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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만 대담하게] 내 생애 '최애(最愛)'하던 노래가 최악의 '표절곡'이라면, 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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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만 대담하게] 내 생애 '최애(最愛)'하던 노래가 최악의 '표절곡'이라면, 당신의 선택은?
  • 양태진 기자
  • 승인 2022.08.13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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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의 시작과 끝을 잇는 주말. 앞뒤, 위아래 잴 거 없이 '대담'한 주제들을 선정해, 현재를 관통하는 역사 속 위대한 현인들의 살아있는 대담을 끌어내 보는 시간. 과연 그들의 결론은 무엇일까?

순간의 착오라 변명하기 좋아하는 '표절'. 매 시대마다 불거지는 비난의 세례에도 또 그저 눈 감아주기만을 바라고만 있다면, 한없이 좋아보이던 그 곡으로부터 우린 어떠한 선택을 감행할 수 있을까.

(시사캐스트, SISACAST= 양태진 기자)

'양심' 따위?를 벗어던진 세상이 존재한다면.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얼마나 우리 가슴을 파고들어 깊은 여운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자고로 음악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영혼이 깃들어 있는 법. 거기다 그 느낌을 구체화한 언어의 유희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노래를 접하다 보면, 우린 그것이 전하는 진한 사람의 향기를 느껴볼 수가 있다.

누군가 만들어낸 음식도 이와 마찬가지. 아름다운 손짓이 오롯이 담아낸 그릇 속 산물들도 어찌보면 인간의 영혼 그대로가 녹아든 것임에 - 일명 '소울 푸드'*도 이점을 강조해 온 것 - 단 한 곡의 노래에 스민 작곡가와 작사가의 향기 또한 그들의 인간적 면모 그대로를 어필해 온 것임에 우린 별다른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소울푸드(Soul Food) : 영혼(Soul)이 음식(Food)과 결합된 채로, 미국 남부 흑인들의 전통 음식을 뜻하는 말에서 출발, 현재는 영혼을 건드림으로 안식까지 얻을 수 있는 음식을 가리킨다. 추억을 간직한 음식 또는 해당 국가를 대표하는 음식을 일컬을 때도 사용되는데, 국립국어원에서는 '위안음식'이란 순화어로서도 명명된 바 있다.

 

 

소울푸드를 먹는 기분이 한 껏 표현된 이미지 컷. 먹는 사람과 그것을 만든 사람의 영혼이 교감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상단) 누군가의 것을 훔치거나 속이는 기만 행위(표절)는 본인의 양심 뿐 아니라, 주변인의 모든 신뢰를 불태운다. 이를 뒤늦게 나마 발견하여 꺼트릴 수 있는 것 또한 올바른 양심으로 무장된 우리들의 값진 용기인 것을. 한 곡의 히트곡보다 단 한 명의 이것 하나가 그 가치로 따져볼 때 오히려 더 클지도 모르겠다.(하단)(사진=픽사베이)

결국, '양심'이란 가치가 손상된 음악엔 그 누구도 집중할 수 없다는 얘기. 그러다 작은 불신에 불씨라도 붙으면, 작가 본인은 스스로 타들어가는 줄도 모른 채, 오직 금전적 이득만을 내세우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각을 훔쳐낸 당사자이면서도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해 온갖 노력에 경주한다는 것. 이에 이미 흠집 나버린 수많은 영혼들은 또 한 번의 상처로, 더 이상은 그 노래를 듣지 않게 되는 것이다.

'표절'을 통해서라도 왜 살아남아야하는지, 그 이유를 결코 알지 못하는 작가들은 그저 애매모호한 기준의 선상에서 또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꽤나 비슷한 듯 들리는데도, 왜 저 곡은 또 언급조차 되지 않는 건지.. 하지만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기준이 사라져갈 때, 자칫 예술적 경지가 한층 더 높아질지도 모른다는 착각은 초반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신기루'적 관점에서 음악을 만들거나 듣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린 결코 사람 속 깊숙히에 자리하고 있는, 어찌보면 살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마주해야 할 그런 영혼과는 아예 평생 가까이 할 생각을 말아야 할테니까 말이다.

 

 

[가상대담 | On Air] 

사회자 : 그럼, 해당 음악가의 팬을 자처할 정도로 자신의 영혼을 건드려온 최애 곡이 '표절'로 의심될 때, 그 팬의 입장이라면 어떠한 자세를 견지해야 할까요. 루소님?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1712년 스위스 제네바 공화국에서 태어나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며, 이성적 문명이 오히려 감성의 퇴보를 불러왔다고 주장하는 등, '계몽주의를 비판한 계몽주의자'로서, 당시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로 평가받았다. 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도 한 그는 낭만주의 소설을 개척하여 당대 엄청난 유명세를 치른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했다. 말년엔 '고백록'을 저술함으로 근대 자서전의 전형을 구축하기도 한 그는 교육학 관련하여선, '에밀'이란 저서(우측 상단)를 필두로 당시의 강압적인 직업 교육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독립성을 길러주는 자연주의적 교육으로 아동교육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하기도 했다. 여러 과정 내에서 방랑의 삶을 이어가던 그가 파리에 정착하는데 그 계기가 바로 음악이었던 것. 1742년, 30살이 된 그는 새로운 악보 표기법을 파리의 과학 아카데미에서 발표하면서, 1751년엔 '백과전서'에 음악 관련 부분을 집필하기에 이르는데, 단막극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 (Le Devin du village)'란 각본 또한 완성해 낸 그는 당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며,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도 자신의 팬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에 국왕을 직접 알현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무대공포증으로 인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는 후문. 그의 평소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도리어 《마을의 점쟁이》는 더욱 유명세를 탐과 동시에 어엿한 음악인으로서 인정받게된 루소는 프랑스 전역에 그 명성을 떨치게 된다. 이외에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들을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주여 복을 비옵나니', '예수님은 누구신가' 등을 들 수 있다. 루소의 초상화(좌측)와 루소의 흉상 모습(우측 하단).

장자크 루소 : 수많은 이들에게 음악이란 언어로 그 영향력을 행사해오기까지, 작곡가들은 아주 오랜 시간 고뇌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장 조세프'로 로마 카톨릭 세례를 받은 이후, 신학 공부를 포기한 채로 '메르트르'로부터 음악공부를 좀 해봐서 아는데요. 1742년엔 새로운 악보 표기법 또한 정리하는 동안에 전, 음악인의 입장에서 그 창작성을 표현하는데에 따른 어려움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 안에 있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가능한 한 타인에게 해를 덜 끼치면서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작은 신뢰를 갖는 것만으로도 음악을 듣는 이들은 그런 어려운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그것을 듣고자 하는 단 한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말했던 '일반 의지'*와는 다소 거리가 먼 얘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음악에 있어 작곡가들은 이 점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대중 개개인의 소중한 의지를 위해서라도 이기심에 물들지 않은 채, 도덕적 양심과 이성을 훈련하여 여전히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도 진정한 자유를 싹틔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표절'이란 그저 타인의 평판 속에서만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내세우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행위란 걸, 팬들도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의지 : 루소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합의로서의 정당성을, 소수의 선택 대신 공동체의 선택에 기반하여 주창하였는데, 이를 그는 일반의지라 불렀다.

 

 

 

베토벤은 바흐, 모짜르트와 함께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이룬 작곡가로서 평가받는다. 그의 존재는 세계 음악사에서 가장 손꼽히는 악성(樂聖)으로 청각장애를 딛고, 당시 독일음악을 굴지의 세계적인 음악으로 승화시킨 인간승리의 대명사로도 통하는데, 선배 작곡가인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확립해 놓은 양식들이 더욱 깊이감 있으면서도 보다 큰 규모로 발전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또 그의 후배를 자청한 슈베르트와 슈만, 바그너, 브람스 등 수많은 음악가들은 모짜르트와 더불어 베토벤으로부터도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베토벤 : 저도 공감합니다. 무엇을 하기 전에 그 보다 먼저 사람이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전 남을 위해 하는 일이 저만의 최대 행복이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어떤 지혜나 철학들보다도 음악은 저한테 훨씬 더 높은 계시를 주었죠. 그럼으로 제가 가진 한계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만이 맛있는 음식을 요리할 수 있습니다."

(Only the pure in heart can make a good soup.)

 

현대의 작곡가 분들께서도 자신이 가진 출중한 능력을 내보이고 싶다면, - 진정으로 - 듣는 사람들의 영혼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음악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끼리도 맘에 상처를 주어서는 안되겠죠. 저 또한 '표절' 자체를 얘기하는 것이긴 하나, '표절'로 의심되는 상황에서는 그저 방관하는 것 또한 자칫, 그 누군가를 의식적으로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알면서도 '표절'을 이행한 것과 다름 없는 이 행위는 어떻게 보면, 옳고 그름의 기준 또한 넘어서는 것일 수 있으니까요.

 

 

BC 4년에서 65년경까지 살다간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는 당시 네로 황제의 스승으로 그 역할을 일임받았다가, 황제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발각되면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좌측)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은 또 하나의 위대한 고대철학자, 세네카의 위풍당당한 동상 모습.(우측)

세네카 : 대중음악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님이 그러하시다니까, 저도 딱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그런 방관을 비롯해 그냥 맘 놓고 '표절'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기통제의 능력이 상실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실, 그러한 잘못된 열정을 통제하는 것보다는 배제하는 편이 훨씬 더 쉬운데도 말입니다. 다시 말해, 잘못된 열정에 휩싸인 후 마음을 다잡는 것보단, 휩싸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욱 쉽다는 얘깁니다.

 

살아가는 동안 계속 사는 방법을 터득하십시오. 가장 강한 세상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Learn how to keep living while you live. Most poweful is he who has himself in his own power.)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 '표절'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런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겠지요. 가장 강력하고도 좋은 사회는 스스로가 통제 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유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팬들은 스스로에게도 냉정한 판단과 시선을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창작자들은 부를 창출하는데 연연해하지 마십시오. 부는 지혜로운 사람의 노예이자, 바보의 주인일 뿐입니다. 그리고 양심에 기댄 창작을 어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렵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감히 시도하지 못해 그저 어려워만 보이는 것일 뿐이니까요.

 

 

 

에릭 호퍼는 떠돌이 노동자의 신분으로도 유명한 미국 사회철학자다.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면서도,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몸을 둔 채, 오로지 독서와 사색만으로 세계적인 사상가의 반열에 올랐다. 1902년, 뉴욕에서 독일계 이주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7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자신의 시력까지 잃은 비운의 인물로 약 8년간 실명 상태로 지내다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한다. 그리고는 다시 시력을 잃을지도 모를 불안감에 독서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이후, 노동자의 삶으로 쓴 1951년 대표작 <The True Believer>를 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그의 인터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1964년부터 1972년까지는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로는 '열정적 정신의 상태(The Passionate State of Mind)', '변화의 시련(The Ordeal of Change)' 등이 있다.

에릭 호퍼 : 인간이기 전에 사람은 사람으로서 추구해야 할 의식과 명분을 갖고 태어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누군가와는 다를 수 밖에 없는 독창적 존재임을 깨닫는 것인데요. 세상에 나오는 순간,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상황에서 대개 서로를 모방하기에 이릅니다. 사람은 자기 본래의 모습 그대로 있기를 거부하는 유일한 창조물이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이 서로를 모방하는 건, 본래의 모습 그대로 있기를 거부하는 유일한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내가 나를 무너뜨려야하는 또 다른 예술적 경지(?)에도 이를 수 있는데요. 그릇된 욕망이야말로 또 다른 누군가의 고통과 괴로움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독창성이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는 시도임을 알면서도, - 그것이 어렵다는 전제로 - 자신을 세상에 맞추려고 하기만하는 모방에 힘을 기울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표절'일 것이고, 그것을 방관하는 것 또한 '표절'의 또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이렇게 싸워서라도 지켜야할 가치가 있음에도 그(팬)들이 싸우려 하지 않는다면, 이것만큼 곤혹스럽고도 불쾌한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백작(Leo Tolstoy)은 1828년에 태어나 1910년 생을 다하기까지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이자 사상가로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의 저명한 작품을 남기며 러시아의 문학과 정치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추후 그의 에세이를 살펴보면, 이 모든 작품들이 오직 귀족들을 위한 사치로운 소설이었다며, 스스로를 저평가하기도 하였다. 이는 당시 엄청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던 부분.)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로도 칭송받는 그는 종교와 인생, 죽음과 육체, 정신 등에 관한 자신만의 놀라운 관점을 작품에 녹여냈는데, 특히 여성 심리에 관한 부분이 놀랄만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가 어린 시절, '숙모'라 불리는 친척 여성과 수많은 여성 형제들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데, 아이러니하게도 부인 '소피아'(우측 맨 하단)와는 많은 갈등을 겪었다고. 예를 들어, 농민이 되길 자처했던 '톨스토이'에 반기를 든 이는 '소피아'였고, 이에 견딜 수 없던 그는 귀족의 입장을 끝까지 놓지 않던 그녀로부터 말년에 이르러 딸과 함께 도망친 후, 어느 시골의 한 기차역에서 허무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톨스토이 : 그저 누군가가 한 것을 내가 한 것으로 둔갑시킴으로 - 그것이 거짓임에도 - 사람들이 그것을 진실로 알 때, 자신 스스로를 능력자라 착각하는 경우는 정말 허다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다가 폭로되고 난 이후에야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그런 세상엔 결코 양심이 들어설 자리는 없는 것이지요. 예술도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든 좋은 일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좋은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빛을 내려고 전전긍긍하기보다는 깨끗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인간의 영혼은 유리그릇과도 같습니다. 인간은 이 그릇을 더럽힐 수도, 더 깨끗이 빛나게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업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지식과 예술 작품을 나누면서 연결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도덕적 의무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Man is connected by living activities, and by sharing knowledge and works of art, and above all, by moral obligation.)

 

물론, '표절'을 감행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를 무조건 책망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영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결코 알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인생의 목적과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 또한 깨닫는 것이 바로 지혜인 만큼, 표절한 곡을 통해 부를 창출할지언정, 작가는 그런 감각적이면서도 물질적인 삶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행복이 비록 모든 인간을 이기주의자로 만드는 원천 중 하나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오직 그런 자유를 누리는 사람만이 진정한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될 것이고, 자신과 타인을 위한 노래가 어떤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 그는 모차르트와 베토벤과 더불어 서양음악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위대한 음악가로 불린다. 이에 베토벤도 그를 가리켜 'Bach(실개천)'가 아니라 'Meer(바다)'라 불려야 한다고 했을 정도. 본명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로 1685년 생인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음악을 창작했다. 그의 집안은 200년에 걸쳐 약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가계였을 뿐만 아니라, 대대로 개신교인 루터교인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바흐의 입장에선 교회음악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았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후엔 고전주의 음악사의 흐름에 밀려 잊혀질뻔 하였으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에 의해 전 유럽은 그야말로 바흐에 열광하게 되는데, 이는 바흐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계기를 마련하였고, 인류 최고의 작곡가 중 한 사람이 곧 바다 위로 떠오르도록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의 초상화와 동상 모음.

바흐 : 사회자님이 처음 제기하신 바 대로, 예술이 영혼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순수한 영혼은 결코 비양심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합니다. 저의 정신적 스승이기도한 '플라톤'이 '음악과 리듬은 영혼의 비밀 장소를 파고들기 마련'이라고 한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결국, 누가 봐도 위대한 예술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 인간이 지닌 모든 호흡이 각기 다른 예술 작품에 오롯이 녹아들어 빛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예술일 테니까요.

 

"내가 연주를 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가에게 들려주기 위함입니다. 아마도 그는 매번 자리에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항상 그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연주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내가 우상화하는 사람 앞에 떳떳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코 내가 이상화한 누군가의 것을 허락없이 가져다 쓸 수는 없는 것이죠. 저보다 더 훌륭한 음악가들이 절 바라볼 때, 전 항상 어느 자리에서나 그 기분으로 연주를 하곤 했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기 위해선 나 스스로를 독창적인 피조물로 떠올릴 줄 알아야 합니다. 창작하는 누구나가 본인이 아주 희귀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리고 그것에 가장 큰 가치가 깃들어 있음을 자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운명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자신 만이 갈 수 있는 길을 당당히 걸어갈 수 있도록, 진정한 팬들이라면 그 길을 환히 비추어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너무 책망만을 일삼기 보단 선한 빛으로, 그들이 갈 길을 재촉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회자 : 그렇군요. 음악이 지닌 힘에 따라 그저 좌지우지 될 수 밖에 없는 팬들이라지만, '바흐'님의 말씀대로라면, 또 다른 막중한 책임감도 따르는 위치가 아닐 수 없는 같습니다. 하지만, 팬들이 나서기도 전에 그 '표절'의 과오를 진정으로 깨닫고, 양심에서 비롯된 작품을 다시금 낼 수만 있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이 밝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처럼, 또 다시 떠오를 수 있을 만한 일이 될 것 같군요.

저 또한 양심이 전부일 수도, 또는 일부 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고민이 되던 문제였지만, 역시 위대한 가치를 제대로 논할 줄 아는 분들의 말씀을 듣다보니, 어느 정도 마음의 방향을 바로 세울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차라리, '표절'을 솔직히 시인하는 순간, 그 의문시 되던 노래의 가치가 되려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만큼 더 내려갈 곳 없는 양심의 문제였기에, 스스로를 바로 인정하는 마지막 모습은 오히려 그 표절로서 의심받던 곡을 작은 빛으로나마 더욱 빛나도록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오늘 모이신 모든 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시사캐스트]
 

※ 총 참여 인원 6명('장자크 루소', '베토벤', '세네카', '에릭 호퍼', '톨스토이', '바흐')의 굵은 글씨체가 그들이 직접 언급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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