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것들] 마술로 덧칠한 캔버스 미학의 최고봉, '베르나르 뷔페' 미술展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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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것들] 마술로 덧칠한 캔버스 미학의 최고봉, '베르나르 뷔페' 미술展 2/3
  • 양태진 기자
  • 승인 2019.11.18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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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스쳐 지나간 베르나르 뷔페의 미술전. 그의 아내, 아나벨 뷔페도 함께 전하는 감동의 메시지로 그 두번 째 시간을 그려 본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양태진 기자)

'바다', 1948년 작(좌측 확대)과 전시장 복도 건너의 1/3회에 언급된 작품들.

단테의 베아트리체 같은 베르나르 뷔페의 영원한 뮤즈, 아나벨.

그녀는 부유한 유대인 집 안에서 태어났지만, 연이은 부모의 자살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이후, 파리의 번화가인 '생제르맹 데 프레'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 한 명이라는 명성과 함께 '프랑수아즈 사강'과 같은 문인들과 어울렸다.

1958년 여름, 아나벨은 글을 쓰기 위해 '생 트로페'에 머무르던 중, 친분이 있던 사진가 '룩 포넬'을 통해 베르나르 뷔페를 소개받는다.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다.

뷔페는 '액상 프로방스'에 있는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아나벨이 있던 '생 트로페'까지 매일 약 100km를 왕복하며 사랑을 나누었다고 전한다.

(*아틀리에 : 화가,조각가,공예가,건축가,사진가 등의 작업장을 일컬음.)

'제국의 장군', 1961년 작.

아나벨은 매해 열리는 뷔페 전시의 서문을 썼는데, 이를 본 소설가 '모리스 드뤼옹'은 아나벨이 풍부한  감수성을 가진 아름다운 필력의 소유자라 전했다.

뷔페는 아나벨이 쓴 소설 속 삽화를 그려주기도 하면서, 점차 그들은 서로의 작품에 영감을 주는 사이로 발전해 갔다고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1

<미친 사람들>이나 <벗겨진 몸>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이,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 뷔페의 그림은 종종 과할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천둥과도 같은 호전적인 색감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 뷔페는 그가 좋아하는 대가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오마주 작업을 시작했는데, '렘브란트', '엘 그레코', '프린스 할스'의 작품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하여 표현했다.

"모던 페인팅은 페인팅의 보편적 역사에 기반을 두고 정착되어야 하며, 오래된 대가들로부터 영감을 받는 동시에 작가 고유의 개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 베르나르 뷔페

 

'미친 사람들, 커플', 1970년 작.(왼쪽)
'미친 사람들, 식사 II', 1970년 작.(오른쪽)

"1958년,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후, 예기치 못한 사랑으로 야기된 여러 가지 상황들은 우리를 방황하게 했다. 결국 우리는 '생트로페 생트샤펠(작은 성당)' 근처의 작은 집에 숨어들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은둔하며 매우 행복했다. 베르나르에게 차고를 아틀리에로 만드는 데에는 48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는 아틀리에 한 켠에 내가 첫번째 소설을 썼던 책상과 의자를 배치해 두었다. 그곳에서 나는 베르나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처음 볼 수 있었다. 뉴욕의  풍경화가 태어난 곳이다. 그 특권을 누리던 순간들은 너무도 매혹적이어서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 놀라운 순간들... 내가 아주 특별하면서도, 누구와도 비할 데가 없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이 사람은 내 인생에서 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을 나에게 확인시킨 진실에 눈멀게 하면서...

그는 나의 사랑이었다. 선생님이었다. 그는 그렇게 머물렀다.

베르나르가 나를 버리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빈 곳으로 떠났을 때,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며 말했다. 울어서는 안된다고. 그는 불멸의 존재라 그의 그림이 나를 돌볼 것이라고.."

- 아나벨 뷔페

"내가 인정하는 프랑스 회화의 마지막 거장은 베르나르 뷔페이다. - 앤디 워홀"
왼쪽부터, '빨간 머리', 1967년 작 & '에코르셰(벗겨진 등)', 1964년 작 & '에코르셰(벗겨진 전면)', 1964년 작.

1973년부터 1976년 사이의 뷔페는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풍경화를 그렸는데, 이 로맨틱하고 독특한 작품들에서도 그가 존경했던 '귀스타브 쿠르베'나 '바르비종파'의 화풍을 찾아볼 수 있다.

 

"나를 둘러싼 증오는 사람들이 나에게 준 훌륭한 선물이다."

- 베르나르 뷔페

 

'해변과 요트', 1967년 작.

"9월 말... 나는 아직 전시의 주제를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틀리에의 정적뿐이었고, 그 완벽한 고요가 나의 감정을 더욱 요동치게 했다. 그러나 나는 이따금 깨버려서는 안 될 침묵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더 어느 날 오전 11시쯤이었던 것 같다.. 베르나르는 내게 단 한 마디를 건넸다. "보고 싶으면, 가서 봐도 돼.." 드디어 고요함 뒤에 숨어 있던 주인공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토록 외롭고 쓸모없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기도를 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고통으로 응축된 그의 얼굴들로 인해 나는 두렵고 괴로웠다.

자신의 초상에서 베르나르는 외로움, 부끄러움 그리고 불안과 같은 모든 감정을 한 번에 쏟아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저항? 혹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 잘 모르겠다. 단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초상은 우리에게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진의 세상이다. 더 이상 인간의 외형을 묘사하는 것은 쓸모 없어졌다. 이제 인간의 초상은 모델의 내면적 삶을 반영해야 한다. 고난과 삶의 모순에 부딪혀 일그러지고 긴장된 얼굴들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 눈빛 속에는 어떠한 연민이나 탄복도 요구하지 않는 자비 없는 냉철한 이성이 존재한다. 열정이 발하는 순순한 고통... 베르나르의 초상은 살아 있으며, 마치 어린아이 같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 아나벨 뷔페

'중국 화병과 꽃다발', 1967년 작.(왼쪽)
'렘브란트 이후 해부학 강의', 1968년 작.(오른쪽)
상단의 '중국 화병과 꽃다발' 작품 확대 모습.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II

뷔페는 평생에 걸쳐 많은 자화상을 그렸는데, 현대미술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 전시에서는 1948년, 1964년, 1977년의 자화상을 볼 수 있었다. 1981년에는 <자화상 IV>를 포함하여 약 20점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전한다.

"얼굴에 집중된 고통의 흔적들은 내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나는 화가 났다... 외롭고 겸손한 사람이 왜 분노를 품은 절규를 택한 것일까? 반항심이나 사랑이 아니라..."

- 아나벨 뷔페

"광대는 모든 종류의 변장과 풍자로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다." - 베르나르 뷔페
베르나르 뷔페의 광대 시리즈 작품들.(상단)
'빅 게임 II', 1977년 작. & '자화상 IV', 1981년 작. & '자화상 II', 1977년 작.(중간)
'빅 게임 II'와 '자화상 IV' 작품의 확대 및 이를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모습.(하단)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은 팝 아트나 만화에 근접한 좀 더 현대적인 방향으로 진화해 갔다. 이러한 진화는 보다 현대적인 조류이자 앤디 워홀이 발전시킨 미국식 팝 아트 스타일로 나타나게 되는데, <자동차: 모간 1950, 자동차: 부가티 타입 50-1935, 자동차: 시트로앵 2CV1950>이 그것이다.

왼쪽에서부터, '자동차, 시트로엥 2CV 1950', 1984년 작. & '자동차, 부가티 타입 50-1935', 1984년 작. & '자동차, 모간 1950', 1984년 작.

당싱의 칭송받는 자동차들. 공주 또는 석유 거물로 변장시켜줄 럭셔리한 리무진과 포뮬러원(f1) 레이스에서 바람을 이겨낼 크롬 페인트의 이스파노와 들라주 자동차. 그리고 연인과의 이별에 슬픔을 호소하며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는 커플을 태우고 있는 듯한 시트로앵 2CV 자동차. 베르나르는 이 멋진 자동차들을 보고, 경탄한 아이의 시선으로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자동차! 그것은 아름답고 윤기가 흐르며, 매혹적인 동시에, 무분별한 욕망이 실현되는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 아나벨 뷔페

다음, 3/3 회로 이어집니다.

(자료제공=HANSOL B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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