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돋보기] HBM 잭팟 터진 SK하이닉스, 성과급도 ‘슈퍼 사이클’
(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지난 1월 28일, SK하이닉스가 매출 97조 원, 영업이익 47조 원이라는 역대급 실적을 공시하며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위 자리에 등극했을 때, 시장의 눈길은 재무제표의 숫자 너머 ‘지갑’으로 향했다. 그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난 4일 SK하이닉스 사내 게시판에 공지된 초과이익분배금(PS) 지급률은 기본급의 2964%. 기본급이 연봉의 20분의 1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봉의 148.2%이란 경이로운 수치였다.
연봉이 1억 원인 과장급 직원이라면 앉은 자리에서 보너스로만 약 1억 5000만 원을 챙기게 된 셈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이게 바로 갓이닉스(God+하이닉스)의 위엄”이라거나 “삼성전자보다 하이닉스에 간 선배가 진정한 승자”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대한민국 대기업 성과급 역사에 남을 이 파격적인 보상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터진 잭팟이 아니었다. ‘만년 2위’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사투를 벌여온 한 기업의 체질 개선이 완성됐음을 알리는 승전보에 가까웠다.
사실 10년 전만 해도 SK하이닉스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다. 2013년 세계 최초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개발하고도 시장의 냉담한 반응과 낮은 수율 탓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만 해도 HBM은 “돈만 많이 들고 쓸 곳은 없는 무기”라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이라는 시대의 파도가 덮치자 상황은 반전됐다.
엔비디아가 필요로 하는 압도적인 대역폭을 구현할 수 있는 건 SK하이닉스의 HBM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에 대한 집요한 고집은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률 58%라는 기록적인 수익성으로 되돌아왔다. 범용 메모리 시장의 출혈 경쟁에서 벗어나,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파트너로 거듭난 것이 이번 역대급 성과급의 토대가 됐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성과급과 보너스의 차이를 명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흔히 ‘보너스’라 부르는 상여금은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에 명시돼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후불제 임금’의 성격이 강하다.
반면 성과급(인센티브)은 기업의 경영 성과에 따라 지급 여부와 규모가 결정되는 ‘변동급’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기존에 존재하던 ‘기본급 1000%’라는 성과급 상한선을 노사 합의로 과감히 폐지한 게 결정적이었다.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삼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상한선에 구애받지 않고 이익의 결실을 직원들과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사기 진작을 넘어, 갈수록 치열해지는 반도체 인재 전쟁에서 ‘최고의 인재에게는 최고의 보상을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시장에 던진 셈이다.
이러한 ‘하이닉스 발(發) 성과급 폭풍’은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은 올해 초과이익성과급(OPI)으로 연봉의 47% 수준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1인 평균 급여가 더 높다고는 하지만, 절대적인 성과급 액수에서 하이닉스에 뒤지게 되자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해졌다.
비단 반도체 업계뿐만 아니다. 역대급 실적을 낸 현대자동차와 기아, 전장 사업에서 대박을 터뜨린 LG전자 등도 화끈한 성과급 잔치를 예고하고 있다. 반면 업황 부진에 시달리는 석유화학이나 디스플레이 업종은 지급률이 예년만 못해 직원들의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성과급이 ‘기업 성장의 결실’인 것은 맞지만, 업종 간의 보상 격차가 심화되면서 발생하는 상대적 박탈감은 한국 사회가 고민해봐야 할 또 다른 과제로 남았다.
물론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는 AI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빅테크들의 AI 투자가 실제 수익(ROI)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HBM의 독주 체제도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수요 둔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SK하이닉스가 ‘갓이닉스’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2026년 양산 예정인 6세대 HBM4에서도 압도적인 기술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 송현종 SK하이닉스 사장이 “미래 투자와 재무 안정성 사이의 최적의 균형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성과급은 기업이 직원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공격적인 투자’다. 파격적인 보상을 통해 확보된 인재들이 다시 초격차 기술을 만들어내고, 그 기술이 다시 막대한 이익으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게 SK하이닉스가 보여준 성공 방정식이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