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_비행선 02호] ​1인 가구 천만 시대, 그 외로운 큐브(?) 안으로 띄우는 두 가지 독백 ② (下)

귓속 하늘을 유영하다 인생의 항로까지 수놓는 나만의 뮤직 플레이리스트 더하기 ​선율의 정수를 엄'선(選), 청각의 '선(線)'을 잇는 소리 궤도 이탈 '비행(非行)선' 로버트 팔머의 ‘Addictions’와 코어즈의 ‘Talk on Corners’로 고독의 주파수를 맞추다

2026-07-25     양태진 기자

(시사캐스트, SISACAST=양태진 기자)

단절된 현실 대신 잠든 꿈속으로 유예된 소통만을 갈구하던 비극적 서사는, 이제 더는 상처 입지 않으려 관계의 명제까지 비틀어버린 또 다른 고독의 풍경으로 안내한다. 타인에게 닿지 못하던 절망이 자발적 고립으로 이어졌다면 이젠 역설적이게도, 그 관계의 허황됨을 영리하고도 서글픈 방어기제로 풀어내는 것.

그것은 ​온기 없는 연결에 지친 현대인들 대부분이 역설의 언어로써 스스로를 보호해 왔던, 다가올 상처를 예감한 뒤에 차라리 아무런 확신도 구하지 않겠다는 모순적 태도와도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바,

 

'더 코어스'의 명반 <Talk on Corners> 속 또 다른 숨은 보석과도 같은 트랙 <Don't Say You Love Me>는 사랑하는 이, 또는 그 어떤 소중한 존재가 영원히 내 곁에 머무르길 원하면서도, 제목 그대로 정반대의 상황을 상정하며 "나를 사랑한다 말하지 말아달라"라며 조심스레 경고의 일침(?)을 가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스탠다드 재즈의 명곡 <All of Me>가 "나를 사랑한다면 기꺼이 다 가져가세요"라며 '올인'의 기치를 내걸었던 것에서나, 또 다른 고전 명곡 <All or Nothing at all>의 "전부가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주지 마세요"라며 양극단에 치우친 결연에 찬 순수성과도 심히 닮아있는 것. 차라리 자신의 온전함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그 어떤 상처도 주지 말아달라는, 현대인의 보편적 사고방식과도 매우 부합되는 측면이 아닐 수 없는데, 

 

이러한 세련된 선율 속 구슬픈 가사를 숨겨두던 이들 'Corrs'는 그 바램대로였는지, 무대 위에선 가장 뜨거운 '인간적 연결'의 순간을 만들어내곤 했다. 과거 1998년 런던 로열 알버트 홀 무대에서 영미 팝 장르의 전설적인 밴드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드러머 '믹 플리트우드'와 함께 명곡 <Dreams>를 협연하며 시대를 초월한 음악적 교감을 선보였는가 하면,

이들의 살아있는 호흡은 단지 과거의 기록 속에만 머물지 않고, 지난 2025년, 투어의 첫 포문을 연 아일랜드의 '코크'와 '더블린'을 시작으로 영국의 '스카버러', '핼리팩스', 그리고 독일과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을 직접 순회하는 <Talk On Corners> 투어를 성공적으로 이어가며 시대를 관통하는 아날로그 노스탤지어의 건재함까지 보여주었다.

​*스위치(Switch): 억눌려 있거나 아련해진 특정 시대의 향수와 감성을 단번에 '켜고(Turn-on)' 불러일으키는 직관적인 매개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핏줄로 묶인 이 네 남매가 오랜 시간 눈빛을 맞추며 악기를 연주하고, 동시대의 거장과 무대 위에서 온전한 호흡을 나누거나 여전히 무대를 누비며 관객과 소통하는 연대와 발걸음은 곧 우리에게 묵직한 위안을 건네는 바,

그것은 비록 우리가 모퉁이를 비껴 돌아 길을 잃은 채로 방황할지언정 서로의 소리와 주파수를 맞추며 단단하게 지속되어 온 이들의 발걸음 그 자체가,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던 '진짜 연결'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알려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로버트 팔머'의 <Bad Case of Loving You>가 외로움이라는 지독한 질병(?)을 잠시나마 떨쳐내기 위해 거친 드럼 비트와 터질 듯한 기타 리프 위로 맹렬히 몸을 던진 '뜨거운 발악'이었다면,

코어즈의 <What Can I Do>는 아무리 벽을 두드리고 손을 뻗어도 끝내 닿지 않는 관계의 한계 앞에서 결국, "이제 더는 노력해도 소용없다(No more trying)"라며 고개를 숙이는 '차가운 체념'에 가까운 것이었건만,

이러한 체념은 역설적으로, 그 헛된 기대가 안겨주던 기만적 고통을 비워낸 뒤에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고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직한 안식'을 선사해 준다.

 

다시 말해, 불가능했던 온기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소진했던 대신, 현실의 한계를 받아듦으로써 비로소 되찾은 고요, 그 여유로움 속에서 결국, 진실된 자아와 마주할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작지만 오롯한 영혼의 불을 켜 놓은 채로, 진짜 소통의 창을 활짝 열어두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

이 두 장의 명반이, 서로 다른 사운드의 질감과 20년이라는 세대의 격차를 가볍게 뛰어넘은 것은 물론,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싶고 오롯이 온전한 주파수로 소통하고 싶다'라는 원초적 유대의 결핍까지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2026년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골방들, 배달 앱으로 외롭게 1인분의 음식을 시키고 인공지능의 매끄러운 목소리만을 유일한 말벗 삼아 서글프게 하루를 마감하는 당신의 큐브 안에선 지금, 어떤 음악이 흐르고 있는가.

알고리즘이라는 디지털 의사(?)에게 영혼 없는 도파민 처방만을 갈구하며 '로버트 팔머'처럼 거칠게 소리치고 있진 않은가. 아니면 홀로 켜진 메신저 창의 읽지 않은 숫자만을 바라보며 '코어즈'처럼,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걸까"라는 무기력한 자책만을 던지고 있진 않은지.

결국 이 두 장의 위대한 음반이 시대를 관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처방전은 단 하나다. 정밀하게 분절되고 메마른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가 진짜 회복해야 할 것은, 길모퉁이 뒤에 숨어 나누려는(Talk on corners) 파편화된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날것 그대로를 투여할 수 있는 진짜 '인간다운 연결'의 주파수라는 것을. 우리의 쓸쓸한 일상이 저 모퉁이 너머의 작은 다정함 하나라면 언제든, 그 온기 만큼은 꼭,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시사캐스트]

 

* 두 앨범은 하단(링크)을 클릭해 감상할 수 있다.

- 로버트 팔머의 'Addictions Vol.1'

- 코어즈의 'Talk on Cor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