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항일 의병의 실패와 자유한국당의 현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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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항일 의병의 실패와 자유한국당의 현 주소
  • 윤태현 기자
  • 승인 2019.01.0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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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정권 재탈환이라는 목표를 실종한 듯”

(시사캐스트, SISACAST= 윤태현 기자)

자유한국당이 구태의연한 신분 차별의식에 빠져 항일 의병을 이끌었던 보수 유생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내년 총선 승리는 요원할 따름이다. 사진제공=뉴시스
구한말 일제의 침략에 맞서 항일 의병 운동이 전개됐다. 가장 먼저 일어난 항일 의병은 ‘을미의병’이다.
 
보수유생층은 일제에 의해 국모인 명성 황후가 시해되는 비극에 이어 단발령까지 실시되자 도저히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들은 위정척사사상으로 무장됐다.
 
이들의 시각으로는 일제의 강요로 추진 중인 갑오개혁과 을미사변을 일으킨 일제와 손잡은 개화파는 조선의 안위를 위협하는 적대세력이었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 왕조를 지키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유인석과 이소응, 김복한 등 유생층이 주도하고, 일반 농민과 동학 농민군의 잔여 세력이 힘을 합쳤다. 이들은 전국 각지의 관청을 습격하고 개화파 관리들을 처단 대상으로 삼았고, 일본군도 공격했다.
 
하지만 보수 유생들의 한계는 곧바로 드러났다. 양반은 양반이었다. 구국을 위해 봉기했지만 신분 질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였다. 의병 조직의 결속력은 급속도로 약화됐고, 마침 고종이 딘발령을 취소하면서 해산을 권유하자 곧바로 의병 활동을 멈췄다.
 
10년 후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이번에는 평민 의병장이 출현했다. 신돌석은 강원과 경북을 주무대로 삼아 일본군을 공격해 백성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뜻 있는 유생들도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민종식, 최익현 등이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에 맞섰으나 군사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을사늑약으로 조선을 보호국으로 삼은 일제는 군대해산에 착수했다.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했다. 이른바 정미의병이 봉기했다. 의병을 진압했던 군인들이 의병에 동참한 사실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지난 을미-을사 의병에 비해 전투력이 향상됐다. 이제는 일제에 의해 점령당한 수도 서울을 직접 회복하기로 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13도 창의군이 결성됐다. 하지만 의병장 이인영이 부친상을 이유로 군을 이탈했다. 忠보다 孝가 더 중요한 가치인 보수 유생의 한계가 다시 드러난 순간이었다. 결국 일본군의 선제공격에 13도 창의군은 대패했다.
 
보수 유생층 중심의 항일 의병장들의 한계는 조선의 국권 회복이라는 민족의 가치보다는 신분질서, 孝와 같은 계급 중심적인 가치를 중시했다. 항일 의병은 일본군의 막강한 화력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무너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정권 재탈환이라는 목표를 실종한 듯하다. 탄핵과 대선 패배, 지방선거 패배 등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파 갈등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선민의식에 빠져 제1야당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다.
 
자유한국당이 구태의연한 신분 차별의식에 빠져 항일 의병을 이끌었던 보수 유생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내년 총선 승리는 요원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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