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8:07 (금)
[n번방 참사-⓵] 메신저 망명처가 범죄로 얼룩진 이유
상태바
[n번방 참사-⓵] 메신저 망명처가 범죄로 얼룩진 이유
  • 최기훈 기자
  • 승인 2020.04.07 16: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사진 = 픽사베이]
[사진 = 픽사베이]

대한민국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텔레그램 성 착취물 공유 대화방의 실체가 최근 드러났기 때문이죠. 공유 대화방의 일종인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의 신상은 성범죄 피의자 중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핵심 범죄자가 검거됐고, 그의 얼굴까지 전국에 드러났지만 국민의 분노는 여전히 들끓고 있죠. ‘박사방’은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숱하게 많은 공범자의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우리는 이런 대화방들을 ‘n번방’으로 통칭하고 있습니다. 이런 끔찍한 범죄가 어떻게 가능했고,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지 고민이 시급합니다. ‘n번방 참사’ 시리즈 첫 번째 편, 범죄의 플랫폼 텔레그램을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 주]


[사진 = 텔레그램]

코로나19로 인해 나라가 흉흉한 시점, ‘n번방’이라고 불리는 끔찍한 디지털 성범죄가 터졌습니다. 국민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이 유인·협박해 음란 영상을 촬영한 피해 여성 74명이나 됐고, 이중엔 미성년자가 16명이나 포함됐습니다. 이 방의 이용자가 26만명에 달한다는 소식은 더 충격이었습니다. 이례적으로 대통령까지 나서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고,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국민청원은 역대 최대 동의자 수(595만명)를 기록했죠.

사실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터진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가까운 사례로는 ‘2018년 웹하드 카르텔’이 있었죠. 하지만 문제가 불거진 그 순간이 지나면 잊혀졌습니다.그렇게 유사 범죄가 반복되다가 ‘n번방 참사’에 이르게 됐죠. 특히 n번방은 수법이 악질이었습니다. 단순히 운영자만 범죄를 주도한 게 아니라, 이용자도 이를 외부로 유포하거나 ‘성 착취’ 행위에 가담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디지털 성범죄’이지만, 플랫폼이 변하면서 수법이 더 나빠졌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플랫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메신저, ‘텔레그램’ 말입니다.
 
러시아인 파벨 두로프와 니콜라이 두로프 형제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검열을 피해 2013년 만들어진 텔레그램은 우리에게 낯선 SNS가 아닙니다. 특히 2014년 이 앱은 한국에서 인기 무료 앱 다운로드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텔레그램 국가별 다운로드 순위 1위에는 한국이 오르기도 했죠.

 

[사진 = 픽사베이]
[사진 = 픽사베이]

텔레그램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누리꾼들이 대거 ‘메신저 망명’을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검찰은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발족시키기로 하고, ‘사이버상 허위 사실 유포 대응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 이용자가 많은 서비스는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확립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전달하는 경우도 엄벌하겠다는 겁니다.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이틀 뒤에 이뤄진 전격 발표였습니다.
 
텔레그램의 특징은 강력한 보안성입니다. 전체 대화를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는 기능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개별 대화창마다 ‘비밀 대화’ 옵션을 걸어둘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대화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마트폰뿐 아니라 서버에서도 자동으로 삭제됩니다. 이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까지 퍼지며 인기를 끌게 됐죠.
 
텔레그램의 이런 특징은 최근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호기심에 의해 이 방에 들어왔는데 막상 보니 적절하지 않아서 활동을 그만둔 사람에 대해선 법적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이 뭇매를 맞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n번방이 텔레그램의 보안성에 기대 비밀스럽게 운영됐기 때문이죠.

 

[자료= 청와대 국민청원]
[자료= 청와대 국민청원]

n번방의 회원 자격은 ‘단순 호기심’이나 ‘실수’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착취 영상이나 사진 등을 제공해 다단계 인증 절차를 거치고, 최소 수십만원어치의 암호화폐로 결제해야만 했습니다. 텔레그램은 현재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n번방 뿐만 아니라 각종 불법 마약의 유통 창구로도 쓰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역시도 강력한 보안성 때문에 생긴 부작용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현재 n번방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내 수사기관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는데요. 사건 관련 가담자를 추적해야 하는데, 텔레그램 본사가 협조를 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텔레그램은 설립 후 영국·싱가포르·아랍에미리트 등 소재지를 수시로 옮겨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서버와 본사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죠. 사건 가담자를 놓치면 ‘제2의 n번방’이 언제 또 활개를 칠지 모를 일입니다. 강력한 보안성 때문에 ‘메신저 망명처’로 각광을 받다가 범죄의 온상이 된 텔레그램, 우리는 이를 넋 놓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