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슬의 웰라이프] 외로움과 자유 사이, 혼자라서 좋은 날과 싫은 날
(시사캐스트, SISACAST=박이슬 문화평론가)
혼자 사는 집은 때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이다.
퇴근해 현관문을 닫는 순간 하루 종일 타인에게 맞추느라 긴장했던 몸이 풀어진다. 저녁은 라면으로 때워도 되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건너뛰어도 된다. 설거지가 쌓여 있어도 오늘 꼭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몇 시간째 이어 봐도, 휴일 오후까지 잠옷 차림으로 돌아다녀도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냉장고에 무엇을 채울지, 가구를 어디에 둘지, 에어컨 온도를 몇 도로 맞출지까지 모두 자신의 몫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면 더 그렇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피곤하면 일정을 취소하면 그만이다. 협의도 양보도 없다.
혼자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하루 종일 사람을 상대하다 돌아온 날에는 이 자유가 더욱 소중하다. 아무에게도 오늘 하루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 기분이 좋지 않으면 그냥 조용히 있어도 되는 시간. 혼자 있는 것이 외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는 날이 있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에게 “외롭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은 조금 단순하게 들릴 때가 있다.
혼자여서 좋은 날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그 집이 어느 날에는 너무 넓고 조용하게 느껴진다.
몸이 아플 때가 그렇다. 열이 오르고 온몸에 힘이 빠져 있는데 약도, 물도, 먹을 것도 스스로 챙겨야 한다. 평소에는 몇 분이면 다녀오는 편의점이 멀게만 느껴지고, 죽 한 그릇을 먹는 일조차 쉽지않다.
그럴 때 비로소 혼자라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누군가 곁에 있다면 “약은 먹었어?”라고 물어봐 줄 수도 있고, 물 한 잔쯤 가져다줄 수도 있을 것이다. 평소라면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 한마디가 그날만큼은 이상하게 그립다.
좋은 일이 생긴 날에도 혼자는 조금 다른 얼굴을 한다.
기다리던 합격 소식을 받았거나, 오랫동안 준비했던 일이 잘 풀렸거나, 예상하지 못한 칭찬을 들은 날이다. 기쁜 마음에 휴대전화를 들고 누군가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누구에게 먼저 이야기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사람은 힘든 일만 나누고 싶은 것이 아니다. 기쁜 일 역시 누군가와 함께 기뻐하고 싶어 한다.
“잘됐다.”
그 짧은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몫을 한다는 사실을 혼자 있는 순간 깨닫기도 한다.
외로움은 이렇게 대단한 사건을 앞세우고 찾아오는 것만은 아니다.
택배로 도착한 가구를 조립하다 한쪽을 잡아줄 손이 아쉬울 때, 생수 묶음을 옮기다 괜히 한숨이 날 때, 높은 곳의 전구를 갈아야 하는데 의자가 불안할 때도 있다. 병뚜껑 하나가 좀처럼 열리지 않는 날에는 별것도 아닌 일에 괜히 서러워지기도 한다.
밤늦게 현관 밖에서 낯선 소리가 들리거나 집 안 어디선가 갑자기 쿵 소리가 날 때도 마찬가지다. 낮에는 그렇게 평온했던 고요함이 순식간에 낯설게 느껴진다. 평소에는 아무도 없는 집이 좋았는데, 그 순간에는 누군가 옆방에 있기만 해도 든든할 것 같다.
명절이나 연말에는 또 다른 종류의 적막이 찾아온다.
평소에는 혼자 밥을 먹는 것도 익숙하고 혼자 보내는 주말도 좋았는데, 유독 모두가 함께를 이야기하는 날이면 같은 저녁상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가족 모임과 친구들의 송년회 사진이 휴대전화 화면을 채우는 동안 평소 아무렇지 않았던 혼자만의 시간이 문득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혼자 사는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이것이 혼자 사는 삶을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지점일 것이다.
외롭다고 해서 혼자인 삶을 포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자유롭다고 해서 언제나 혼자가 좋은 것도 아니다.
혼자 살면서 얻는 가장 큰 자유와 혼자 살면서 느끼는 가장 큰 외로움은 어쩌면 같은 곳에서 시작한다.
나를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나를 살펴보는 사람도 없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은 때로 아무도 내 하루를 묻지 않는 고요함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혼자 사는 날들은 한쪽으로만 기울지 않는다.
어떤 날에는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해방감을 느낀다. 오늘만큼은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음악을 듣는 시간이 더없이 좋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에는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누군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밥 먹었어?”라고 물어주는 사람, 무거운 것을 잠깐 들어주는 사람, 별일 없는 하루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싶어진다.
어쩌면 사람은 혼자이고 싶은 마음과 혼자가 아니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품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1인가구만의 감정도 아닐 것이다.
가족과 함께 산다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혼자 산다고 반드시 쓸쓸한 것도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혼자라고 느낄 수 있고, 빈집에 돌아와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더없이 충만한 밤이 있다.
외로움은 사람의 숫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삶을 외롭다거나 자유롭다는 한 단어로 설명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혼자여서 좋은 날에는 혼자의 삶이 꽤 근사하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아무도 모르게 하루 종일 빈둥거릴 수도 있다. 여행 가방 하나 들고 어디론가 떠나는 데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 문을 닫으면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혼자여서 싫은 날에는 똑같은 문이 조금 무겁다.
몸이 아픈 밤,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은 밤, 괜히 마음이 허전한 밤에는 문 밖에서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진짜이고 다른 한쪽이 거짓인 것은 아니다.
자유롭다고 느꼈던 마음도 진짜이고, 외롭다고 느낀 마음도 진짜다.
어제는 그렇게 좋았던 혼자가 오늘은 싫어질 수 있고, 오늘 밤 견디기 어려웠던 고요함이 내일은 다시 가장 편안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아마 혼자 산다는 것은 그 사이를 오가며 자기만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일 것이다.
혼자여서 좋은 날과 혼자여서 싫은 날.
두 날의 차이는 혼자라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마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닫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 무엇이든 괜찮다.
고요해서 좋다면 그 고요를 충분히 누리면 되고, 유난히 적막하다면 누군가에게 별일 없는 안부 하나 건네도 좋다.
혼자의 삶은 자유와 외로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삶이 아니다.
그 두 감정이 한집에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는 삶에 더 가깝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