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래, 최근 예술극장 내 '나혼족'들 사이에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양태진 기자)
혼자만의 삶이 지닌 무게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자녀를 양육하며 그 가족의 생존에 얽매인 채 살아가야 하는 삶이란, 더 큰 압박감을 요구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가족이란 단위가 사회의 일익을 담당함은 물론이요, 인간 삶의 의미와 질, 척도를 규정하는 역사적 요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일찌감치 혼자만의 삶에 뛰어든 나혼족들에게 있어선, 누군가를 동반한 삶과는 또 다른, 혼삶 나름의 명분 정도는 인지해 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에 솔직담백한 명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현실을 재구성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 온 명연출가를 통해, 나홀로 살아가는 삶이 상대적으로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새로운 해석 또한 가능한 최신 영화 한 편을 준비했다.
<Sorry we missed you (미안해요, 리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행복 만큼 사랑하는 이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이에 영화는 그 위로의 당사자들을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로 설정하여 그들의 가장 '리키'의 일상을 쫓아간다.
대부분의 가족 영화가 그렇듯, 영화의 시작 또한 단란하다. 몇 안되는 식구를 죽기살기로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이기에 더 그렇다. 바깥 일이야 어떻든, 네 식구가 서로를 바라볼 때면, 한가닥 남은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는 것이기에, 오늘 하루 주어진 일을 잘 해낼거라며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집을 나선다.
예상대로, 영화의 주된 흐름은 곧바로 주인공의 직업에 올라 탄다. 당당한 시민으로서가 아닌 담담한 서민으로서, 그의 택배 업무는 두 자녀들이 간신히 매달려 볼 만한 생명줄이 될 판이다.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과거 실제 금융 위기를 경험한 부부가 빚더미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노력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며, '칸느 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에서 '황금종려상(Palme d'Or)' 수상 후보에 오르는 등의 숱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후, 영국독립영화제(British Independent Film Awards)의 각본 부문과 주연 남자 배우 부문의 수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현실감 있는 내용과 연기를 중심으로 영화에 대한 호평은 줄을 이었다.
주인공 '리키'의 아내 '애비'는 각 가정을 방문하며 노인 돌보는 일을 하는 일종의 가정부로, 남편의 격렬한 일상과는 또 다른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연한 상황을 연출한다.
'애비(Abbie)' 역을 연기한 배우 '데비 허니우드 (Debbie Honeywood)'는 이 영화로 '시카고 국제 필름 페스티발 (Chicago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최고 주연 여배우에게 주어지는 '실버휴고(Silver Hugo)'상을 수상했다.
남편이자, 주인공 '리키'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횡행하고 있는 것과도 비슷한 비정규직 트럭 운전수를 겸한 택배 직원으로서, 물류사가 분배하는 배송물의 선취 경쟁을 벌이며, 숨막힐 듯 적재된 할당량을 소화하는데 허덕이기 일쑤다.
반면, '리키'의 딸, '라이자(Liza)'는 삭막한 사막에 핀 유일한 꽃처럼, 다소 어른스러운 면모로 친오빠의 반항기를 녹여버리다가도, 가족이 모두 화합할 수 있는 뜻밖의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는 천사와도 같은 면모를 과시한다.
막내딸 '라이자'의 매력은 배우 'Katie Proctor'의 기본 연기력에 바탕을 두면서도, 영화 전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극적 상황 해결의 주요 키 역할을 자처한다.
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극적 감동의 순간은 영화를 끝까지 보면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이들 네 식구가 만들어가는 행복은 가끔 '리키'의 택배 업무에 온가족 모두가 참여함으로 다소 화기애애한 회복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결국 이 영화의 한글 제목에서처럼, 고객에게 전달시 남기는 부재중의 메모, '쏘리 위 미스드 유'가 아닌, '미안해요, 리키'가 의미하는 바 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가장과 특히 택배 업무와 같은 과한 노동에 시달리는 고마운 이들에 대한 우리의 자각이 우선되야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후, '리키'를 찾아오는 다양한 고난의 설정들은 조금 과한 측면으로도 인식될 여지가 있으나, 부부가 더욱 단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데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주체할 수 없도록 하는 주요 원인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영화를 연출한 '켄 로치 (Ken Loach)'는 이전,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가 '칸 영화제'를 비롯,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의 상을 수상하면서, 국내 팬은 물론, 전 세계에 엄청난 팬을 구축해 낸 감독이다.
그는 미국 할리우드의 부름에도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사회적 현상을 꼬집는 그의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연출력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때와 마찬가지로 작가 '폴 래버티 (Paul Laverty)'를 만나 영국 서민의 리얼한 삶이 담긴 극적인 이야기를 풀어 낼 수 있었다.
또한, 음악 부문을 담당한 '조지 펜튼 (George Fenton)은 역사적인 할리웃 영화의 신화로 남을 만한, 당대 최고의 영화음악가로, 영화 <멤피스 벨(1990)>, <피셔킹(1991)>, <Hero(1992)>, <Final Analysis(1992)>, <Groundhog day(1993)>, <The Crucible(1996)>, <In love and war(1996)>, <유브갓메일(1998)>, <Mr.Hichi(2005)>, 그리고 최근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까지 최고 명작들의 음악을 담당해 왔다. 이 영화의 음악 만큼은 유심히 들어봐야 할 이유가 되기 충분한 것이다.
네 식구의 불협화음이 자칫 그들의 희망 마저도 뭉개 버릴 지언정, 서로가 서로를 위로함에 있어 영화는 스스로 닿아야 할 곳을 향해 치닫는 듯 보인다.
하지만, 어느 구석에서나 또 다시 다음 날이 도래할 때면, 이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행복과 거리가 먼 삶.
곳곳의 영국식 코믹 요소마저도 눈물 겨운 이 영화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 않냐며 냉정한 현실을 일깨움과 동시에 알려주는 건, 남편 '리키'의 애환을 이해해주면서도 때론 현실과의 타협에 애써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또 그러면서도 꿋꿋이 남편 곁을 지키는 아내의 모습에서 시종일관 흐르는 우리의 눈물이다.
하지만, 이들이 겪는 고충이 우리 사회 전반에도 서려 있는 만큼, 지금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비정규직 서민들에 공감하고 함께 눈물흘려 주는 정도에서,
누구나 혼자만의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에, '나혼족'인의 삶으로 겪는 어려움이 차라리 속 편할 수 있다는 냉정하다 못해 불편한 현실이 못내 씁쓸함으로 다가오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