아가기까진 최소한의 조심스러움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올바른 가치와 더불어, 가끔은 영화보다 더 리얼(?)하단 평가를 때마다 입증해주는 디즈니표 애니메이션, <주먹와 랄프>.

 
오늘도 혼삶인들은 매일의 바쁜 일정 속 사소한(?) 외로움들은 잠시 미뤄둔 채로 또 내일을 살아가겠지만, 또 다른 저 편을 살아가고 있을 누군가에 대한 작은 등불과도 같은 관심을 시작으로,

게임 속 영원한 희망이 현실에도 적용되길 바라는 아주 과한 소망은 아닐지라도,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임 속 세상에서처럼, 자신이 본의 아닌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누군가가 고마운 친구의 모습으로 당신 곁을 환히 밝혀주고 있을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멀고도 험한 혼삶의 길. 

때론 남들과 부딪혀 싸운 후, 심대한 타격을 홀로 감내해야 한다거나, 때론 혼자 내팽겨쳐진 기분으로 하루를 버텨내야하지만, 그런 상황들 속에서도 희망과 꿈은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기에,

혼삶이 좋은 이유는 수도 없이 댈 수 있다. 하지만 그 중 하나만 꼽으라면,  스스로의 여유 속에서 꿈과 희망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지. 여기에 다른 혼삶인들과의 적절한 교류까지 더해진다면 그 삶은 더욱 활력 넘칠거라 영화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소중한 만큼, 누군가의 혼삶도 당신을 응원할 것이기에, 어느새 저만치 구석으로 자리한 이 어린시절의 꿈 같은 이야기를 통해, 잊고 있던 옛 감성과 자존감을 불러내 맘껏 즐겨보자. 그럼 어느새 외로움 따윈 고장나 버린 채로, 멋진 새로운 게임 하나가 눈 앞에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