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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라이프] 고시원, 방탈출을 꿈꾸는 ‘혼라이프’... 침묵의 동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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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라이프] 고시원, 방탈출을 꿈꾸는 ‘혼라이프’... 침묵의 동거가 시작됐다
  • 이현이 기자
  • 승인 2019.08.23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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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이현이 기자)

가진씨가 생활하는 고시원의 어두운 복도.
가진씨가 생활하는 고시원의 어두운 복도.

홀로서기 2년차이자, 혼라이프 초년생인 김가진(27)씨는 영등포구의 한 고시원에 머물고 있다. 기존에 머물던 자취방 계약기간과 새로 구한 집의 이사날짜가 맞지 않아, 한 달 가량 고시원에 머물기로 한 것이다.

가진씨는 자신이 지낼 고시원을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고, 직장 근처에 있는 고시원이 눈에 띄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본 고시원은 밝고, 비교적 넓은 공간과 깨끗하게 정리된 느낌이 주를 이뤘다.

처음 고시원 생활을 하는 가진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좋구나’라고 느꼈고, 유선상으로 예약을 마친 뒤 직접 고시원을 방문했다. 아파트 단지 사이 5층 건물중 3개층에 들어선 고시원은 그러나 사진으로 보던 것과 전혀 달랐다.

싱글침대는 혼자 눕기에도 좁아보였다.
싱글침대는 혼자 눕기에도 좁아보였다.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꼭꼭 닫힌 작은 문들이 낯설었다. 안내받은 방에 들어서자 고시원 직원과 가진씨, 두명이 서있기에도 비좁은 공간이다. 싱글 침대와 작은 옷장, 미니 냉장고, TV, 책상 겸 화장대 용도로 쓰이는 짜여진 가구로 꽉 찬 방이다.

이 방은 다른 방에 비해 6만원을 더 줬기 때문에 화장실이 방안에 있다. 그렇지 않은 방에 거주하는 이들은 공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방과 유리막으로 나뉘어진 좁은 화장실에는 변기와 세면대, 샤워시설이 간단히 차려져 있다.

한뼘 정도 사이즈의 창문은 복도를 향해있다.
한뼘 정도 사이즈의 창문은 복도를 향해있다.

유선상으로 들었던 ‘창문’은 손 한 뼘 정도의 크기로 있으나 마나한 느낌이다. 그마저도 밖을 향한 창문이 아닌 복도쪽 창문이기에 창문을 열어둘라치면 복도를 오가는 이들의 소음이 신경 쓰이기 일쑤다.

가진씨는 홀로 방에 들어서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갑갑한 느낌이 밀려왔다. 아마도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시원 생활은 힘들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신발장.
신발장에는 각 방의 호수가 적혀있고, 자신의 해당 호수가 적힌 신발장을 이용하면 된다.

방 외의 생활 또한 안내 받았다. 쓰레기 분리수거와 신발장, 공용주방 사용에 대한 것이다. 쓰레기는 정해진 분리수거 장소에 내놓으면 된다. 공용주방에는 씽크대와 냉장고, 식탁, 전기밥솥, 정수기 등이 있고, 그 외 여러 가지 조리도구가 갖춰진 모양새다.

주방 내부 모습.
주방 내부 모습.
주방 내부 모습.
주방 내부 모습.

이곳은 관리자가 밥솥에 밥을 준비해두며, 김치와 라면이 제공되고 있어 원하는 시간에 자율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반찬은 스스로 준비해야 하며, 뒷정리도 각자의 몫이다.

작은 고시원 방에서 가장 큰 아쉬움은 햇볕이 드는 제대로 된 창문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갇힌 공간이 주는 갑갑함과 공포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잠만 자면 되니까’라는 나름의 위안을 해보지만, 얼마의 시간이 흐르지 않아 ‘이곳에서 자는 기분은 어떨까’하는 막막함이 밀려온 이유는 한낮에도 불을 켜지않으면 앞을 구분하기 힘들정도로 어두웠기 때문이다.

불이 꺼진 방안은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문이 열린 방안을 복도에서 바라본 모습.
불이 꺼진 방안은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문이 열린 방안을 복도에서 바라본 모습.

처음 며칠의 고시원 생활은 딱 첫 느낌 그대로였다. 가진씨에게 이곳은 ‘잠만 자는 공간’이 됐고, 그 외 시간은 고시원 주변을 산책하거나 여러 상점들을 구경하는데 할애했다.

식사 또한 밖에서 해결했다. 밥과 김치, 라면의 혜택은 그동안 누리지 못했다. 함께 사용하는 물건에 대한 ‘관리 소홀’을 생각하니 차라리 밖에서 식사 해결을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좁디좁은 화장실 안에서 여기저기 부딪혀 가며 씻었던 초반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진 동작이 연출됐다. 키가 큰 편인 가진씨에게는 길이가 다소 부족한 침대 또한 한몸을 뉘이기에 큰 불만은 사라졌다. 다만 방 내에서 어떤 활동을 하거나 큰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는 건 다소 제약이 따랐다.

방과 유리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자리한 화장실엔 변기와 세면대 등이 자리했다.
방과 유리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자리한 화장실엔 변기와 세면대 등이 자리했다.

같은 고시원에 머무는 다른 직장인과의 우연한 대면이 있던 날. 그 고시원 동기(?)는 “직장과 집이 멀어 이곳에서 생활한다”며 “이곳에서는 그냥 잠만 잔다”는 말을 들었다. 가진씨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이곳을 ‘잠만 자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퇴근 후 오후 7시에서 8시 가량의 고시원은 하루 중 가장 많이, 사람이 오가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복도를 따라 걷고 있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알지 못한다. 걸음 소리가 멈추고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그 사람에 대한 소리는 그게 끝이다.

이렇게 각자의 생활을 하며 조용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고, 한주가 지나면 가진씨는 이곳을 떠나게 된다.

“앞으론 고시원 생활은 못할 것 같다”고 말하는 가진씨는 “더 나은 혼라이프를 위해 내 삶의 경쟁력을 높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가진씨는 더 나은 싱글라이프를 꿈꾼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가진씨는 더 나은 싱글라이프를 꿈꾼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은 늘어만 가는 1인 가구를 포용하기엔 역부족이다. 새로운 자취방을 향해 떠나갈 가진씨도 고시원에 남아있을 또 다른 동기도, 여유로운 혼라이프를 꿈꾸며 오늘을 보낸다. 

[사진=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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