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삶인의 고난과 역경도, 일격(一擊)으로 물리칠 수만 있다면. 무시무시한 적들을 단 한 방에 제압하는 나름 참신한 애니시리즈 '원펀맨'을 소개합니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양태진 기자)
자그마한 주먹 한 방이 세상에 내로라하는 적들을 무참히 섬멸해간다. 이러한 단순 구조의 히어로 내러티브*는 곧 일반적인 예상 수위 그대로,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일과를 소환시키며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펼쳐 보여주는데,
과감한 예측은 언제나 극적인 재미를 상쇄시킨다. 아니나 다를까. '원펀치 파워를 지닌 남자', 줄여서 <원펀맨>은 단출한 세 글자에서 느껴지는 간단명료함 그대로, 무수히 등장하는 악당들을 단숨에 공기 중의 먼지로 만들어버리는가 하면, 혼삶인으로서 상반된 현실적 애환을 드러내며, 기존 히어로물이 갖는 일반적 대비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기에 이른다.
* 내러티브 : 이야기를 전달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합리적인 설명과 함께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예측 또한 가능케 하는 내용 상의 전략적 구조 내지는 전개 방식을 통칭. 대표적으로 '고전적 할리우드 내러티브 양식 (Classical Hollywood Narrative Style)'이 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대결 구도가 승자 예측이 어려운 측면에서 더 큰 짜릿함을 전해주는 반면, 이 작품의 경우엔 힘의 균형이란 도통 존재하지 않는 차원에서 '원펀맨'으로부터 한방에 제압당하기 전과 후만 존재할 뿐, 문제는 모든 맞상대(악당)의 다채로운 비쥬얼과 힘, 그리고 그 포악한 의지가 얼만큼 빨리 꺾이느냐에만 봉착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별 놀랄 새도 없이 쓰러져가는 악당들의 입장에서나 그 허망함을 토로해야 할 뿐, 보통의 히어로 무비에서 등장할 법한 나름의 영웅적 위기 의식이나 고난 극복의 과정은 이 '원펀맨'에게 있어선 아예 무관한 듯 보이는 것이 사실.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능력으로 세상을 구원해 냈음에도, 자신만의 혼삶 속 평범한 이미지로 과감히 전락할 수 있는(?) '원펀맨'이기에, 기존 영웅 이미지를 가볍게 뭉개버리면서도 그 어떤 위협에서든 덤덤한 자세를 유지하는 이 우주 최강의 매력 만큼은 어느 정도 어필될 필요가 있는 것 아닐지. 그런 관점에서 뭔가 다른 차원의 히어로, '원펀맨'의 주먹 한방을 스포없는 가운데 약간이나마 맛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본다.
나는야 1인 삶을 대표하는 취미파 히어로, <원펀치맨> - 한방 제대로 꽂히는 멋진 혼삶을 위하여
말 그대로 취미로 세상을 구하려는 듯한 그만의 신선미를 뽐내는 주인공 '원펀맨'에게 심취하다 보면, 분명 약점이란 것 또한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나름의 합리적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 이에 더해 매번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강력한 적들에 대해서도, '설마 너도..?'라는 기대감 아닌 실망감(?)을 감출 수 없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과연 이번엔 어떤 악당이 주인공 히어로의 몸에 약간이나마 스크래치를 내 줄 수 있을지, 이 놀랍고도 아이러니한 감상을 여럿 반복하다 보면, 저마다의 정복 야욕에 사로잡힌 악당들의 특이하고도 무지막지한 비쥬얼에 그리 아깝지 않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그리 지루하지 않은 측면에선 시간적 여유가 넘치는 경우라면, 전 에피소드를 봐야할 목록에서 순삭*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순삭 : 어떤 것이 매우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로 ‘순간 삭제’나, ‘순식간에 삭제’의 줄임말로 통칭된다. (게임 중 캐릭터가 바로 죽을 때 쓰던 말에서 유래)
물론, 대부분의 독자들 입장에서 주먹 한방에 모든 적을 쓰러뜨린다는 것이 자못 실소를 금치 못할 만큼의 어이없는 설정임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 속 본질로부터 제기되는 문제란 그리 간단치가 않은 법.
영웅이라 하기엔 상당 부분 독특한 민머리 이상의 눈부신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 히어로가 다양한 적수를 맞닥뜨려내기까지, 때마다 등장하는 여타의 히어로들 또한 그에 못지 않은(?) 활약을 펼쳐냄으로, 다양하고도 독특한 에피소드들이 때마다 추가되는 흥미 본위의 대결 구도가 결코 모자람 없이 선사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 작품의 기본 세계관을 인지하고 넘어가야 할 듯 싶다. 이 곳의 도시에는 각각의 특별한 능력을 지닌 히어로들이 대거 군집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저마다의 특성상 알파벳으로 등급이 나뉘어, 최상 레벨인 S급 히어로를 중심으로 다양한 히어로 군상들이 본부의 지령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히어로, '사이타마'는 C급의 최하위 레벨.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이타마'의 최강 능력은 점차 기존 등급 체계 내에서 터줏대감(?)들을 몰아내며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하는데, 역시 시리즈물의 특성 그대로, 괴인들과 같은 안티 세력들과 함께 다양한 히어로들의 군상 엿보기와 같이 곁가지로 빠지는 듯한 '에피'들은 결국, 주인공 '사이타마' 활약에 대한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로도 작용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등장하는 우리의 '원펀맨'의 짧은 일격 하나가 그나마라도 이야기를 다시금 본 궤도로 올려 놓음으로서, 그 다음 화의 에피소드가 본래의 구심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이러한 본래의 구심점이 점차 거대한 세계관의 썰물에 밀려들어 하나되기까지, 이 모든 것들의 시작점은 별 부연 설명 없는 방식을 통해, 히어로로 재탄생하기 이전의 주인공, 인간 '사이타마'의 회상을 다루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쩌다가 머리 뿐 아닌 주먹 한방으로도 반짝일 수 있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인지, 그 연유를 쫓아가기 시작하던 스토리는 동네 뒷골목에 출몰한 어느 시시해보이는 불량배 악당과의 교전 이후, 그 누구보다도 강해지고 싶어 악에 받친 평범한 인간 '사이타마'의 본능을 소개하더니만, 곧 엄청난 훈련의 결과로 찾아온 울트라 수퍼 원펀맨, 현재의 '사이타마'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훈련이 어떤 것이었을지, 과감히 스킵한 측면에서는 괜히 긁어 부스럼 내지 않으려는 작가 나름의 고심과 전략이 통한 것일까. 하긴 그도 그럴 것이, 훈련의 내용 내지는 방식이 요(要)가 아닌, 괴수들과의 대결을 펼치면서 그만의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야하는 것이 본질이거늘, 우주 최강자로서 여유넘치는 면모들이 더 말도 안될 만한(?) 연유들로 퇴색되면 안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후로도 마치 단순 취미생활 즐기듯, 그 누구보다도 확실한 히어로의 역할을 자임(自任)하던 '사이타마'는 곧 자신만의 힘과 역할에 있어 과한 자존감이나 자만심 따위는 개나 줘버린 채(?), 교전 상태가 해제되어 평시가 된 순간부터는 그저 보통의 인간들과 똑같이 평범한 일상에 심히 만족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무한 능력의 주인공, '사이타마'이기에 맘편한 일상도 당연지사(當然之事)로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냐는 나름의 날선 해석도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적수가 없는 최강 히어로라 할지라도 평범한 일상 속 주어지는 행복의 크기가 오히려 더 클 수 있지 않겠냐라는, 그야말로 이 작품 만의 놀라운 철학관 또한 엿보는 것도 이 작품의 유의미한 부분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마치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는, 아주 특별하고도 각별한 권위나 권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그저 평범한 삶과 일상이 전해주는 행복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함에 주인공 '사이타마'는 극 중 내내 이 자세를 꼿곳이 유지해내고 있는 것.
이 밖에도 시즌 2의 경우, 파벌을 중시하던 자는 오히려 스스로의 약함을 자처하는 꼴이라는 깨달음 또한 선사하며, 매 에피소드들마다 힘의 논리로 구현되는 세상 이치의 불균형을 만화다운 액션감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이후, 히어로 협회에 속한 각 등급별로 나뉜 히어로들의 활약에 몰입하다보면, 자칭 히어로를 사냥하러다닌다는 나름의 강적, 괴이한 '괴인'이 등장하는데, 왜 세상은 항상 잘난 히어로들한테만 열광하는지, 그런 현실에 대한 나름의 날선 의문을 제기하며, 기존의 상식도 살짝 고루해 보일 수 있다라는 약간의 허점 아닌 허점 또한 간파해 내기도 한다.
그 허점이란 다시 말해, 세상은 인기있는 자들 만 계속 승리에 도취될 수 있도록 놔둠과 동시에, 오히려 미움받는 자들은 지속적으로 패배의식에 젖어 다신 재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우둔한 현실이라는 것. 이렇듯, 인간과 히어로, 괴수의 각기 다른 관점을 그려내고 있는 <원펀맨>은 다소 무거운 물음을 던지는 동시에, 가벼운 애니로서 즐기기도 좋은, 대략 1석 2조의 형태로서 애니 매니아들의 취향을 한껏 자극하고 있는 것이었다.
꽤나 무거운 깨달음에 귀를 기울여 볼 법한 순간에도, 다시금 동네 수퍼마켓 세일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빨리 대결을 끝내려하는 주인공, '사이타마'의 모습에서는 실제 '혼삶러'들 또한 나름의 입장에서 약간은 벤치마킹 해 볼 수 있을 만한 요소들이 적잖이 발견된다. (연이어 등장하는 매 한가지의 악당 퍼레이드가 막을 내리기도 전에 각각 등급이 매겨진 여러 히어로들의 군상 따라잡기가 감행되고 난 이후의 시즌 2 대립 구도는 각 히어로들끼리 난립하는 원펀맨 만의 놀라운 시대적 배경을 완수해 냈다.)
여기 이 정도까지, 실제 '혼삶러'의 입장에서라면, 이번 작품을 통해 나름 벤치마킹 해야할 요소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꾸준함으로 성취된 능력은 곧 천운과도 같은 호기로운 한 방을 내보일 수 있을 터, 이러한 한방 KO에 열광하는 주변인(?)들을 위해, 단번에 시험 합격을 한다거나, 무언가를 선택, 준비하던 기간들을 보상받고도 남을, 그런 단 한방의 목표를 미리 파악해 보는 건 어떨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또한 충분히 만족하고도 남을, 피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야 모두가 인정하고도 남을 만한 능력이 눈처럼 불어나 '원펀맨' 이상의 현실감 넘치는 '생활인의 영웅'으로서도 기억될 수 있을 테니. 그런 가운데, 누군가의 칭찬과 환호가 뒤따라야 직성(?)이 풀리는 '관종' 또는 '욕망'의 시대이니 만큼, 자신만의 '셀피'*나 영상을 확보해 이 또한 최대로 활용해보는 것도 나름 필요할지 모른다. 그래도 더 강해지고 싶은 욕구로 좌절하거나, 망설여질 때라면, 주인공 '사이타마'의 결정적 대사 하나를 떠올려 보자.
"좌절할 여유가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편이 낫다."
- '사이타마' (원펀맨 시즌2: 11화 각기의 긍지 中)
물론, 단순히 한방이란 것에 치우치기 보단, 그것이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여기서 말하는 진정 나아감의 의미는 무엇인지 새삼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혼삶인으로서의 기준이 다소 냉정해 보일 때나, 안되는 걸 뭐 어쩌냐라며 스스로의 운명을 탓할 때, 잠시나마 시간을 늦춰 이 뭔가 다른 가상의 운명을 만나보자. 애니 <원펀맨>만의 상상 넘치면서도 익살스런 에피소드들이 나름 당신의 삶이 자신보다 낫다며 때마다 위로해 줄 지 모른다.
[시사캐스트 ]
*셀피(selfie) :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사진 찍는 일. 또는 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