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 'WHY'] 당신의 취향은 ‘왜' 어제에만 머물러 있는가? (2부. 알고리즘을 벗어난 나만의 엇박자)
- '왜'라는 근원적 물음으로 당연한 것들의 다양한 이면을 들춰보는 시간 - 문화적 상식을 비틀어(왜:歪),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보는 역설 인문학 산책 - 인간의 발칙한(?) 오류 : 촘촘한 예측 시스템이건만 왜 어긋날 땐 짜릿?
(시사캐스트, SISACAST=양태진 기자)
그렇다면 이 정교한 사육장(?) - 알고리즘의 추천 공간 -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화면을 무의미하게 위아래로 끌어당기며 '새로고침'을 연타하거나 알고리즘을 초기화해 보겠다고 취향 설정을 만지작거리는 임시방편, 내지는 애플리케이션을 아예 삭제하거나 계정을 전환하는 1차원적인 방식만으로는 결코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이 또한 시스템이 허용한 사각틀 안에서의 움직임일 뿐이기에, 데이터 감시망이 미치지 않는 '의도적 무작위성'을 삶에 이식하는, 그런 치밀하고도 치열한 고도의 전략이 필요할 터,
이에 기계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오류'를 스스로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하는 바, 이는 알고리즘이 구축한 선형적 세계관에 대한 철학적 저항이자, 기계의 파라미터 속에 박제된 자아를 되찾는 실천적 투쟁이 될 것이다.
그럼 그 구체적인 첫 번째 실천으로 상황주의자* '기 드보르(Guy Debord)'*가 제안한 공간적 방랑인 ‘표류(Dérive)’*의 개념을 디지털 세계로 확장한, '디지털 표류(Digital Drift)'를 시도해 볼 수 있겠다. 이를 풀어 말하자면, 가끔은 시스템이 절대로 추천하지 않을 만한 이질적인 단어들, 이를테면 '18세기의 복식사'나 이름 모를 행성의 지질학 같은 것들을 검색창에 무심히 던져보는 것으로
* 상황주의자(Situationist) : 1950~60년대 유럽에서 활동한 전위 예술가와 철학자 집단으로, "자본과 미디어가 짜놓은 수동적 일상에서 벗어나 인간이 주체적으로 '대안적 상황'을 만들어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사상가를 지칭한다.
* 기 드보르(Guy Debord, 1931~1994)와 표류(Dérive):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전위 예술 집단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SI)’의 주도자인 그는 현대 사회를 자본과 미디어가 편집해 놓은 가공한 '이미지(스펙타클)'를 인간이 주체성을 빼앗긴 채 수동적으로 관조만 하는 ‘스펙타클(Spectacle) 사회’로 규정했다. 그가 제안한, 권력과 자본이 설계한 도시의 효율적 동선을 거부하고, 목적 없이 공간을 무작위로 방랑하며 실존을 회복하자는 실천적 저항 운동이 바로 ‘표류’인 것으로 본 칼럼에서는, 알고리즘의 정교한 추천 트랙을 이탈하여 디지털 영토를 주체적으로 방랑하는 '디지털 표류'의 개념으로 확장·차용했다.
이는 단순히 AI에게 더 고도화된 취향을 학습시키기 위한 '기술적 유용성'의 취지가 아니다. 알고리즘의 촘촘한 예측 범위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림으로써 기계가 가둔 데이터의 영토 너머에 엄연히 존재하는, ‘뜻밖의 세계’들을 주체적으로 목격하겠다는 일종의 상징적 선언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의 '자기 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환경을 통제할 때 가장 큰 효능감과 행복을 느낀다고한다. 알고리즘이 그 '주도권'을 교묘하게 빼앗아간 측면에서 우리는, 추천받은 영화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그것은 알고리즘의 승리지 우리의 발견이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에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낸 이름 없는 밴드의 노래가 알고리즘이 골라준 차트 1위 곡보다 더 소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노래 속에 우리의 '선택과 정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손끝으로 먼저, 그 첫번째 실천을 감행해 보자.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취향의 미끼'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일상적 밀당으로 (스마트폰) 첫 화면의 가장 매력적인 추천 영상을 매일 몇번씩 모른 척해 보는 것. 그리고 기계의 호출에 조건반사적 반응을 유도하던 앱의 알림들 또한 과감히 꺼두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누군가는 이 사소한 외면이 거대한 시스템을 타파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냐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나의 무의식을 완벽하게 간파해 낸 기계의 낚시 갈고리를, 나만의 이성으로 끊어내는 이 짧은 1초야말로 기계에 저항하는 가장 첫 번째 주체적 반란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평소라면 절대 보지 않았을 이질적인 콘텐츠에도 짐짓 '좋아요'를 눌러보자. 시스템 예측 모델에 이 장난스러운 오답을 제출해 보는 것 또한, 나름의 방법 중 하나가 될지 모르니까.
다음 두 번째 방법으로는, 효율성의 세계에선 ‘낭비’라 치부되는 ‘아날로그적 무작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목적지 없이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보거나, 서점에서 눈을 감고 손끝에 처음 와 닿는 책들을 펼쳐 드는 무모함과 같은 투박한 행동들로 '자유의지의 증명'을 몸소 실천해 보는 것.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최적의 경로(Shortest Path)를 과감히 이탈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알고리즘이 설계하지도 못하거니와 설계할 수도 없는 진짜 삶의 풍경과 마주하게 될 터,
인간의 유한함이란 본디 헤매고, 낭비하고, 서툴게 부딪히는 과정 속에서만 그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까닭으로, 알고리즘의 안락한 울타리를 잠시 걷어내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야말로 현 AI 시대에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가장 존엄한 엇박자가 아닐런지.
이토록 사소하고 발칙한 엇박자들은 알고리즘에게 '나를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마라'라고 하는 무언의 선언이자 자기 확신으로도 읽힌다.
이에 더해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최적의 경로에는 실패가 없듯 '뜻밖의 행운(Serendipity)'도 없다라는 것.
다시 말해, 의도적으로 헤매는 투박한 우연 속 '운'과 같은 것들은 광활한 가능성 영역 내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기계의 트랙을 과감히 이탈해 방랑을 자처한 우리 인간들만이, 단순한 운을 넘어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아주 경이로운 선물이자 특권 또한 쟁취할 수 있는 것 아닐까.
* 세렌디피티(Serendipity):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얻은 뜻밖의 발견이나 발명을 뜻하는 말. 본 칼럼에서는 알고리즘이 설계한 예측 가능한 경로를 벗어나, 의도적인 방랑과 헤맴을 자처한 인간만이 맞이할 수 있는 주체적인 우연과 뜻밖의 행운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취향 또한, '맥락'은 던져주지만 정작 생생한 '질감'은 전해주지 못하는 알고리즘으로부터 탈출시켜야 한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삶의 질감을 직접 만지고 부딪히는 과정에서만이, '진짜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확실하고도 선명한 취향을 얻게 될 터,
데이터로 환원된 취향은 한낱 매끄러운 껍데기에 불과한 것으로, 진짜 취향은 땀 흘려 찾아낸 심해의 보물처럼, 얼마간의 고통과 인내가 수반된 탐색의 결과물이어야만 한다는 얘기.
기계가 정제해 둔 안락함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한 불편함을 통과할 때에 비로소, 취향은 단순한 소비 목록을 넘어 한 인간의 견고한 정체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제언을 더하자면, 인간에게 타인과의 연결이 필수적인데 있어 나와 취향이 똑같은 이들만 모아놓은 커뮤니티도, 알고리즘이 설계한 또 다른 형태의 감옥이 될지 모른다. 생각이 복제된 방 안에서는 취향의 진화도, 사상의 확장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이기에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가 제시한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 이론처럼, 오히려 나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낯선 이들과의 느슨한 연대가 훨씬 더 혁신적인 정보와 예기치 못한 변화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와 결이 다른 타인과의 불편한 충돌과 이질적인 마찰도 감내하다보면 어느새, 진짜 생각지도 못한 더 새로운 창조의 불꽃이 활활 타오를지 모를 터,
그럼 이제 결론이다. 내가 원할 때에만 기계를 깨우는 이 작은 주도권 회복이야말로, 사육장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가장 주체적이면서도 즉각적인 반란이 될 것이기에
우린 이러한 알고리즘의 추천을 거부할 권리를 항시 염두해야한다. "실패해도 좋으니 내가 직접 고르겠다"라는 우리 각자의 선언과 함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말했듯,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해 나가는 '자유'라는 형벌을 받은 존재이기에 실패 속에서 얻은 작은 발견 하나가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100개의 성공적인 추천보다 삶을 더 풍요로이 할 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선택의 고민'과 ‘예측 불가능함’에 더해, 트랙을 벗어나 길을 잃고 헤매는 불편한 경험, 시스템이 분류한 통계적 샘플 되기를 거부하는 발칙한 엇박자들로 자신만의 취향 속 진짜 주인이 되어보시길.
그렇다면 이제 다시 넷플릭스나 유튜브 앞에 섰다고 가정해 보자. 오늘의 알고리즘이 권하는 1위 콘텐츠를 과감히 지나칠 수 있겠는가? 대신 가장 구석에 있는,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낯선 제목을 클릭할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그 어떤 데이터의 총합보다도 훨씬 더 큰 자신만의 숭고한 영혼을 길잡이 삼아, 오늘 하루 기적 같은 '오류'를 감행해 보자. 이 오류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존재한다는, 가장 명확하고도 확실한 증거가 되어줄 테니까.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