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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때리는 시간] 사라진 것들에 영원히 머문 이야기들, 'As time goes by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건 여전히 존재하니까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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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때리는 시간] 사라진 것들에 영원히 머문 이야기들, 'As time goes by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건 여전히 존재하니까 ②
  • 양태진 기자
  • 승인 2020.09.14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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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삶인을 위한 책속 '명'문장과 영화 속 '명'대사, 시를 닮은 '명'가사를 통해, 참담했던 어제의 기억이 창창한 내일의 기약(期約)으로 거듭나시길. 그럼, 또 한 번 멍때리기 시~작!

(시사캐스트, SISACAST= 양태진 기자)

① '명'문장 : 책 <아주 오래된 서점> 

② '명'대사 : 영화 <포레스트 검프> (('스포'살짝있음))

③ '명'가사 : 명곡 <Αs Time Goes By>

 

태평양을 가로질러 바다 깊숙이 자리한 어느 해산물이 내 식탁에서 마주할 확률은? 어느 지역 내 수 천억 마리의 벌레들 중 한 마리가 내 팔뚝을 기어올라 다소 위태로운 상황을 맞이할 그 숙명적 확률은? 구름이 쏟아낼 수많은 얼음 알갱이들 중, 내 콧잔등에 녹아들 단 하나의 눈송이가 지닌 그 기막힌 운명은 대체 무엇?

이렇듯 다소 특별(?)해 보이는 자연 속 하나의 산물이 결국, 한 사람과 조우하는 이 놀라운 순간들을 또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결코 작지만은 않은, '운명적' 만남이라 칭하기엔 좀 과한 접근일까? 아님, 인간계와 자연계가 우연히 마주친 - 그나마 중력의 영향권 하에 있다는 정도가 공통점인 - 그저 숱한 자연현상들 중 하나일 뿐인 걸까.

 

 

보다 근원과 가까운 물음에 문 두드릴수록, 더욱 깊고 성숙한 자아의 방으로 입성할 수 있다.(상단) 인생에 운명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냥 스쳐지나는 것도 운명이지 않을까? 그럼, '모두가 스쳐지나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사로 잡힐 분들을 위해 또 다른 의문 부호 하날 제기해 본다. '그럴 땐 당신도 스쳐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 무작정 뱉어 버린 허망함에 당장 말을 바꿔야 할 태세다. 그렇다면 다시, '그래도 하나 이상은 꼭 운명의 상대로 존재할 겁니다. 당신도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면.'(하단) (사진=픽사베이)

자연과의 '우연성'도 이러한데,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이 더할나위 없이 소중하고 특별한 듯 여겨지는 것도 결국, 이러한 세상을 바라보는 경이로운 물음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무상(無常)한 세월의 흐름 속, 운명의 굴레도 함께 존재하는 듯한 이 오묘하고 놀라운 세상에선, 그 본질에 대한 궁금증 만큼, 결코 사라지거나 변질될 운명에 처할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이에 변화무쌍한 시대를 무덤덤히 관통하면서도, 우리 스스로의 존재 가치 또한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는, 어느 오리지널 순수 청년의 '명'대사 하나를 다시금 들춰내 본다.

 

 

②'로버트 저멕키스' & '톰 행크스'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포레스트'의 '명대사'

 

영화 속 주인공 '포레스트'(맨 우측)가 자신의 이야기를 손수 들려주느라 정신 없었던 버스정류장에서의 모습. 처음 본 이들과 서슴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그에게서 세상에 대한 친근하고도 애정 어린 - 주인공 면모다운 - 시선을 눈치챌 수 있었다.(최상단)
그런 그가 달리는 것에만 온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그저 흘러가는 세상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음에, '원망'이란 단어 조차 모르고 살던 그의 평소 태도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지. 그 모습은 영화 속 미 전역을 용기와 희망으로 열광시키기에 충분했지만 결국, 그 달리던 길 또한 끝은 존재했다.(상단 두번째)
영화는 곧 해당 시대를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한 세대를 풍미했던 몇 안되는 위인들을 등장시키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엘비스'다. 굳이 '엘비스'를 모독(?)할 요량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의 시그니쳐 댄스가 어린 '포레스트'로 부터 나왔다는 다소 재미난 억측이 당시 나름 쏠쏠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긴 했다.(상단 세번째)
그에 못지 않은 유명인 씬으로, '포레스트'가 출연한 토크쇼에 함께 등장한 '존 레논'을 들 수 있다. 오랜 시대적 회상은 물론, 그의 안타까운 희생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애도할 수 있도록 한, 다소 의미있는 CG가 아닐 수 없다.(최하단)  

마치 살아 움직이듯, 따뜻한 바람결에 한없이 떠다니던 흰색 깃털의 자유로움이 주인공 '포레스트'의 곁에 안착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의 가방 속 책 사이로 끼워넣어질 때까지, 깃털의 운명은 과연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었을까, 아님,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우연의 흐름을 쫓아 날아온 것일 뿐이었을까. 본 영화의 핵심과도 맞물린 이 오프닝은, 당시 90년대 영화 중 단연 손에 꼽힐 만한 것이었다.

'어떤 초콜릿을 고를지 모르는 것처럼, 인생은 초콜릿 박스와 같다'라는 평소 자신의 어머니가 들려준 말을 시작으로 '포레스트'의 천진한 말씨는 곧, 특별한 경험들을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하는데, 스스로 잉태되기 전 무슨 뜻인지 조차 알지 못했을 순수하고도 자연스런 대사들이 곳곳에 넘쳐나기 시작한다. 가끔은 조리 과정에 적잖이 섞여 들어가버린 양념 - 과도한 영화적(인위적) 설정 - 탓에 맛이 좀 강할 때도 있지만, 북아메리카의 한 귀퉁이 청년을 따라 장엄한 미국 현대사의 한 줄기를 쫓다 보면, 어느새 희망이 담긴 미소 또한 조용히 찾아든다.

 

 

그의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는 강인한 여성으로, '포레스트'의 타고난 허약 체질과 연약한 심성에 가장 알맞은 약재를 지어 먹여준다. 그건 바로, 세상 모든 어머니라면 공통적으로 달여 놓고 있는 진심 어린 자식 사랑. 이를 최고의 배우 '샐리 필드'가 열연을 펼쳐 보여준 만큼, 어머니로서는 더할 나위없는 완벽한 감성을 전해주고 있다.(상단 좌측)
'포레스트'의 월남전 참전 당시, 그의 직속 상관이었던 '댄' 중위는 세상과 자신에 대한 비관만을 일삼아 오던 중, 우울함 만큼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포레스트'만의 균형감 있는 삶의 자세에 감화 당한(?) 이후부터, 그의 결정적 동반자를 자처하고 나선다.(상단 우측) 
월남전에서 금의환향한 '포레스트'는 '링컨기념관' 광장에서 뜻하지 않은 연설을 하던 도중,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제니'와 극적으로 재회한다. 작은 호수 안으로까지 뛰어들어야 했던 그들이었기에 이 장면 만큼은 영화 속 주제('사랑이란 가장 위대한 운명')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하단 좌측)
애정의 지향점이 서로 달랐던 그들이었지만, 결국 한쌍이 될 것 같은 시점에서 그들은, '포레스트'의 대저택에 머물며, 함께 산책을 하고 수다를 떨거나, 새 신발을 선물 해 주다가도, 밤이 되면 여지 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하단 우측) 이러한 회상은 현재의 '포레스트'를 더욱 애닯게 하는 지점이지만, 사실 그런 그녀에게 그는 프로포즈를 하긴 했었다. 허나 결과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라도, 각자의 오랜 기억에 맞겨 본다.

이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남은 '포레스트'가 '링컨기념관' 광장에 꽉 들어찬 시위대의 환호를 받으며, 그 단상에 올라서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지만, - 절묘한 타이밍에 꺼져버리는 스피커 - 사실상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전쟁의 영웅이나 연설로서 인정 받는 것이 아닌,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만의 유일한 사랑, '제니'와의 극적인 만남 뿐이었다.(이 연설의 기회로 그녀와 재회할 수 있었던 순간이 평생 중 가장 행복했던 때라 말하는 '포레스트'.)

물론, 어린 시절 '포레스트'에게 알기 쉬운 말들로 삶의 용기를 불어 넣어준 그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월남전 참전 당시, '포레스트'가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까지 구해준 상사, '댄' 중위 또한 '포레스트'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로서 등장하는 건 사실이다. 특히, 나중에 동업자를 자처하고 나선 '댄' 중위와 함께 본의 아닌 새우잡이어선 하나로 억만장자가 된 '포레스트'가 이후에도 - 남아도는 돈은 허세일 뿐이란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 교회와 어려운 흑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기부하며 취미로 잔디까지 깎아주었던 일련의 행동들은, 이 둘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도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포레스트는, 자신의  절친 '제니'가 학교에 빠진 날이면 그녀의 집을 직접 찾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어린 그녀가 술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최상단), 갈대밭 사이로 숨어 새가 되어 도망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그와 함께 올리기도 한다. 사진 우측 하단의 미세한(;) 그들 모습과 함께, 순간 갈대 숲 사이로 솟구쳐 오르는 새들의 풍경에서, 그녀의 기도가 하늘에 닿을 듯 여겨졌다.(상단 두번째)
그런 그녀의 무덤가에서 '포레스트'는 오랜 회상에 젖은 채, 그녀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 '명대사'를 읊조린다.(상단 세번째) 이후 뒤돌아 걷던 '포레스트'가 그녀의 무덤가 위로 날아오르는 새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새가 되어 힘겨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녀의 바램을 다시금 떠올리 듯 멈춰 서 있다.(최하단)

하지만 무엇보다, '포레스트'의 삶에 가장 큰 반향(反響)을 불러 일으킨 인물은 어쩔 도리 없이(?) 어린 시절의 첫사랑, '제니' 뿐인 것. '사랑과 연민'의 뒤섞임 속에서도, 영원히 그 안에 머물며 그녀와 행복을 나누고 싶을 뿐, 다른 어떤 무엇도 그것을 대신해 주진 못하는 듯 보였다. 그런 '제니'를 그리워하는 '포레스트'만의 방식은 항상 먼저 다가서는 법이 없다는 것. 소심한 것일 수도, 배려심 넘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그녀의 존재감 자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평생 사랑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그 바램이 하늘에 닿았는지, 한평생 단 둘이 살아갈 수도 있는 기회가 한 번은 찾아오고야 만다. 하지만 결국 또, 헤어짐은 반복되고.. 그래도 '포레스트'는 역시나 변하는 법 없이, 오늘의 그녀를 만나기 위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매일 스쳐지날 뿐인 공공 장소에서, 그것도 전혀 알지 못하는, 그래서 더 운명(?)적인 낯선 이들의 반응을 기다리며 자신만의 사연을 전하여 온 것이다. 그러던 누군가가 '제니' 있는 곳을 제대로 알려주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의 사랑 얘기는 다소 놀라운 재회의 순간 이후, 그녀의 무덤 앞에서 끝을 맺고 만다. 이제 막 다시 시작될 수도 있는 찰라였건만, 운명의 무게추는 또 다른 지점을 향해 움직여 질 수 밖에 없었나 보다. 그녀와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커다란 나무 밑동 작은 무덤가에서, 이제야 '포레스트'는 지난 날의 모든 그리움에 사무친 뜨거운 눈물을 머금기 시작하는데..
 

 

"Jenny, I don't know if Mama was right or if it's lieutenant Dan. I don't know.. If we each have a Destiny.. or if we're all just floating around accidental like on a breeze.. but I think, maybe It's both. Maybe both get happening at the same time. ... But I miss you, Jenny."

 

"제니, 엄마와 댄 중위님 중, 누가 옳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 우리에게 운명이란 게 있는 건지, 아님, 모두 바람처럼 떠돌아 다닐 뿐인 건지.. 하지만 내 생각엔 말야, 둘 다 맞는 것 같아. 이 둘 모두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니까. ... 보고 싶다, 제니."

 

-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엔딩씬 바로 이전의 '명'대사

 

 

영화 중반, 혼자가 된 포레스트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달리기 시작한 이후, 태평양에 가까워질 때까지, 그리고 또 다른 해변을 끼고 반대 방향으로 마냥 뛰기까지, 그는 수많은 생각을 했다고 전한다. 가족과 친구는 물론, 특히 제니의 생각을.. 그렇게 3년 2개월 14일 16시간을 뛰던 그는 (옷은 어찌 갈아입고, 돈은 어디에 넣고 다녔을지, 다소 의문 투성이의 상황에서) 사막 한가운데에까지 쫓아온 동행자들을 바라보다 이젠 지쳤다며 갑작스레 집으로 돌아간다. 이에 극 후반에 보여지는, 당시 모든 여정의 선상에서 봤다던 '포레스트'가 만난 '운명적' 대자연의 명장면 퍼레이드.(최상단은 월남전 참전 당시의 밤하늘 별을 바라보는 장면이고, 상단 두번째는 새우잡이 어선을 타고 해질녘 노을을 바라보는 모습) 이는 그가 '제니'에게 들려 주던 회상씬으로서, 당시 그 장소에 함께 없어 아쉬움을 표하는 제니에게 포레스트는, 자신은 언제나 그녀와 함께였다며 한 순간도 잊어 본 적 없음을 진정한 사랑의 메시지로 전하고 있다.

운명이라 부르고 인연이라 외칠 수 있던 사랑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린 상황이란 건, 웬만한 의지로도 감당하기 힘든 것임엔 누구도 부인할 여지가 없다. 이는 '포레스트'도 예외일 수 없는 것이었기에, 어머니와 '댄' 중위가 말해준 두 '희망과 허망' 사이에서 결국, '둘다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라는 어정쩡함(?)으로 지친 맘을 달래야 했을 줄로 안다. 그렇다. 처음엔 진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대사에 숨은 기색을 거듭 살피다보니, 바람따라 떠도는 세상이 존재하려면, 운명이란 두 글자가 필히 함께 존재해야만 했던 것(!).

검은색이 있어야 흰색 또한 그 의미대로 존재할 수 있 듯, 운명이란 것 또한 온전히 성립되려면 떠도는 것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일 터, 이 말대로라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운명이란 결코 시들거나 사라질 일이 없을 뿐더러, 마치 새로워 보이는 운명들로 대변되는, 샘물처럼 솟아날 희망 또한 그 바램 만큼이나 온 세상을 적셔줄 수 있을 거란 얘기가 된다. 바로 이 지점이 이번 '명'대사가 전해주는 진정한 의미라 할 수 있겠다.

 

 

운명처럼 다가왔던 깃털이, 다시 바람을 타고 새 운명을 찾아 가는 모습이란, 왠지 흘러가는 세월 속 수많은 우연들과도 똑 닮아 있다. 이 장면은 극중 최종 엔딩 씬의 일부컷으로 영화 오프닝에서의 깃털이 '포레스트'의 책 사이에서 흘러 나온 후, 모든 이야기의 여운을 실어 나르듯, 또 다른 운명을 찾아 바람결에 휘날리고 있는 모습이다.(상, 하단)

가슴으로만 살아온 사람은 머리를 전혀 쓸 줄 모른다란 얘기가 있다. 근데, 실상은 머릴 쓸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평소 진실된 마음 하나면 충분했다보니, 머릴 쓸 일이 전혀 없었던 것 아닐지. 쓸 줄 모르는 것과 쓸 필요가 없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이제껏 함께 달려온 '포레스트 검프'를 봐도 쉬이 알 수 있듯이, 운명 따윈 없다며 심히 가벼운 시각들로 잔뜩 버무려진 이 시대에, 온전한 마음의 깊이 안에서 진정한 운명에 다다를 수 있는 지혜가 산들바람처럼만이라도 불어준다면,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는 건 시간 문제가 아닐까.(사진=영화 '포레스트 검프' 중 주요 장면 스틸컷)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동시'란 단어가 함의하는 바 그대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운명 또한,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이 세상 바로 곁, 지금 이 순간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단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은 물론,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 봐 온 수많은 지인들을 비롯하여, 현재 불거진 사태로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을 모든 이들의 맘 속에, 하루 빨리 '극복'이란 운명이 찾아와 주길. 마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다시 날아오른 영화 속 마지막 깃털의 모습처럼, 그리고 '제니'가 남기고 간 - '포레스트'의 분신과도 같은 - 그 위대한 선물처럼.(영화로 확인할 수 있길)

허나 지금 당장 우리 곁에 와 있을지도 모를, 그런 (올 추석과 크리스마스를 뒤세운) '희망' 선물 세트 하나씩을 모두가 발견하게 될 그 날을 위해, 세상이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물음 하나, 내 식대로 답을 달며 끝맺는다.

'스쳐지나야 할 것 빼고, 전부 다 운명 맞습니다.'


(다음, ③ '명'가사  <Αs Time Goes By>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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