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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낙선·낙천 정치거물들 “나 아직 죽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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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낙선·낙천 정치거물들 “나 아직 죽지 않았소”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8.05.18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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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 당심은 내편 당권 1순위로 급부상
정몽준, 여론은 1위불구 MB마음 얻을까?
이재오·이방호, 절치부심 속 재기 본격화

지난 4월 18대 총선이 끝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18대 총선의 최대 관심사는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였다. 통합민주당은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며 ‘견제론’을 들고 나왔고 박재승 전 공천심사위원장이 공천혁명의 칼날을 들었다.

한나라당도 공천 물갈이 없이는 과반 의석 확보가 어렵다는 위기의식 속에 대대적인 공천개혁에 착수했고 중진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다. 대표적인 인사를 꼽으라면 단연 박희태 의원과 김덕룡 의원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똑같이 5선으로 6선 고지를 바라봤지만 낙천했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불출마 선언과 함께 한나라당 총선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당의 공천 개혁의지를 받아들였으며 총선 후 모종의 역할을 맡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었다.

의외의 낙천 인사들과 더불어 ‘낙선’인사들도 유권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이재오 의원과 이방호 의원의 낙선은 단순한 화젯거리를 넘어 여권의 권력구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됐다.

한나라당 낙천, 낙선 인사 ‘4인방’은 당초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난 것 아니냐’,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대세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국회 입성에는 실패했지만 당과 정부, 청와대에서 이들의 필요를 느끼고 있다.

가장 부각되고 있는 인물은 박희태 의원이다. 박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손학규 대표도 원외인사”라며 오는 7월 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 대표 경선에 나갈 뜻을 내비쳤다.
 
당 내외의 분위기도 박 의원의 당 대표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하다. 박 의원 자신의 의지에 박 의원을 필요로 하는 정국 지형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은 지난 7일 한 라디오에 출연, “지금까지 당의 갈등과 불협화음을 수습하고 화합된 당을 만드는 것이 차기 당 대표의 할 일이다. 이번에는 관리형이 적당한 적임의 시기”라며 차기 당대표의 역할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당 대표 경선에는 일찍이 정몽준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져 앞서가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정 최고위원이 박 의원을 추격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박 의원은 각 계파를 두루 아우르는 포용력을 지니고 있는데다 정치적 경륜까지 더해져 전형적인 관리형 대표에 적합한 인물로 손꼽힌다.

이에 비해 정 최고위원은 화려한 출신 배경과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차기 대권의 포석으로 당 대표를 겨냥하고 있는 ‘차기형’으로 불린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내각과 청와대 수석 비서관 인선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인사파동이 사그러들지 않는 시국에서는 차기형보다는 관리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중론으로 당 내외에 자리 잡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일반인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한나라당 차기 당 대표 선호도’ 조사 결과, 30.3%를 차지해 홍준표(10.8%), 박희태 의원(8.4%)을 큰 차이로 앞섰다.
 
이것은 박근혜 전 대표를 배제한 수치이기는 하지만, 정 최고위원은 한나라당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경우에도 46.3%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통계수치는 단순한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당 대표 경선이 대의원 표 70%, 여론조사 30%로 `당심’에 좌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론조사는 당심을 좌우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를 큰 차이로 앞서던 이명박 대통령이 실제 투표에서는 박빙으로 이긴 사례가 이 점을 잘 말해 준다.

정 최고위원의 경우 한나라당에 입당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당내 입지가 약하다. 따라서 실제 투표에서는 당심에서 앞서는 후보에게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정 최고위원은 당 대표 도전을 공식 선언한 이후 동료 의원들과의 접촉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한나라당 대표 경선은 박희태 vs 정몽준 양자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대표 물망에 올랐던 김형오 의원과 안상수 원내대표가 국회의장 쪽으로 마음을 굳힘에 따라 양자 대결 말고는 다른 가능성은 제기되지 않는 형국이다.

박 의원과 정 최고위원은 인간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양자의 대표 경선이 현실화될 경우 흥행 요소로 어떻게 작용할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 최고위원이 박 의원의 입당 권유와 설득으로 한나라당에 입당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고 박 의원은 사석에서 “정 의원의 정치 고문을 할까”라는 말을 할 정도로 막역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친이계에서는 `박희태 대세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하고 있다. 원외 대표가 원내 153석의 거대 여당을 진두지휘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여기에 박 의원이 70대 고령인데가 과거 ‘민정계’출신으로 새로운 정치를 추구하는 한나라당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다는 지적도 거센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의장 출마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김형오 의원의 당 대표 기용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형오 의원은 당 대표 출마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고 정 최고위원이 기대했던 친이계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박희태 대표 대세론’이 계속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과 함께 공천에서 탈락해 18대 총선에 불출마했던 5선의 김덕룡 의원도 조만간 모종의 역으로 중용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수석급 인사들이 전반적으로 정치 현안에 대한 인식과 대처능력이 부족한데다 한나라당이 지향하는 가치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반복하면서 청와대와 당을 연결하는 정무장관이나 특임장관 신설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지난 10일 이 대통령과 회동한 자리에서 “전반적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며 대통령이 민심을 사실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가교역 신설이 필요함을 건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번 쇠고기 파동에서 각 부처 사이의 원활하지 못한 업무협조로 국민의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각 부처 간 정책조정 기능을 할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누가 담당할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당직자는 11일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현재 당정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그 역할을 하는 정무수석이 있긴 하지만 너무 기능 중심으로만 흐르면서 정무 기능은 약화된 측면이 있다”면서 “정치적 무게감도 있고 연륜도 있어 정무적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정무장관이나 특임장관을 두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쇠고기 파동이 확산되면서 청와대의 기능중심 시스템의 허점이 노출됐고 청와대 관련 수석 및 비서관들도 “정치, 사회적으로 발전하는 것에 대해 준비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고 죄송스럽다. 정치사회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자성한 데서 알수 있듯, 단순한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전체적으로 정치, 사회 상황 전반을 체크하고 조정할 수 있는 직책이 청와대 내에 필요하다는 인식이 청와대 내에도 번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김덕룡 의원이 신설이 논의되고 있는 정무장관이나 특임장관 적임자로 청와대 안팎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의원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8대 총선 최대 낙선자라고 할 수 있는 이재오 의원과 이방호 의원도 총선 직후의 관측과 달리 정치 재개를 준비하고 있어 향후 이들의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총선 낙선후 지리산에서 20일 가까이 은둔생활을 해온 이재오 의원은 지난 11일 “패장은 군말을 하지 않듯이 장수는 전장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을 뜻을 밝혔다.

이 의원은 지리산에서 내려온 다음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편지글을 통해 “산은 내게 흔들리지 말라고 했다. 그냥 그대로 이재오로 살라고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의 꿈은 오직 하나,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각오를 덧붙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의 최고 실세로 통했던 이 의원은 지리산에서 체험한 변화무쌍한 기후에 비유하며 “정상은 언제나 오래 머물 수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의 낙선이 끝이 아니라 변화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임기 초반부터 위기를 겪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 이 의원이 자신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경남 사천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낙선하며 정치 생명에 위기를 맡고 있는 이방호 의원도 이번주 중 서울 방배동에 개인사무실을 열 예정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13일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연락할 곳도 필요해 사무실을 하나 구한 것”이라도 말하며 사무실 개소의 의미를 축소했다.

이 의원은 이달 들어 지역구(경남 사천)의 여러 행사자리에 얼굴을 드러내면서 지역구를 뒤늦게 돌보고 있다.

그는 “지역구 사람들을 만나보니 (총선 결과에 대해) 후회를 많이 한다. 지역에도 잘 안 보이고 해서 서운한 마음에 그렇게 투표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고, 결과적으로 지역 발전을 위해 아쉽게 됐다는 분위기가 많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18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했거나 선거에서 낙선한 박희태, 김덕룡, 이재오, 이방호 4인의 향후 역할과 거취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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