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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것들] 마술로 덧칠한 캔버스 미학의 정수, '베르나르 뷔페' 미술展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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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것들] 마술로 덧칠한 캔버스 미학의 정수, '베르나르 뷔페' 미술展 1/3
  • 양태진 기자
  • 승인 2019.10.31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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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까지 약 3개월 여에 걸쳐 진행된 '20세기 프랑스 회화의 마지막 거장, 베르나르 뷔페 전'.
이를 놓쳤거나 재관람이 절실한 독자라면, 다시 한 번 그 만의 오리지널 터치를 느껴보자.

(시사캐스트, SISACAST= 양태진 기자)

피카소가 시기하고 앤디워홀이 사랑했다는 프랑스 천재 화가,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그의 오리지널 작품전이 열린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총 92점에 달하는 유화 작품이 전시, 수많은 관람객들을 매료시켰다.

이번 마지막 감상의 기회를 통해 지나쳐간 아쉬움을 달랠 수 있기를, 당시의 전시 관람과 같은 진행 순서로 만끽해 보자.

 

'베르나르 뷔페(1928-1999)' 전시회의 입구의 메인 홀 전경.(상단)
본격적인 관람의 시작을 알리는 뷔페 자신의 자화상과 자신의 모습이 걸린 전시장 입구 모습.(하단) 

스타의 탄생

베르나르 뷔페는 15살이 되던 해인 1943년 파리에서 그림수업을 받았다. 그는 에콜 데 보자르(국립고등미술학교)에 특례입학을 했으며, 17세인 1945년, 작업을 하던 아틀리에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그 후, 학교를 떠나 집에서 홀로 창작활동을 한다.

이듬해인 1948년, 작품 <방 안의 두 남자>로 베르나르 로르쥬와 함께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처음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살롱 도톤느에서 전시를 갖는다.

 

담배를 문 베르나르 뷔페의 젊은 시절 사진.(상단)
'바닷가재' 1945년 작 & '다리미' 1947년 작 (중간)
'재봉틀' 1949년 작 & '과일 그릇' 1949년 작 (하단)

당시 뷔페는 그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그렸다. 정물화에서는 주로 사물과 일상적인 음식재료(그릇, 접시, 잔, 채소, 과일, 닭, 토끼 등)들을 그렸으며, 생활 도구와 가전제품들(버너, 다리미, 재봉틀) 역시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이 전시에서 소개되는 '바닷가재'와 다양한 정물화 역시 이 시기에 그려졌다. 또 실내나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초상화들을 그렸으며, 교외의 풍경이나 어머니와 함께 휴양을 했던 브르타뉴 지방의 풍경도 그렸다.

 

'배 정물화' 1949년 작 & '채소 정물화' 1947년 작 (상단)
'테이블과 의자' 1950년 작 & '빨간 냄비' 1951년 작 (중간)
'주사위 놀이 정물화' 1955년 작 & '장례식' 1949년 작 & '접시 위 계란 그리고 남자' 1947년 작 (하단)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화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이기에 뷔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료를 찾기 어려웠다. 그는 매우 적은 물감만으로 벽에 박혀있는 천에 그림을 그린 뒤 널빤지나 빗자루를 고쳐 만든 틀에 고정항여 액자로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은 그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보여준다.뷔페에게 데생은 초기 작품에서부터 매우 중대한 요소였다.

각이 진 선에 체계적으로 구조화된 공간, 그라피티나 연필로 그려진 선을 물감으로 다시 재현해내는 방식, 세로로 뻗어 있는 등장인물 등은 추후 그의 주요한 화풍이 된다. 그가 사용한 색상은 주로 화색, 하얀색 그리고 황토 계열의 색상이었다.

 

좌측부터, '닭을 들고 있는 여인' 1947년 작 & '남자와 꽃게' 1947년 작 & '이젤과 자화상' 1948년 작 (상단)
'생선 장수' 1951년 작 & '해변' 1947년 작 (중간)
'실내에 앉아 있는 남자' 1953년 작 & '엉겅퀴' 1952년 작 (하단)

"베르나르는 20세에 얻은 명성에 만족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명성과 영광을 누리지 않았다. 더욱 특별한 것은 그 명성에 대한 무관심이 베르나르에게는 영원한 젊음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이다."

- 베르나르 뷔페의 영원한 뮤즈이자 아내, '아나벨 뷔페'

 

좌측에서 부터, '와인 한 잔 그리고 여인' 1955년 작. & 팔을 괸 여인' 1956년 작. & '여장 남자' 1953년 작.(상단)
'식기장' 1953년 작. & '와인 한 잔 그리고 여인'의 확대 모습.(중간)
'비스콘티 갤러리' 1954년 작. & '유언장 정물화' 1963년 작.(하단)

그의 아내, '아나벨 뷔페'는 다음과 같은 말도 이어 남겼다.


"우리는 당신이 죽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잘못 알고 있었다. 당신은 살아 있었다. 당신은 20세도 안되었지만 당신은 이미 인간의 고통을 마주하고 있었다. 당신의 그림에 이미 그것이 배어있다. 우리는 같은 나이였고, 나는 어른들의 세계에 관한 무지함으로 상처받은 청년기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당신은 우리 세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하는 것처럼 다른 방법으로 저항하며 아우성을 칠 수도 있었다. 당신은 화가로 태어난 것 같다. 당신은 우리에게 당신의 외로움, 믿음, 사랑,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자연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물질적, 도덕적 참담함과 마주해 비탄을 이야기하기 위해 아주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선택했다. 당신은 우리가 종교에 빠질 때처럼 그림에 빠지기 위해 그들을 떠났다. 그때부터 당신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당신의 작품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 아나벨 뷔페 (Annabel Buffet)

 

아내, 아나벨을 향한 베르나르의 사랑 또한 유언장으로 표현되었다.

'1963년 4월 15일. 이것은 나의 유언장이다. 나는 모든 것을 나의 부인 아나벨 뷔페에게 남긴다.'

- 남편 베르나르 뷔페로부터.

 

'서커스, 자전거 타는 곡예사', 1955년 작 & '서커스, 두 광대', 1955년 작 (상단)
'숫 양', 1960년 작 & '생선 정물화', 1956년 작 (중간)
'생선 뼈', 1963년 작 & '곤들매기 정물화', 1955년 작 & '파란 커피포트', 1956년 작 (하단)

새로운 시작

1950년 대 중반부터 뷔페의 그림은 기술적인 발전을 보인다. 이전에 비해 더 많은 색상들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곤들매기 정물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물감도 더 두꺼워지고, <칸 영화제의 아나벨>이나 <제국의 장군>에서 처럼 때때로 임패스토까지 사용한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 다른 주제를 다루면서 매번 다른 재료를 사용한다. 작품 주제에 따라 그림에 투명한 느낌의 물감을 사용하기도 하고 다른 경우에는 물감을 매우 두껍게 사용하여 무게감을 실어주기도 한다.

뷔페는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사물들(정물, 커피포트, 주사위 게임도구 등)을 비롯하여 당시 부르주아들에게 매우 유행했던 꽃무늬 혹은 줄무늬가 새겨진 태피스트리로 장식된 실내 장면들을 지속적으로 그렸다. 이 기간에 탄생한 그의 작품들로는 <실내에 앉아 있는 남자>, <여장 남자>, <와인 한 잔 그리고 여인>, 그리고 <팔을 괸 여인> 등이 있다.

 

'자화상', 1964년 작 & '생선 뼈', 1963년 작 확대 (상단) 베르나르 뷔페와 아나벨 뷔페의 다정한 모습 & '칸느 영화제의 아나벨', 1960년 작 &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아나벨', 1960년 작 (중간) '만개한 분홍 사과나무 꽃', 1965년 작 & '파리의 풍경, 시테섬과 노트르담', 1956년 작 & '피아제타, 베니스', 1962년 작 (하단)

1954년 뷔페는 <갤러리 비스콘티>를 그렸다. 이 갤러리는 뷔페가 1948년 비평가상을 수상한 이래로 모리스 가르니에가 아르망 드루앙과 엠마뉴엘 다비드(드루앙-다비드 갤러리)와 함께 지속적으로 전시를 열어준 첫 갤러리이다. 특히 아나벨을 위해 그린 그림 중 하나인 <유언장 정물화>는 베르나르가 그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지 기록한 작품으로 매우 감동적이다.

 

"사람들은 내게 거만하다 할지 모르지만, 이 캔버스를 한 번 보세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예요."

- 베르나르 뷔페

 

(다음 2/3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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