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어디에 있어야 내가 나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앞에서

2025-05-07     박이슬 문화평론가

(시사캐스트, SISACAST=박이슬 문화평론가)

 

우리는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전공을 선택할 때, 첫 직장을 고를 때, 이직을 고민할 때, 혹은 전혀 다른 삶을 꿈꿀 때. 그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를 이끄는 질문은 대체로 이렇다.

“어디가 더 안정적인가?”
“어디가 더 남들이 인정해줄까?”
“여기서 버티면 언젠간 좋은 일이 생기겠지?”

하지만, 한 번쯤은 이렇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 이곳에서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가?”

삶은 단순히 ‘견디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삶은 나라는 존재가 가장 온전히 빛날 수 있는 방향으로 흐를 때 비로소 생동감을 가진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나를 소모시키는 환경’과 ‘나를 성장시키는 환경’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말한다.

“괜찮은 직장은 연봉이 높고, 복지가 좋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곳이야.”
하지만 정말 그럴까? 연봉이 높아질수록 삶은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나?
혹은, 그 자리에 오래 있었던 나의 마음은, 더 건강해졌나?

우리는 가끔 ‘살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한다.

사소한 자존감, 인간적인 존중, 퇴근 후의 평온한 저녁, 무엇보다 “나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감각까지도.
그런데 그렇게 무뎌진 하루들이 쌓일수록, 우리는 점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진되는 삶’을 살게 된다.

무엇이 진짜 안정이라 할 수 있을까?
매일이 괴롭지만 월급날에만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삶?
아니면, 조금은 불안해도 매일이 기대되는 삶?

성장과 소진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그 차이는 단지 ‘노력의 크기’가 아니라, 그 노력이 어디서,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내가 쏟는 노력들이 공명 없이 흩어지는 곳, 인정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수록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잃어간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나를 이해하려는 조직, 내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들,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환경에서는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장한다. 같은 노력도, 같은 재능도, ‘어디서 쓰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묻게 된다.

“내가 가장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내가 가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그 질문의 답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건 철저히 내가 가진 가치관, 삶의 방식, 행복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수십 년을 한 자리에 머물며 깊이를 더하는 삶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넓이를 키워간다.
누구의 길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이 나의 선택이었느냐는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원했느냐,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내 삶에 더 많은 나다움이 채워졌느냐.

그러니 지금 고민하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전하고 싶다.

나를 소모시키는 곳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떠날 준비를 하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 당신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분명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리고 내가 그곳을 찾아 나설 용기를 낼 때, 비로소 나는 ‘살아 있는 삶’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버티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나는 빛나기 위해,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시사캐스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