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돋보기] 먼 나라 전쟁이 가까운 내 이웃 ‘이자 폭탄’ 된 이유
(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한국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빚투(대출로 투자)’족들에게 유례없는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중동의 전운이 한국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밀어 올리며 가계 경제의 목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는 지난 13일 기준 연 4.250∼6.504%로 집계됐다. 불과 두 달 전인 1월 중순과 비교해 금리 상단이 0.207%포인트 상승하며 7% 선에 바짝 다가섰다. 한 은행의 경우 현재 금리 수준이 2023년 10월 말 이후 약 2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50%로 8개월째 동결하고 있음에도 대출 금리가 뛰는 이유는 무엇일까. 범인은 바로 ‘은행채 금리’다. 중동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었고, 이는 국고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국고채를 따라 은행의 자금 조달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 금리가 두 달 새 0.280%포인트 급등하면서 대출 금리를 직접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시장 변동성도 극심하다. 금융채 5년물 금리 변동 폭은 지난해 동기 대비 약 3배 수준으로 커졌다. 며칠 사이에도 0.1~0.2%포인트씩 등락하는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지면서, 예비 차주들 사이에서는 대출 실행 시점을 두고 ‘금리 눈치게임’이 벌어지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2021년 부동산 폭등 당시 ‘영끌’로 집을 샀던 차주들의 금리 재산정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연 2~3%대 초저금리로 대출을 받았던 차주들은 통상 ‘5년 고정 후 변동금리’ 조건을 선택했다.
이제 2026년으로 접어들며 고정금리 기간이 끝나는 차주들은 당장 6%대 금리를 적용받게 된다. 이자 부담이 산술적으로 2배 이상 폭증하는 셈이다. 여기에 강남 3구를 중심으로 아파트값 하락세까지 겹치면서, 자산 가치는 줄고 빚만 늘어난 일부 차주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지금이라도 집을 팔아야 하느냐”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이자 부담에도 대출 잔액은 오히려 늘고 있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3월 들어서만 6800억 원 넘게 불어났는데, 그 중심에는 신용대출(+1조 4327억 원)이 있다. 특히 개인 마이너스 통장(마통) 잔액은 이달에만 1조 3000억 원 넘게 뛰며 40조 7000억 원을 돌파했다.
주식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저가 매수를 노리거나 증권사 마진콜을 막기 위해 고금리 신용대출까지 끌어다 쓰는 ‘막바지 베팅’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 은행권 대출을 조이자 수요는 상호금융(농협·새마을금고)으로 번지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 이에 당국이 상호금융의 가계대출 목표치를 사실상 ‘0’으로 설정하는 등 고강도 압박에 나서자, 이제는 대출 수요가 대부업으로까지 흘러가고 있다.
실제로 상위 대부업체 30곳의 지난해 4분기 신규 대출액은 7955억 원으로 2022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다주택자 수도권 아파트 대출 만기 연장을 제한하는 ‘초강력 규제’까지 검토하면서, 갈 곳 없는 차주들이 고금리 사금융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규제는 총량만 조절하는 일차원적 방식”이라며 “급전이 필요한 취약 차주들이 고금리 대부업으로 유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개별 차주의 상황에 맞는 세밀한 심사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중동의 포성이 한국 영끌족의 이자 부담으로 치환되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시장 금리는 이미 인하 주기를 마치고 상승기로 진입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금리의 파고가 더 높게 치솟을 것으로 예견되는 만큼, 가계의 선제적인 부채 관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