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정류소_02stop] 일상을 지키려던 헥토르, 불멸을 원한 아킬레우스 ㅡ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2편)

서두를 것 없는 인생길, 나만의 버스를 타고 내려 보는 영화 속 풍경 본질만 '정류(精溜)'해 들여다보는 영화 한 편 간편 다루기 세상이라는 전쟁터에 홀로 내세워진 이들을 위한 위로 어린 찬사, 영화 '트로이(Troy)' 下

2026-09-19     양태진 기자

(시사캐스트, SISACAST=양태진 기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거대한 목마(木馬)의 전설. 오랜 시간 굳게 닫혀 있던 난공불락의 성문이 마침내 열리고, 끝없는 피를 갈구하던 그리스 대군이 썰물처럼 자취를 감춘 텅 빈 해변가. 그 적막한 백사장 위에 기괴할 만큼 거대하게 우뚝 솟은 나무 조형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 성벽을 지켜낸 이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영화 <트로이(Troy, 2004)>를 본 이들이라면, 승리의 환희에 눈이 멀어 등 뒤로 엄습하는 불길한 기운은 애써 외면한 채로, 폭풍전야의 모래사장에서 그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이던 트로이인들의 광경을 기억할 것이다. 비극으로 치달을 역사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우린 또다시 마른침을 삼키며 스크린 위의 잔혹한 운명을 숨죽여 목도하게 되는데,

 

이러한 침묵 속에서 영화 <트로이>는, 지극히도 인간적인 욕망과 고독, 그리고 육신의 서늘한 혈투만이 남은 약 삼천 년 전의 피비린내 나는 신화를, 그 어떤 역사적 전장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처절한 실존 드라마로 완성해 냈다.

그렇다면 이 신화 속 ​영웅과 거대한 국가간의 격돌이 남긴 건 무엇일까. 트로이의 왕세자 '헥토르'를 쓰러뜨린 채 복수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듯했던 '아킬레우스'. 헌데 그날 밤, 그의 막사로 숨어든 한 노인이 있었건만 그는 바로 트로이의 군주이자 아들을 잃고난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피터 오툴 분)이었다.

​​* 닥틸로스 6보격(Dactylic Hexameter): '긴 음절 하나와 짧은 음절 둘'로 이루어진 3박자 리듬 단위가 한 행에 6번 반복되는 고대 그리스 서사시의 대표적 낭송 운율. ​'일리아스'는 원래 문자가 아닌 소리로 낭송되던 구전 서사시였기에, 음유시인이 운율을 타며 긴 이야기를 쉽게 외우고 청중에게 리듬감 있는 웅장함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정형시 형식이 차용되었다.

 

 

왕관도, 그 높은 권위도 땅바닥에 내려놓은 채로, 제 자식을 도륙한 원수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시신만이라도 돌려달라 청하는 그 백발이 성성한 노인 앞에 무적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난생 처음 칼을 내려놓고 함께 무너져 내린다.

적장의 죽음 앞에 환호하는 승자도, 비굴하게 구걸하는 패자도 그곳에는 없었던 것. 단지 비좁은 막사 안을 채운 건 삶이라는 잔혹한 전장에서 저마다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만, 연약한 두 인간의 지독한 슬픔만이 잔존할 뿐이었다.

 

'볼프강 페터젠' 감독이 걷어낸 신화의 장막 뒤엔, 이와 같이 먹먹한 연민의 순간들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너와 내가 맞부딪히며 피를 흘렸다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시간 앞에서 그저 부서지기 쉬운 한 줌의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자각. 영화는 그것을 화해 아닌 화해를 통해 전쟁의 승패보다도 더 묵직한, 인간 존엄의 무게를 스크린 위에 새겨놓고 있었다.

이처럼 거대한 목마의 기만극이 완성되기까지, 영화 <트로이>가 집요하게 비추는 것은 결코 승리와 패배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다. 그 견고한 트로이의 성벽 안팎에는 저마다의 안위와 신념, 그리고 뼈아픈 고충을 끌어안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지극히도 입체적인 인간 군상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기에,

 

이들의 엇갈린 시선을 촘촘하게 엮어내며 약 3천 년 전의 고대 전장을, 오늘날 우리가 발 딛고 선 복잡다단한 현실의 축소판으로서 치환해 놓고 있는 것이었다.

비극의 도화선이 된 트로이의 둘째 왕자 '파리스'(올랜도 블룸 분)를 그저 철없는 사랑에 눈먼 한량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 세상의 무게를 짊어지기엔 너무도 유약했던 이 청년은, 자신의 충동적인 선택이 온 나라를 피로 물들이는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보며 극심한 자책과 공포에 시달리건만,

 

형의 완벽한 그림자에 가려져 비겁자라는 낙인을 마지막까지 피하고자, 떨리는 손으로 아킬리스를 향해 활시위를 당겨야 했던 그의 번민 속 애틋한 용기는, 가혹한 현실의 파도 앞에 제 깜냥 만큼은 넘어서보려는 미숙한 우리네 청춘의 서툰 자화상과도 묘하게 겹쳐진다.

성벽 너머 그리스 진영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리스 최고의 지략가 '오디세우스'(숀 빈 분)는 왜 그토록 고향 이타카의 흙냄새를 그리워하며 깊은 회의(懷疑)에 잠겼던가.

그는 탐욕에 눈먼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 분)의 패권주의와 통제 불능인 '아킬레우스'의 오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며, 이 명분 없는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처절한 잔꾀를 쥐어짜 내야 했던 것을.

 

결국 그가 고안해 낸 기만책 '트로이 목마'는 위대한 승리의 징표이기 이전에, 어떻게든 살아서 제 집으로 돌아가고자 몸부림쳤던 한 생활인(?)의 절박한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었다.

늙은 국왕 '프리아모스'(피터 오툴 분)의 고뇌는 또 어떠한가. 신들의 가호와 제국의 영원한 번영을 믿었던 노회한 군주는 나라의 존망과 자식의 목숨이 저울질당하는 파국의 기로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마침내 모든 체면과 권위를 내던지고 혈혈단신 적장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숨어든 그 먹먹한 순간, 스크린을 지배하는 것은 영웅의 무용담이 아닌 감당할 수 없는 상실과 파멸 앞에서도 끝끝내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사랑을 지켜내려 발버둥 치는, 한 인간의 거룩한 슬픔인 것이었다.

 

​영화의 막바지, 난공불락의 성벽이 무너져 내린 아비규환의 트로이 궁정 한복판에서, 우린 신화가 남긴 가장 상징적인 파멸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무적의 전사로 군림하며 전장을 휘젓던 '아킬레우스'의 숨통을 끊어놓은 건, 적장 '헥토르'의 묵직한 창도, 맹렬한 대군의 칼날도 아니었던 것.

그저 비겁자라 손가락질받던 유약한 왕자 '파리스'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쏘아 올린 화살 한 발, 그리고 그것이 훗날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유일한 급소,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파고든 것이었다.

 

이는 곧, 그의 어머니 '테티스'가 갓난아이였던 아킬레우스를 불사(不死)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저승의 스틱스 강물에 담글 때 손으로 쥐고 있느라 미처 물에 젖지 못했던 유일한 인간적 결함. 그리고 오늘날 치명적 약점을 뜻하는 의학용어이자 관용구가 된 '아킬레스건(Achilles' heel)'의 탄생 순간인 것이었다.

아무리 완전무결해 보이는 절대 강자라 할지라도, 누구나 제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연약한 틈새를 품고 살아가는 것을.

자신이 무적이라는 오만에 취해 그 미세한 결핍 하나를 방심한 순간, 영웅조차 가장 작고 초라한 화살 한 발에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는 그런 서늘한 경고인 셈이었다.

 

원전  <일리아스>가 쓰이고 영화 <트로이>가 이를 다시 불러낸 본질적인 취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거대한 서사는 '누가 더 용맹했는가'를 가리는 영웅의 찬가가 아니다.

제각기 다른 처지와 결핍 속에서, 저마다의 안위와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따른 가혹한 운명의 대가를 오롯이 짊어져야 했던 이들의 집단 초상화인 것을.

저마다의 입장에선 그 누구도 온전한 악인이 아니었으나, 수많은 나름의 정당한 욕망들이 충돌하는 순간, 삶은 비극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낳고 만다는 서늘한 진실. 바로 이러한 진리를 이 영화는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오늘, 세상이라는 전선(戰線)에서 저마다의 방패를 챙겨 들고 고군분투했을 당신의 작은 식탁 위에 이 영화의 묵직한 온기가 전해지기를.

비록 삶이란, 권력자들의 오만과 어지러운 정쟁의 소음, 그리고 우릴 지치게 하는 것들로부터 버텨내야 할 외로운 싸움일지라도, 그 결핍과 고충을 묵묵히 견디며 정직하게 일상을 지켜내는 우리들이야말로,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코 스러지지 않을 진정한 영웅들인 것이기에,

​그 처절한 분투의 가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경의를 표하는 또 다른 고독한 영혼들이 존재하는 한, 트로이의 불길이 잦아든 저 수평선 너머로 그저 묵묵히, 또다른 영화로 향할 다음 버스를 기다려도 좋을 밤이다.[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