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슬의 웰빙라이프] 세탁기는 혼자 살아도 그대로 크다
(시사캐스트, SISACAST= 박이슬 문화평론가)
혼자 산다고 해서 세탁기가 절반으로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세탁기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이불도 빨아야 하고, 겨울 점퍼도 세탁해야 하며, 한 번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드는 전기와 수도요금이 아까워 빨랫감이 어느 정도 쌓일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삶은 빨래의 양만 조금 적을 뿐, 세탁기의 역할은 가족과 함께 사는 집과 다르지 않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탁기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냉장고도, 에어컨도, 청소기도 그대로다. 혼자 살아도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냉장고에는 김치와 달걀, 생수와 반찬이 있어야 하고, 먼지는 매일같이 바닥에 내려앉는다. 월세와 관리비, 인터넷 요금 역시 사람 수가 아니라 집을 기준으로 부과된다. 혼자 산다고 해서 삶의 기본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마트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만난다. 대용량 세제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혼자 쓰기에는 너무 많다. 1+1 행사 상품은 반갑지만 결국 하나는 유통기한을 넘기기 쉽다. 수박 한 통은 선뜻 집어 들기 어렵고, 배추 한 포기는 김치를 담그기도 전에 시들어 버린다. 그래서 많은 1인 가구는 조금 비싸더라도 소포장 제품을 고른다. 더 적게 사지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혼자 사는 삶은 작은 일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형광등 하나를 교체하려다 사다리를 살지 말지 고민하고, 커튼 하나 달기 위해 인터넷 영상을 찾아본다. 감기에 걸린 날에는 약국에 다녀오는 일조차 쉽지 않고, 생수 한 묶음을 집 안까지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다.
함께 살면 누군가 자연스럽게 도와주었을 일들이,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하루의 과제가 된다.
그렇다고 1인 가구의 삶이 특별히 불행한 것은 아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자신만의 생활 리듬을 만들어가는 사람도 많다. 다만 분명한 것은, 혼자 사는 삶이 결코 “절반의 삶”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혼자 살아도 해야 할 일은 그대로이고, 감당해야 할 책임도 그대로다. 줄어드는 것은 가족의 수이지 삶의 무게는 아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는 이런 변화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카페에는 혼자 앉을 수 있는 창가 자리가 늘었고, 식당에는 1인 메뉴가 생겼다. 여행도, 영화도, 캠핑도 혼자 즐기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혼자 살아가는 삶은 어느새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우리는 인구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 인구 감소 같은 숫자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삶의 변화는 통계보다 먼저 일상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빨랫감이 쌓여 있는 세탁기 앞에서, 유통기한을 계산하며 장을 보는 손끝에서, 저녁 식탁에 놓인 한 벌의 수저에서 사회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세탁기는 오늘도 묵묵히 돌아간다.
어제와 같은 크기로, 어제와 같은 소리를 내며.
달라진 것은 세탁기가 아니라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이다.
그래서 가끔은 통계보다 생활을 먼저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거창한 숫자가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시대의 변화는 거대한 사건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변함없이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처럼 조용히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