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때리는시간] 폭염의 한복판에서도 날 일으켜 세우자, 진짜 세상이 눈 앞에. That's Life! ③ - 2부
혼삶인을 위한 ①책 속 '명'문장과 ②영화 속 '명'대사 ③시를 닮은 '명'가사로 참담했던 어제의 기억을 창창한 내일의 기약(期約)으로 되살리는 '멍때리기' 프로젝트 세상 풍파에 맞서 씩 웃어넘길 줄 아는 진짜 어른의 찬가, 'That's Life' - 下편
(시사캐스트, SISACAST=양태진 기자)
① '명'문장 : 책 <마음성장학교>
② '명'대사 : 영화 <캐스트 어웨이>
③ '명'가사 : 명곡 <That's Life>
또 한 번 읊조려내는 농익은 가사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That's Life>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이젠 그 직관적인 기품도 어느덧 더 거침 없는 거친 메타포로 치달아 가는데,
"Many times I thought of quitting, baby. But my heart just ain't gonna buy it. And if I didn't think it was worth one single try. I'd jump right on a big bird and then I'd fly"
"다 관둘까도 생각했지만, 내 마음이 허락치 않았어. 하지만 단 한 번의 시도조차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면, 난 진작 커다란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날아가 버렸겠지."
"But if there's nothing shakin' come this here July. I'm gonna roll myself up in a big ball and die.. My, my!"
"하지만 만약, 이번 7월이 올 때까지도 내 인생에 아무런 일(한 방)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에라 모르겠다! 몸을 웅크리고 콱 죽어버리든가 해야지! 아으, 참 나!"
곡의 전반부에선 "5월에 떨어져도 6월엔 다시 정상에 선다"라며 자신만만해 했건만, 이 마지막 절에서서는 "7월까지도 아무런 진전이 없으면(Nothing shakin'), 그냥 몸을 웅크리고 죽어버리겠다(die)"는 극단적 벼랑끝 유머를 던진다.
헌데 이는 진짜 죽겠다는 비관이라기 보단, "이번 6월과 7월에 내 모든 영혼을 걸고 판을 뒤집어 놓아 보겠다"라는, 화자 스스로의 처절하고도 화끈한 배수진(All-in) 블랙 유머가 아닐지.
그러면서도, 비 한 줄기 오지 않는 메마른 땅 위와도 같은 매일 아침의 출근길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의 자리를 고수하는 우리들의 처절한(?) 행보를 향해, 노래는 자신의 뜻을 주저없이 이어간다. 세상이 밑바닥으로 자빠뜨리고 고꾸라뜨리더라도, 그것에 굴복해 도망치지 않는 한, 당신은 결코 패배자가 아니라고.(물론, 스스로 자초한 명백한 과오로 쓰러진 이들은 예외겠지만 말이다.)
이 곡은 작곡가 '딘 케이(Dean Kay)'와 작사가 '켈리 고든(Kelly Gordon)'이 삶의 애환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덤덤한 의지를 담아 구상한 노래로, 이 곡을 처음 세상에 선보인 사람은 1963년 즈음에 활동한 재즈 싱어, '마리언 몽고메리(Marion Montgomery)'로 알려져 있다. 허나 그녀의 차분하고도 재즈 감성 물씬 풍기는 버전은 아쉽게도 대중으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던 것.
이후 이 노래의 잠재력을 알아본 이는 R&B 겸 블루스 가수 'O.C. 스미스(O.C. Smith)였고, 1965년에 이 곡을 R&B 스타일로 재해석해 발표한 그의 버전은 곧, 라디오를 타며 조금씩 차트에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헌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O.C. 스미스' 버전이 라디오에서 흐르지 않았더라면 우린 결코, '시나트라의 <That's Life>는 영영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1966년의 어느 날, '프랭크 시나트라'는 차를 타고 가던 중 라디오에서 'O.C. 스미스'가 부르는 <That's Life>를 듣고 한 눈(귀)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즉시 차를 세운 시나트라가 딸 낸시에게 전화를 걸어 곡의 출처를 알아보라 요청했다는 것.
그 후 시나트라는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기 위해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 '짐 보언(Jimmy Bowen)'과 편곡자 '어니 프리먼(Ernie Freeman)'을 호출했고, 이들은 원곡의 블루스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시나트라만의 '폭발력 있는 빅밴드 스타일'로 곡을 재탄생시켰다.
웅장한 브라스 세션과 풍성한 백코러스가 시나트라의 바리톤 음성을 호위하는 이 버전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 마치 삶을 호령하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4월의 상승과 5월의 추락, 그리고도 6월엔 다시 정상에 우뚝선다라는 롤러코스터 식의 가사와는 달리 이 시나트라의 버전은, 발매되자마자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고, 이는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의 4위라는 성적이 당시 이 곡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는지를 증명하고 있는 셈.
그의 이러한 성공 이후에도 아레사 프랭클린, 제임스 브라운, 마이클 볼튼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되었고, 수많은 명작 영화의 결정적 순간을 장식하는 삽입곡으로도 쓰였으며, 이러한 흐름대로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찬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단순히 흘러간 노래가 아닌, 좌절을 딛고 일어선 모든 이들을 위한 영원한 응원가로 남게 된 것이다.
헌데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도 '프랭크 시나트라'의 버전만이 가장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시나트라라는 인물이 살아온 실제 삶의 궤적과 그가 지닌 고유한 이미지가 이 노래의 불씨, 그 자체와 상당 부분 닮아있기 때문.
이탈리아계 미국인 출신으로 마피아 연루설, 정치적 스캔들, 음반 흥행 실패와 세 번의 이혼 등, 화려한 조명 뒤에서 인생의 온갖 쓰라린 밑바닥을 맛보았던 프랭크 시나트라는 1950년대 초반엔 목소리를 잃고 언론으로부터 아예 '끝난 가수'라는 모욕적 평가를 받는 등 처절한 추락을 직접 경험했던 인물이었다.
허나 영화를 통해 결국 배우로서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었고, 마침내 음반 무대까지 다시 제패하면서 자력으로 바닥을 치고 올라간 그는 "바닥에 코를 박고 넘어질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일으켜 다시 경주로 돌아간다"라는 이 노래의 핵심 구절과 함께, 그저 맹목적인 기교나 연기가 아닌, 자신이 직접 겪어낸 삶의 흉터를 훈장으로써(?) 직접 내보일 수 있던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이 노래가 지닌 특징 중 하나로 가사 내용을 전달하는 음악적 방식 또한 독보적이기에,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곡의 템포가 세상 풍파에 휩쓸려 허둥대지 않고도 자신의 페이스만을 유지하며 덤덤히 걸어나가는 진정한 배짱있는 어른(프랭크 시나트라)의 걸음걸이로도 느껴질 수 있었던 것.
멜로디 역시 너무 애절하거나 슬프지 않은 가운데에서 오히려 "이게 인생이지"라며 씩 웃어넘길 수 있는 호방함과 덤덤함이 서려 있기에, 가사가 주는 결의 또한 음악적으로 완벽하게 뒷받침될 수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곡이 발표된 1960년대는 베트남 전쟁, 민권 운동, 세대 간의 갈등 등으로 미국 사회가 몸살을 앓던 격동의 시기였다. 마치 영원할 것만 같았던 가치들 또한 하나 둘 무너져내리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만이 가득했던 그 시기에 보란듯이 나온 <That's Life>였기에, 불안함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겐 어떤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말고 자신을 일으켜 세우라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용기있는 외침이 그야말로, 진정한 가치로써 인정될 수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어느새 9월을 맞이한 이 시점에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을 것만 같던 폭염 또한 계절의 흐름과 함께 흩어진 채 영원한 고통도, 영원한 승리도 없다라며 영원히 변화하는 세상 속 물결이 여지없이 큰 파도로 밀려오는 지금,
당장 내려주는 무지개빛 축복의 부슬비는 없을지 몰라도, 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That's Life>를 들으며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보자. 세상이 던져주는 시련이 뭐가 됐든 그와 당당히 맞서며 "그래 이게 인생이지(That's Life)!"라고 씩 웃어줄 수 있는 자세, 그 배짱 하나라면 활활 타오르던 여름을 건너 더 시원한 가을을 맞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도 멋진 삶의 동력(원천)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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