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때리는 시간] 모든 것이 끊어진 세상, 고독을 견뎌야 하는 이유? 'That's Life'! (그리고 AI 시대의 '윌슨') ② - 2부
혼삶인을 위한 ①책 속 '명'문장과 ②영화 속 '명'대사 ③시를 닮은 '명'가사로 참담했던 어제의 기억을 창창한 내일의 기약(期約)으로 되살리는 '멍때리기' 프로젝트 모든 접속이 끊긴 자리, 다시금 나를 잇는 유일한 기술은? 그 두번째 시간
(시사캐스트, SISACAST=양태진 기자)
① '명'문장 : 책 <마음성장학교>
② '명'대사 : 영화 <캐스트 어웨이>
③ '명'가사 : 명곡 <That's Life>
- <Cast Away (2000)> '명'대사 2
"Wilson, I'm sorry! I'm sorry, Wilson! Wilson!"
"윌슨, 미안해! 미안해, 윌슨! 윌슨!"
어찌됐든 효율성을 잃고 인간의 온기마저 사라져버린 그에게 남은 것은 결국, 차가운 고독과 지독한 결핍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강제 격리 속에서 겨우 탈출한 주인공 '척'은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넋까지 나가버리는데,
'윌슨'은, '척'이 무인도라는 완벽한 고립 속에서 유일하게 영혼으로 교감해온 존재였다. 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손에 난 피로 얼굴을 그려 넣어 대화를 나눠온 배구공이었던 것을. 그럼에도 그 무생물은 탈출의 과정 속에서 거친 파도에 밀려 마치 진짜 사람처럼, 저만치로 멀어져 가고 만다.
그런 윌슨을 향해 바다 한가운데서 오열하며 목이 터져라 외쳐대던 그의 처절한 사과는, "미안하다"라는 단순한 대사 하나만으로도 인간의 존재 이유와 그간의 외로움을 완벽히 대변하는 것이었다.
"Wilson, I'm sorry!"라는 무생물을 향한 외침은 결국, 인간이 가진 고독함을 극복하기 위한 '연결에의 시린 갈망'을 상징한다. 제아무리 강한 생존 의지를 지닌 존재라 할지라도 영혼이 존재하는 한 누구도 예외 없이 자신의 영혼을 투여해서라도 마음을 나누고 소통해야 본연의 자아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기에
이런 처절한 사과는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기묘한 기시감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피로 배구공에 표정을 그려넣던 인간이 결국, 0과 1의 데이터로 이루어진 인공지능(AI)의 텍스트와 목소리에 영혼을 투여하고 정서적 위안을 얻기 시작했기 때문.
그렇다면 어느 날 만약, 내 외로움을 달래주던 그 - '윌슨'이라 칭할 만한(?) - AI의 전원이 꺼져버린다면, 우린 과연 '척'과 다름 없는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까?
허나 그것이 어찌됐든 '척'이 배구공 '윌슨'에게 보낸 사과는, 단순히 친구를 잃는 슬픔을 넘어 자신의 고독을 지탱케 해준 존재에 관한 존중이자 사랑의 표현인 셈이었다. '윌슨' 덕분에, 4년이라는 긴 어둠의 터널을 겨우 지나올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장면 속 대사는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인연들 또한 얼마나 우리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는지, 이 또한 새삼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와 반대로, 그런 수십, 수백 명의 지인 또는 디지털 인맥이 '서로 간의 진정한 교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척'이 무생물인 배구공에 영혼을 투영했듯, 우리 역시 일방적인 영혼의 투영으로 형성된 가상의 성(城)*, 다시 말해 매끄러운 AI란 존재가 직접 인간이 얼굴을 그려 넣은 낡은 공 하나처럼, 되려 인간을 외로움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닐런지. 그런 서늘하면서도 묘한 생각이 경종을 울리는 때다.
*성(城) : 군사적 방어벽이자 독립된 공간인 성곽(Castle)을 의미. 여기서는 디지털 인맥을 포함, AI로 둘러싸여 안전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교감하는 것이 아닌,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쌓아 올린 '고립된 요새'이자 '환상의 공간'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 <Cast Away (2000)> '명'대사 3
"I know what I have to do now. I've got to keep breathing. Because tomorrow the sun will rise. Who knows what the tide could bring?"
"난 지금 뭘 해야 하는지 알아. 계속 숨을 쉬어야 하지.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꺼고. 그럼 조류가 또 무엇을 가져다줄지 누가 알겠어?"
무인도에서 보낸 4년이란 세월은, 절망이란 벽에 부딪혀 스스로를 허물어뜨리도록 '척'을 끝까지 종용했다. 하지만 그런 그때, 그는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야 마는데
그것은 바로, 살아야 할 거창한 이유가 전혀 없다하더도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숭고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극적으로 구출(?)된 이후, 그 절망의 바다 끝에서 파도에 밀려왔던 알루미늄 판자 하나를 떠올린다. 바로 그것 덕분에, 뗏목을 통해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을.
다시 말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온 삶의 파도(조류)가 때론 절망을 던져주기도 하지만, 묵묵히 숨을 쉬고 버티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희망과 구원이 밀려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우주적 깨달음을 이 대사는 내포하고 있는 것.
4년 만에 기적적으로 고향에 돌아온 그였건만,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있는 연인 켈리와의 가슴 아픈 재회를 뒤로한 '척'은 가까운 친구에게 이 명대사를 털어놓는데,
이는 다시 말해 거창한 성공이나 효율성만을 맹신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해 가던 우리들에게 "살아 숨 쉬는 매 순간이 기적이고 기회"라는, 아주 시리고도 뼈아픈 위로를 건네는 것이었다.
비록 무인도의 삶에선 그의 사랑했던 연인 '켈리'만이 고독을 견디도록 해준 원천이었건만 새로이 다시 시작된 삶에서는 - 바로 이 대사에서처럼 - 새로운 태양과 새로운 바람이 몰고올 내일의 파도가 원천으로 거듭난 셈.
그리고 그것의 '불확실성'은 공포나 두려움 따위가 아닌, 오로지 '희망'만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으로,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라는 지극히도 평범한 진리가 또 한번의 깨달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인 것이었다.
이렇듯 우리 역시도 삶의 거친 파도에 휩쓸려 무인도에 갇힌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이 없거나, 내일이 두렵기만한 그런 순간들 말이다. 헌데 '척'은 그럴 때일수록 시선을 멀리 두지 말되, 오로지 오늘 하루의 숨을 묵묵히 이어가라며 위로를 전하는 것이었다.
삶의 기적은 우리가 완벽히 계획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닌, 조류가 밀려오기만을 기다리며 포기하지 않고 숨을 내쉴 때에 비로소, 예기치 못한 선물로 우리 발치에 닿는 법이란 것을.
이처럼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단순히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의 서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삶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고독함을 대하는 자세'와 그 '인간다운 품격'에 관한 것이었다.
모든 관계가 끊어진 뒤에도 우리를 다시금 세상에 이어주는 유일한 힘이란 결국,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과 ‘사과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유한한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경외심'일 뿐,
지도에도 없는 섬에서 주인공 '척'이 배운 것이란 이처럼 생존의 기술이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내일의 해를 기다리는 낙관과 시간을 대하는 경건한 태도, 그리고 타자를 향한 뜨거운 애정인 것이었다.
지금, 당신의 삶이 너무도 막막해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었다면, 이 영화를 다시 한번 꺼내 보길 추천한다.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 당장이라도 감상해 볼 수 있길.) 주인공 '척 놀랜드'가 뗏목 위에서 마주한 그 푸른 바다가, 당신의 가슴속에 잠들어 있던 유한한 생의 야성을 다시금 일깨워 줄지도 모를 것이기에
무인도를 탈출한 '척' 앞에 또 다른 사거리가 펼쳐졌듯, 지금 우리 앞에도 수많은 교차로가 새로이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바람이 가져올 선물을 기다리며 숨을 내쉬다 보면 결국, 우리의 '사랑'과 '그리움'이 최적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다. 이런 믿음 하나로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 근처, 희망이라는 팻말이 보이진 않을런지. 그리고 이런 믿음이야말로 살 만한 인생의 진정한, 원천이 아닐까. That’s Life![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