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돋보기] 머스크가 태극기 달 때, 우리 제조 현장 늙어간다

2026-02-24     최기훈 기자

(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지난 2월 17일(현지 시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자신의 SNS에 태극기 이모지를 띄웠다. 한국의 반도체 설계 인재를 찾는다며 노골적인 구인 광고를 낸 것이다. ‘반도체 강국’ 한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박수를 쳐야 할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빅테크가 탐내는 ‘A급’ 반도체 엔지니어들의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한국 경제의 뿌리인 제조업 고용 시장에는 유례없는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사람 대신 로봇이, 숙련공 대신 AI가 자리를 채우며 청년들은 갈 곳을 잃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 현장에서 ‘인간의 자리’가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와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 취업자 비중은 15.2%까지 추락했다. 2013년 산업 분류 개편 이후 최저치다. 2013~2017년까지만 해도 17%대를 굳건히 유지하던 제조업 고용의 위상은 이제 15% 선마저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난해 제조업 취업자는 438만 2000명으로 전년보다 7만 3000명 줄었다. 3년 연속 감소세다. 단순히 경기가 나빠서 일어난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외생적 변수를 제외하면 최근 5년 사이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일자리 실태를 보여주는 모든 지표가 ‘제조업 고용의 침몰’을 가리키고 있다.

아이러니한 건 첨단 산업과 전통 제조업의 극명한 온도 차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코리아의 AI 칩 엔지니어를 구한다며 태극기를 올릴 만큼, 글로벌 빅테크들은 한국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설계 인력 등 이른바 ‘귀한 몸’들을 향해 뜨거운 러브콜을 보낸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KDI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까지 높여 잡았다.

하지만 이런 ‘반도체 낙수효과’는 제조 현장 하부 조직까지 닿지 않는다. 오히려 그늘은 더 짙어졌다. 고용 충격은 가장 약한 고리인 청년층에 집중됐다. 지난해 제조업에서 일하는 15~29세 취업자는 전년 대비 6만 1000명 급감했다. 마이크로데이터로 확인되는 2014년 이래 최대 낙폭이다.

반면 60세 이상 취업자는 5만 4000명 늘었다. 청년들이 떠난 자리를 고령층이 메우거나, 혹은 청년들이 진입할 통로 자체가 막혀버린 셈이다. 제조업 취업자 중 청년 비율은 10.3%로 주저앉았다.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는 제조 현장은 활력을 잃고 빠르게 노화하고 있다.

청년들이 제조업을 외면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자리가 사라진 것일까. 답은 후자에 가깝다. 특히 로봇 도입이 활발한 자동차 업계의 고용 상황은 참담하다. 현대자동차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2028년부터 생산 현장에 투입될 것이라는 예고는 단순한 기술 진보의 선언이 아니라, 인간 노동자에 대한 ‘퇴거 통보’에 가깝다.

한국

실제로 자동차와 트레일러 제조업의 상용 근로자(정규직 등)는 2년 연속 감소했다. 특히 대형 사업장의 상용 근로자 감소 폭은 최근 6년 사이 가장 컸다. 여기에 트럼프 정부의 고관세 정책이라는 통상 악재까지 겹치며 기업들은 채용 문을 꽁꽁 걸어 잠갔다.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다. 지금까지가 로봇에 의한 ‘육체 노동’의 대체였다면, 앞으로는 AI에 의한 ‘지적 노동’의 침공이 시작된다. 사무, 기획, 엔지니어링 등 청년층이 선호하던 양질의 일자리마저 AI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법률과 회계 AI가 고도화되면서 전문직 수습처조차 구하기 힘든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AI와 노동의 미래는 낙관과 비관이 엇갈린다. 한국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설계 인력은 머스크가 직접 모셔갈 만큼 대접받지만, 그 외 대다수 제조 근로자는 로봇과 AI의 등쌀에 밀려 ‘쉬었음’ 인구(278만 명)로 편입되고 있다.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와야 하지만, 기업은 이미 ‘인간 없는 공장’을 꿈꾸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선심성 공약보다는, AI 민감 업종 근로자의 재교육과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하다”면서 “머스크가 SNS에 올린 태극기는 한국 반도체의 승전보일지 모르나, 매일 아침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청년들에게는 차가운 박탈감의 징표”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제조 현장의 절망이 너무나 깊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