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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과 조광조의 고민과 공천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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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과 조광조의 고민과 공천심사
  • 윤관 기자
  • 승인 2018.01.07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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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윤관 기자)

<중종실록> 중종 14년 5월 11일 기사다.

중종과 조광조는 군자와 소인을 분별해서 등용하는 일을 의논했다.

중종은 “군자와 소인은 진실로 마땅히 분별해서 진퇴해야 한다. 범(范)·한(韓)·부(富)·구(歐) 등이 모두 조정에 등용될 때에 하부에 임용할 만한 현명한 사람이 많았으니, 지금이라도 어찌 초야(草野)에 버려진 현명한 사람이 없겠는가? 대신들은 마땅히 성의를 다해 추천하여 등용되게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조광조는 “예로부터 올바른 사람은 적고 사특한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왕안석(王安石)이 권세 부리던 때의 일에 있어서도 알 수 있으니, 선인(宣仁)시절에는 소인들이 모두 물리쳐져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사사로이 서로 비방하는 자들이 많았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중종이 언급한 범(范)·한(韓)·부(富)·구(歐)는 북송 말기의 정치가들이다. ‘범’은 송대(宋代)의 학자이며 정치가인 범중엄(范仲淹), ‘한’은 정치가 한기(韓琦), ‘부’는 부필(富弼), ‘구’는 구양수(歐陽脩)을 말한다.(자료출처 : 조선왕조실록)

조광조가 강조한 선인(宣仁)은 송(宋)나라 5대 임금 영종(英宗)의 황후 선인 성렬 고황후(宣仁聖烈高皇后)의 약칭이다. 아들 신종(神宗)이 죽고 철종(哲宗)이 즉위하였을 때 수렴 청정(垂簾聽政)하며, 사마광(司馬光) 등 많은 유현(儒賢)들을 등용했었는데, 이 시절을 원우(元祐)의 치세(治世)라고 부른다. (자료출처 : 조선왕조실록)

중종이 인재 등용에 있어서 군자와 소인의 분별의 사례를 송나라 시대에 빗대 강조하자 조광조는 그 어려움을 호소한 것이다.

조광조는 “이 기회에 성상께서나 대신들이 진실로 분명하게 사정(邪正)을 분별해 군자들이 조정에 드날리고 소인들은 손을 쓰지 못하도록 한다면, 나타나지 않은 악이 자연히 소멸돼 선으로 지향하게 될 것이니, 대신들이 힘쓰기에 달렸습니다”면서 “지금 교화가 점차 시행 되매, 나이 젊은 무리들 중 향방이 바로 잡힌 사람은 비록 절도에 맞지 못하더라도 용납해 써야 합니다”라고 간청했다.

중종도 인재등용의 고충을 인정했다.

“훌륭한 의원은 병을 보는 데 있어, 병이 나기를 기다렸다가 치료하는 것이 아니요, 만일 병이 난 다음에 치료하려면 늦는 것이니, 지금 어찌 이와 같이 되는 염려가 없겠는가? 군자와 소인은 서로 하나가 진출(進出)하면 하나는 물러가게 돼 소인이 진출하면 한갓 군자만 모함하는 것이 아니라 해독이 종사(宗社)에까지 미치는 것이니,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다.”

조광조는 “직접 본 일로 말하건대, 폐조(廢朝) 때 조정에 드날린 사람들이 단지 공신(功臣)되기만 서로 숭상해 아첨으로 진출하기를 바랐었고, 그 사이에 행적은 비록 높지 못하지만 그의 뜻에 옛사람을 감탄해 사모하는 사람은 곧 논박과 공격을 받아 용납되지 못했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의심할 것이 없을 듯하나, 앞날에 대신이 혹 적당한 사람이 아니어서 소인이 틈을 타게 된다면, 군자가 씨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며 “송(宋)나라 시절과 지금의 때가 서로 흡사하니, 군자와 소인의 진퇴에 있어 더욱 짐작하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거듭 간청했다.

여야 정치권은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심사를 준비 중이다. 공천은 중종과 조광조가 고심했던 인재등용이다. 조광조는 조선 중기 대표적인 개혁파의 리더였다. 그도 현량과와 같은 인재 개혁을 실행하다가 훈구파의 반격에 몰락한 인물이다.

역대 선거는 ‘공천’에 따라 승패가 결정됐다. 여야 지도부는 군자와 소인의 분별을 공천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민이 아는 소인을 정치권이 군자로 본다면 그 결과는 선거의 참패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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