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슬의 Well-Life] 어른은 나이로 되는 게 아니다, 태도로 되는 것이다
(시사캐스트, SISACAST=박이슬 문화평론가)
우리는 흔히 '어른'이라는 말을 들으면 으레 나이를 떠올린다. "이제 다 컸네," "철 좀 들어야지" 같은 말들이 그렇듯, 우리 사회는 어른이라는 타이틀에 특정 연령을 덧씌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된다는 건 그저 생일 케이크에 꽂는 초 개수가 늘어나는 일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린 일이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가 함께 지향해야 할 가치를 담은, 나이와는 다른 의미의 품격 있는 호칭일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주변을 둘러보면 나이가 지긋한데도 아직 '어른스럽지 못한'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자신의 경력과 학력이 최고라며 남의 이야기를 무시하거나, 타인의 힘든 상황을 쉽게 판단하며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갇혀 있는 모습들이 그렇다. 반대로, 아직 채 대학을 졸업하기 전의 어린 나이인데도 깊은 어른의 품을 가진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타인의 어려움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섬세하게 배려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다한다. 진짜 어른은 자기 삶의 무게를 핑계 삼아 남에게 짐을 지우거나, 다른 이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지 않고 기꺼이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상처와 고통조차 타인을 이해하는 깊이로, 세상을 포용하는 넓이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내면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몇 해 전, 지역 활동을 하며 만난 스물셋 청년의 모습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 그는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어찌 보면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매일같이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꼼꼼히 기록했다. 낡고 허름했던 마을회관 한편은 그의 손길을 거쳐 어르신들의 오래된 사진과 손때 묻은 물건들, 그리고 그가 직접 기록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졌다. 주민들의 빛바랜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며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남긴 말이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저는 특별한 걸 하진 않았어요. 다만, 이분들이 살아온 시간을 존중하고 싶었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역사고, 저는 그 역사를 기록하는 작은 번역기일 뿐이에요." 그의 말 속에서 나는 나이보다 마음의 태도가 사람을 진정한 어른으로 만든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진정한 어른다움은 대단한 업적이나 화려한 성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그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이다.
진짜 어른은 잘나서 귀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니까 귀한 것이다. 자신이 겪은 삶의 상처를 핑계로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그 경험 덕분에 더 부드러워지고 더 단단해지는 사람. 상처가 아픔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는 깊이가 되고 세상을 포용하는 넓이가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어른이다. 그들은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거울 삼아 더 큰 따뜻함을 내보일 줄 안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가치를 매기지 않고, 세상이 정한 성공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으며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존중할 줄 아는 사람. 남들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그 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기꺼이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진짜 어른이다. 그들에게 타인의 삶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여정이다.
세상은 여전히 '네 나이대에 해야 될 일은 했냐'며 취업, 결혼, 내집장만, 자녀양육 등 정해진 인생의 수순을 준수했느냐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성과를 내고, 남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한다. 하지만 사람의 진짜 가치는 소유물이나 업적이 아닌 '존재 그 자체'가 되어야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유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이며,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태도에서 어른다움은 시작된다. 이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나이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의 크기다. '어른'이라는 말이 그저 주민등록번호상의 숫자를 의미하는 대명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깊이와 품격을 설명하는 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는 비단 우리 개인의 바람만이 아니라, 더 따뜻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어떤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은가? 그리고 당신 주변의 '진짜 어른'은 어떤 모습인가?를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