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슬의 웰라이프] 운명론과 인생총량의 법칙에 대한 고찰: 후회보다 희망을 선택하는 삶

2025-10-06     박이슬 문화평론가

(시사캐스트, SISACAST= 박이슬 문화평론가)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선다. 문득 지나간 순간을 돌아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되묻게 되는 일, 누구에게나 익숙한 감정이다.

하지만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결국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그것은 인생을 운명론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다.

운명론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미리 정해져 있으며, 인간의 힘으로 그 흐름을 바꿀 수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인생은 이미 커다란 틀 안에서 흐르고 있으며,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하든 겪어야 할 일은 형태를 달리할지라도 결국 나타난다는 관점이다.

그렇게 보면 과거에 대한 후회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아픔이나 고통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삶 속에 나타났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운명론이 단지 체념과 무기력의 철학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재의 삶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선택의 옳고 그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 이후의 태도다.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에서 필자는 또 하나의 개념을 소개하고 싶다. 바로 “인생총량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고통과 기쁨, 시련과 보상이 인생에서 결국 균형을 이룬다는 철학이다.

마치 커다란 저울처럼, 한쪽에 무거운 고통의 추를 달면, 언젠가 그만큼의 기쁨이나 성취가 반대쪽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겪는 아픔이 클수록, 이후에 맞이하게 될 긍정의 보상 또한 그만큼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 역시 그 법칙을 온몸으로 체감한 적이 있다. 문제의 시작은 필자 개인의 문제보다 구조가 불러일으킨 것이었음에도 모든 것이 필자에게 덧 씌워지고 하루아침에 사회적 신뢰를 잃는 고통을 겪은 적이 있다. 그 상황은 생각보다 더 처절하고 절망적이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사실이 아닌 일이 사실처럼 굳어가는 시선이었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고통이 필자에게 깊은 성찰을 안겨주었고, 그 안에서 진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오히려 그 시련 덕분에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회들을 만나게 되었고, 삶을 바라보는 시야와 마음도 전보다 훨씬 탄탄해졌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그 고통은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었고, 위기는 곧 기회다는 말처럼 반전은 밑바닥을 찍은 이후에 찾아온다는 말을 몸소 느낀 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실수와 아픔은 있다. 그리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하염없기 고통스러울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경험이 무게중심을 바꾸고, 삶을 더 탄탄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있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지만, 누군가는 그 고통을 딛고 생각지도 못한쪽으로 흘러가게된다. 삶의 진짜 가치는 바로 그런 순간들 속에 숨어 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때 만약에...”라는 상상은 끝이 없고,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갉아먹을 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순간,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이다.

우리의 내면에서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 삶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지고, 나아가 인생의 결 자체가 달라진다. 선택의 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택 이후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인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필자와 비슷한 경험으로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이제는 그 고통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 고통은 내려놓고, 아직 펼쳐지지 않은 그 이후의 삶에 눈을 돌려보자.

오늘 하루를 성실히 맞이하는 방법만이, 내일의 흐름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열쇠가 된다. 고통이 클수록, 그것을 이겨낸 당신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이도 더욱 크다는 것을, 부디 잊지 말길 바란다. [시사캐스트]

 

박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