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슬의 Well-Life] 느리게 달리는 여름의 詩 — 무궁화호에서 나를 만나다

2025-07-11     박이슬

(시사캐스트, SISACAST= 박이슬 문화평론가)

 

한여름, 뜨거운 열기가 도시를 가득 채우는 오후. 나는 일부러 무궁화호를 탔다. KTX나 SRT처럼 빠르고 쾌적한 기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플랫폼 한편에, 무궁화호는 조용히 서 있었다. 에어컨은 숨을 헐떡이고, 낡은 좌석은 지난 시간의 자국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느린 기차는, 빠르게 사라지는 오늘의 속도 속에서 단단히 저항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요즘 사람들은 어디든 빠르게 이동하길 원한다. 도시간을 2시간 안에 주파하는 고속열차, 클릭 한 번이면 연결되는 영상 통화, 감정조차도 빠른 이해가 미덕이 되어버린 시대다. 하지만 무궁화호는 다른 리듬을 산다. 전광판에 뜬 무궁화호 ○○행이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나는 이미 현실의 속도에서 유배된 사람처럼 느껴진다.

기차가 출발하자 풍경이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흘러간다.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들이 잔잔히 스쳐간다. 비에 젖은 논두렁, 지나가는 자전거 한 대, 이름 모를 간이역 간판. 이런 장면들은 KTX에선 찰나의 배경화면에 불과하지만, 무궁화호에선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빠르게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느리게 바라보면 삶의 시가 되는 것들이다.

무궁화호의 가장 큰 묘미는 정차에 있다. 빠른 기차들이 외면한 이름 모를 간이역에 멈추는 이 기차는, 목적지보다 경유지에 더 큰 가치를 둔다. 플랫폼에 정차하는 짧은 순간 동안, 나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숨결을 어렴풋이 느낀다. 누군가는 퇴근길일 테고, 누군가는 부모를 배웅하며 눈물을 참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런 정차의 틈에서 나는 혼자라는 감각을 다시 떠올린다. 누구의 시선도 없이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마음속의 소음이 서서히 줄어든다. 책 한 권을 펼쳐놓고는 한 장도 넘기지 못한 채, 어느새 대학생 시절 내일로 여행을 하던 기억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기차는 바쁘게 달리지 않지만, 마음은 오히려 천천히 깊어진다. 혼자라고 느꼈던 이 여행 안에서, 가장 나다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기차가 길고 느리게 달리는 동안, 여행이라는 형식 안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여유를 누리게 된다.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식사를 하고, 누군가는 복도에 기대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이스커피를 마신다.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누군가는 조용히 유투브를 감상한다. 그 소리조차 이 여정의 일부가 된다. 좌석 위에 앉은 청년이 창밖으로 손을 흔드는 순간, 그 움직임조차 특별하게 느껴진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알게 된다. 이 여행에서 진짜 소중했던 것은 어디에 도착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풍경을 지나왔는가였다는 사실을. 무궁화호는 빠른 기차가 놓쳐버린 기억의 조각들을, 느린 속도로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낡은 커튼 사이로 들어오던 햇살, 천천히 지나가던 산골 마을, 말없이 스친 승객의 눈빛 같은 것들. 누구는 그것이 소소하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문화이고, 가장 오래 남는 여행이라는 것을.

그래서 무궁화호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속도를 거스르는 문화이고, 여백을 감상하는 예술이며, 한 여름날의 삶을 재정비하게 만드는 조용한 반성이다. 철컥철컥 레일을 지나는 기차 소리 속에서, 우리는 삶의 리듬을 다시 배우고, 잊고 지냈던 감정들을 다시 꺼내본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혀지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무궁화호는 말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정말 그렇게 빨리 가야만 했을까?”

때로는 천천히 가는 편이 더 많은 것을 남긴다.
무더운 여름날, 그 느린 기차 안에서 나는 속도가 아니라 ‘깊이’로 여행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깨닫는다.

때로는 목적지보다, 천천히 지나온 풍경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것을.

삶도 그렇지 않은가.

멀리 가는 것보다, 잘 머물고 잘 지나오는 것이 더 중요한 법.

무궁화호는 내게 그걸 가르쳐준 한 편의 여름이었다.

[시사캐스트]

 

박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