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비친 심리를 들여다보고, 그 몸에 좋은 장소는 어디인지, 뇌로 자극된 오감은 과연 마음까지도 치유해 줄 수 있는지 등, 현장감 넘치는 사례로 넝쿨진 그 비밀의 정원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양태진 칼럼리스트)
세상 끄트머리에 이르고 난 시점, 우린 그제서야 잊혀졌던 작은 주머니 하날 뒤지기 시작할지 모른다.
언젠간 꺼내봐야지 했던 그 어린 날의 당차고도 호기로왔던 포부는 어느새,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시점까지도 제 모습을 낯뜨거워하며, 낡은 주머니 속 만을 유영하고 있는 것.
첫사랑처럼 다가온 눈부신 환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따윈 거뜬 헤쳐나갈 수 있을거라 믿었던 자신감과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자가 치유의 활로를 개척해줬던 수많은 현인들의 이야기가 오랜 책장 한 켠에 여전히 꽂혀진 채로,
색색의 문장들이 순수한 꿈의 조각들로 이어 붙여지던, 무겁고도 가벼운 책 들과 함께하던 그 어느 따사로운 오후 햇살이 여전히 맘 속 기억을 간지럽혀줄 수 있다면, 우리에겐 아직 작은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다 할 수 있겠다.
나를 치유하는 공간의 심리학
<힐링 스페이스 (Healing Spaces)>
어느 공간이든 그 시대를 아우르는 문화적 분위기를 비롯, 주변 환경의 영향력 만큼은 깊이 함의하고 있다. 그렇기에 장소가 주는 위대함을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인간과 동물이 거쳐온 오랜 시간의 경험적 정보가 필히 요구되는 것.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의 횡행으로, 개별 공간이 갖고 있던 본래의 의미는 - 전염으로 인한 - 그저 신경이 곤두서는 장소로서 상당 부분 손실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일 수록, 평소 아껴뒀던 집중력을 모두 끄집어 내어서라도, 공간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결코 늦추어져서는 안된다.
단순히 전염으로 인한 위해를 걱정함으로 공간에 대한 심리적 오인을 갖기 보다는, 공간이 심리에 미치는 여러가지 요인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또 하나의 강점으로 적절히 활용할 수만 있다면, 이 난국을 타개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접근 과정과 맞무려진 책 <힐링 스페이스>는 인간의 심리 치유를 위한 방편으로 공간의 힘을 찬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소에 대한 인간의 감각은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이나, 비 온 뒤의 젖은 흙냄새, 인도 위로 날쌔게 날아가는 참새의 소리처럼 작은 것으로부터 올 수도 있는 것이라 전하며, 장소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듣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
이에 어떤 장소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불행한 기억을 깨우거나 나쁜 습과을 촉발시킬 수 있고, 마약중독이나 절망감 속으로 밀어넣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안전함'을 연상케하는 장소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를 구해줄 수도 있단다. 이러한 감정들은 모두 많은 양의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을 뇌의 유출경로를 통해 분비시키는 것이라 말하는데, 이러한 화학물질과 호르몬은 질병과 싸우거나 질병을 치유하는 면역세포의 능력을 변화시키고, 우리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저자 '에스더 M. 스턴버그'*는 전한다.
*'에스터 M. 스턴버그 M.D (Esther M. Sternberg M.D.)' : 인간의 행복에서 장소와 공간의 역할, 그리고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이 치유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광범위하게 연구해온 정신 건강 전문가로 '신경건축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태동 또한 알린 인물. 워싱턴주립대학교 교수를 거쳐 1986년부터 26년간 미국국립보건원과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정신보건원에서 재직했다. 지금은 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앤드루웨일 통합의학센터 연구소장과 '장소, 웰빙 및 성과 연구소' 설립소장을 맡고 있으며, 같은 대학 의학 및 심리학과 겸직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내면으로부터의 균형 (Balance Within)>이 있다.
또한,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들도 그 장소가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좌우한다고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으면 공간이 부족하고 전염병이 쉽게 생길 수 있는 반면, 사람이 너무 적으면 고립감을 느끼고 우울해질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적당히 있으면 우리가 아프거나 힘들 때 이겨내도록 도와줄 안전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단다. 질병 역시 장소에 대한 감각에 영향을 주어 우리의 감정에 색을 입히고,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을 주는 장소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에서, 오랫동안 건축가들은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전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중용'의 덕을 귀하게 여겼다는데, '크리스토퍼 렌(Sir Christopher Wren)'이 설계한 런던의 세인트폴대성당은 이 소리를 포착했으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를 비롯한 20세기 초의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밝고 공기가 잘 통하는 건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루이스 칸(Louis Kahn)'은 라호야의 바닷가 절벽 위에 '소크연구소(Salk Institute)'를 지었고, 장소가 기분과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그 결과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건축가들이 스트레스와 질병을 악화시키는 장소가 아니라 건강을 지켜주고 치유를 촉진시키는 장소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을 위한 치유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 세상 어디에 있든, 바쁜 삶 속에서 잠깐만이라도 시간을 낼 수만 있다면 자신만의 작은 섬을 만들 수도 있단다. 그 치유의 공간은 우리의 자신 안에서, 감정과 기억 안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을 지닌 곳은 바로 우리 뇌와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란다.
정신과 신체의 연관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뇌가 물리적 공간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우리가 주변 세계를 어떻게 기억하고 처리하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우리 감정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신경과학자들과 건축가들이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들이 최근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작가는 곧바로 뇌에 대한 깊이있는 접근을 스스로 강행한다.
뇌는 시야에 있는 사물들을 끊임없이 훑어보고 그것들을 우리의 기억 속의 이미지와 맞춰보기에, 뇌가 사물을 어떤 범주에 두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뇌 부분이 활성화 된단다. 다시 말해 혈류량이 증가하고, 신경세포들은 전기자극을 발화하며, 유전자들은 단백질을 만들기 시작하고, 신경말단에서 화학물질이 분비되며, 신경세포들이 서로에게 신호를 보낸다는것. 말 그대로 점들을 연결하여 사물을 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우울증을 지닌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있어 밝은 햇빛이나 햇빛과 동일한 강도와 파장 스펙트럼을 지닌 빛에 노출시키는 치료법을 사용하면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에너지가 회복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소리로서 소리의 긍정적 효과를 높이는 것 역시 도움이 된다고 이 책은 전하는데,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음악이 그러하듯, 미주신경*을 활성화시키면 면역체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 외과 의사이자 롱아일랜드의 '파인스타인' 의학연구소 연구원인 '케빈 트레이시'는 미주신경을 전기적으로 자극하면 지나치게 활동적인 면역체계를 억제해서 복부 염증의 치유를 앞당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주신경을 활성화하는 음악처럼, 가벼운 개입이 면역체계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물론, 음악이 면역반응과 치유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한 통로로서 매우 직접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엔 별 이의가 없다는 것이 작가의 소견이다.
*미주신경 : 열째 머릿골 신경. 운동과 지각의 두 섬유를 포함하며, 내장의 대부분에 분포되어 있는 신경으로서 부교감 신경 중 가장 크다.
이외에도, 특정한 장소에서 사람이 어떻게 치유되는지를 이해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는 작가는 전한다. 하지만 동물실험 연구 결과들을 보건대, 한 장소와 긍정적인 기분을, 또는 한 장소와 그곳에서 병이 나을 거라는 희망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은 그저 특정 장소에 가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정 장소들의 치유 촉진 효과 중 일부는 플라시보 효과가 일어날 때 활성화되는 뇌의 경로와 같은 경로, 곧 도파민 보상경로와 엔도르핀 경로를 거친다는데, 이러한 긍정적인 감정반응은 신경전달물질과 뇌 호르몬의 분비를 촉발할 수 있고,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방식으로 치유 속도가 빨라지도록 면역체계를 자극한다는 것. 바로 조건형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적 이해의 끈을 놓지 않은 채로, 다소 어려운 용어는 적재적소에 명시되긴 하지만, 여러 신체 기관의 체계와 더불어 뇌가 인지해내는 다양한 입증 체계와 각 기관의 기능을 통한 치유의 힘을 저자는 여러 적절한 사례를 곁들이며 상세히 전해 주고 있다.
건강과 힐링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그리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편으로도 저자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자신의 아버지와의 일담을 풀어내는데,
"잘 들어봐..... 얼마나 평화로운 소리가 들리는지." 아버지가 말했다. 개가 짖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길 건너 테니스 코트에서 테니스공을 받아치는 소리가 들렸다. 특이할 게 없는 소리, 늘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나는 그 소리들이 아버지에게 무슨 의미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중략)
아버지에게는 전쟁의 기억이 아직 너무나 생생했기에, 그렇게 고요한 순간을 온전히 누리고 평화로운 느낌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과 애환이 담긴 이 책을 사유(思惟)함으로, 공간을 통한 우리의 몸과 마음이 구체적으로도 치유받을 수 있기를. 그 곧은 길 위로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이 모든 이의 힐링으로 사유(私有)될 수 있기만을 이 시기 그저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