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돋보기] 폭등하는 기름값, 강제로 눌러도 괜찮을까

2026-03-11     최기훈 기자

(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서울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민생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3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석유 최고가격제’를 전격 꺼내 들었다. 

석유사업법상 산업통상부 장관은 석유의 수입·판매 가격이 현저히 등락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 최고액이나 최저액을 정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주 시행을 목표로 정유사 공급가에 상한선을 두는 고시 제정에 착수했으나, 시장에서는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이토록 강경한 카드를 꺼낸 배경에는 정유업계의 고질적인 가격 결정 구조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제 유가가 오를 때는 즉각 소매가에 반영하면서, 내릴 때는 시차를 두고 천천히 내리는 모순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유사가 주유소에 기름을 먼저 공급한 뒤 나중에 가격을 확정하는 ‘사후정산제’는 불확실성을 키우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주유소 입장에서는 도매가가 얼마나 뛸지 모르는 상황에서 손해를 피하고자 소매가를 선제적으로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동체의 어려움을 이용해 부당 폭리를 취하는 악행에 단호히 대응하라”며 범부처 합동 점검과 담합 조사를 지시한 것도 이런 시장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국제유가

다만 상한제를 시행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도 있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인위적인 가격 통제가 불러올 ‘공급 절벽’ 현상이다. 정부가 정한 상한선이 국제 유가와 연동된 원가보다 낮아지는 ‘가격 역전’이 발생할 경우, 팔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가격이 억눌리면 정유사는 수익성이 낮은 국내 시장 대신 해외 수출로 물량을 돌리려 하고, 주유소는 영업시간을 단축하거나 판매를 기피하게 된다. 과거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겪었던 ‘주유소 줄서기’나 화물차 운행 중단에 따른 물류 마비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매점매석 금지’와 ‘국내 판매 의무화’ 고시를 병행하겠다고 밝혔지만, 민간 사업자의 영업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논란과 함께 암시장이 형성되는 등 시장 왜곡이 심화될 수 있다.

또 다른 걸림돌은 막대한 재정 보전 비용이다. 현행 석유사업법 제23조에 따르면 최고가격 지정으로 인해 사업자에게 발생한 손실은 국가가 재정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유가 상승세가 장기화될 경우 정유사와 주유소의 적자를 국민의 혈세로 메워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전국

정부는 최근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대로 국채 발행 없는 추경 편성이 가능하다고 낙관하고 있지만,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장기전으로 치달을 경우 그 비용은 가늠하기 어렵다. 결국 기름값을 직접 누르는 방식이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서민들의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신호탄이지만, 동시에 시장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칼날이다. 정부는 가격 상한제와 함께 비축유 방출, 유류세 추가 인하, 저소득층 대상 긴급 생활지원금 지급 등 가용 가능한 모든 정책 옵션을 병행하며 시장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더 큰 문제는 규제만으로는 글로벌 전쟁 여파로 요동치는 국제 유가를 잠재우기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인위적인 가격 압박이 자칫 ‘공급 중단’이라는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오지 않아야 한다”면서 “상한액 산정 과정에서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유연한 조정 기제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