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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과 한반도 위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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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과 한반도 위기 상황
  • 윤관 기자
  • 승인 2017.10.02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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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할 수 없었던 112년 전의 불행한 역사

(시사캐스트, SISACAST= 윤관 기자)

을사조약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이다.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미국의 중재로 1905년 9월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일본이 조선의 지배자가 됐다는 사실을 국제사회가 인정받는 사건이다.
 
일본이 세계적인 강국인 러시아 군대에 맞서 승전을 거둔 배경에는 미국과 영국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앞서 1905년 미국과 가쓰라ㆍ태프트 밀약을 체결해 미국으로부터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이어 8월에는 영국과 제2차 영ㆍ일동맹을 체결해 영국으로부터 조선 지배권을 승인받았다.
 
결국 일본은 청ㆍ일전쟁의 승리에 이어 러ㆍ일전쟁마저 승리함으로써 조선의 식민지화를 위한 모든 걸림돌을 제거한 셈이다. 또한 미국과 영국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조선을 접수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급히 서두르지 않았다. 먼저 조선의 보호국화 작업에 착수했다.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는 1905년 11월 특사 자격으로 조선으로 넘어와 일본군을 동원한 상태에서 무력한 고종과 조선 대신을 협박해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다. 당시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5적이 앞장 서 매국노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일본은 을사조약을 통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조선 침략의 첨병 역할을 담당할 통감부를 설치한다, 초대 통감은 당연히 이토 히로부미의 몫이 됐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선의 식민지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물론 고종도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며 을사조약의 무효를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했으나 일본의 방해와 국제사회의 외면으로 오히려 강제 퇴위를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일본은 1907년 정미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해 통감이 조선의 내정 전권을 장악하고, 이른바 일본인을 차관으로 임명하는 차관정치를 실시한다. 이어 군대 해산을 단행했고, 1909년에는 사법권과 경찰권도 뺏아간다.
 
결국 1910년 8월 22일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한국 병합조약을 체결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최근 한반도 전쟁 위기 상황이 19세기말과 20세기 초반의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현재는 일본이 북한으로 바뀌었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대한민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대결에 나섰다. 112년 전 조선의 운명은 일본과 미국, 영국이 결정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여러모로 마음의 무거운 추석 연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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