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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본사 갓바위 연화대종, 전통 주종방식 제작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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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본사 갓바위 연화대종, 전통 주종방식 제작 성공
  • 민소진 기자
  • 승인 2013.07.01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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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 부처님의 자비를 갓바위 약사여래 연화대종에 담았습니다.” 옛 조상이 사용한 방식 그대로의 범종이 근대 이후 최초로 선본사 갓바위에서 제작돼 화제다. 대한불교 조계종 선본사 주지 덕문 스님은 5월 28일 “한국 제일의 기도도량인 저희 선본사 갓바위에서 조상들이 사용했던 밀납과 자연재료를 이용한 연화대종을 만들었다”며 “만드는 과정은 고단했지만, 마침내 한국 고유의 범종을 되살려냈다”고 선언했다.

덕문 스님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은 탁월한 기법을 이용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범종을 만들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만의 전통은 상실됐고, 해방 이후로 단 한 구의 종도 전통 주종방식으로 제작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선본사, 연화종으로 전통 주종방식 '부활'

선본사는 옛 전통을 부활시켜 새 시대를 창조한다는 데 뜻을 두고 갓바위 약사여래 연화대종(연화종)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잃어버린 조상의 우수한 방법을 복원해내는 작업에는 전병식 종종사 대표와 한서대 도학회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일본식 주종기법과 화공약품 및 서양기술(세라믹)의 사용을 과감히 버렸다. 대신 밀납과 자연재료를 이용한 주종기법을 현대에 들어 처음으로 시도했다.

물론 이번에 제작된 연화종이 우리네 전통 주종방식을 완전히 구현해 낸 결과물인가 하면, 그건 아니라고 스님은 겸손히 평가했다. 다만 잊힌 기술을 살리기 위해 십 수 년의 연구를 거듭한 점, 이후 성심을 다해 연화종 제작에 힘쓴 점, 그 뒤 미숙하게나마 근사치에 가깝게 성공시킨 업적은 높이 인정받아야 마땅하다고 관측했다.

무엇보다 부처님의 자비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스님은 말한다. “연화종을 통해 비록 미숙하나마 우리 범종 주조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여러 실패의 위험요소가 있었지만, 이를 무난히 극복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부처님의 큰 가피(加被)가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덕분에 사바세계 부처님의 자비를 현현시키는 아름다운 법음을 세세토록 울릴 수가 있게 된 겁니다.”

연꽃과 금시조로 새로운 양식 창조

특히 연화종은 옛 제조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양식을 개발·접목했다는 점에서 불교문화 창달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덕문 스님은 “그간 한국의 범종은 성덕대왕신종의 모양을 그대로 모방하고 이를 답습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선본사는 이 점을 극복하고자 금시조와 연꽃을 주제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종의 양식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범종을 하나의 연꽃송이로 표현한 연화종. 덕문 스님에 의하면, 이제껏 연화를 이용한 종은 작은 소요령(금강령)정도에 머물렀을 뿐, 정식 종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경우는 없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연화종을 보면, 종 전체를 한 떨기 연꽃송이로 감싼 느낌이다. “연꽃잎의 사이에는 화불이 새겨져 있어요. 이는 불법이 있는 곳곳에 화불이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이치를 표현한 겁니다. 또한 최상부의 연꽃잎 사이에는 채운(彩雲)을 새겨 이상세계를 상징하고 있지요.”

꽃잎 안에는 한국 범종의 특징 중 하나인 비천이 새겨져 있다. 하늘을 날거나 구름위에 앉아있는 여자 선인으로 음악을 연주하거나 공양자의 의미를 지닌다. 꽃잎 밑에는 갓바위약사여래의 지물인 ‘약함’을 담고 있다. 그 주변은 연기가 감돌고 있는데, 이는 연화사상을 이뤄내기 위함이다.

종의 맨 꼭대기에는 이마에 약사여래, 즉 부처님을 모시고 앉은 금시조가 늠름한 기백을 자랑하고 있다. 가루다라고도 불리는 이 새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로 용을 잡아먹고 불교를 수호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종두에 올라 타 세상 아래를 관장하는 금시조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용을 잡아먹을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금시조종과 같은 상하 2중의 테두리가 종의 하대를 이루고 있다. 듣기로는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가 굳이 필요 없어 이를 새기는 대신, 윤회(연화화생)를 통한 깨달음을 강조하고자 타종의 위치를 하대의 윗대를 치게끔 설계했다고 전해진다.

 

덕문 스님 "깨달음 얻고 연꽃으로 승화하길"
 
연화종은 불교의 색채가 한층 강화된 범종이다. 덕문 스님은 이를 두고 온전한 부처님의 세계라고 표현했다. “과거의 종은 당시 시대 특성상 왕의 존재를 드러내는 성격을 보이고는 했지요. 하지만 이번 종에서는 종의 철학과 의미를 온전히 부처님이 중심이 되도록 체계화시킨 셈이지요.”

스님은 지옥까지 울리는 연화종 소리를 듣고 중생이 깨달음의 길목에 들어서기를 소망하고 있다. 연화종의 깊은 울림이 중생의 마음을 깨우는 열쇠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연화종 안에는 청룡의 우렁찬 소리, 가루다의 용감한 소리, 아름다운 천상의 소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화엄을 담은 아름다운 형상과 향기로운 소리를 품은 범종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고 중생의 번뇌를 치유할 겁니다. 갓바위를 찾은 중생들이 범종 소리를 듣고서 자신을 한 떨기 연꽃으로 승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희열을 느끼기를 기대합니다.”

이는 곧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고, 화엄의 세계로 인도되는 일이다. 그간의 죄업을 참회하고 번뇌를 극복해야 비로소 진흙 한 가운데에서 피어난 연꽃이 될 수 있는 법이라고 스님은 거듭 역설했다.

 

소원 성취 위해 저마다 갓바위 부처 찾아 

연화종에 신성을 더해 준 갓바위 약사여래는 경북 영산으로 유명한 팔공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보물 제431호(관봉 석조약사여래좌상)로 군위삼존불과 함께 팔공산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참배객들 사이에서는 머리에 갓을 쓴 인자한 돌부처님의 모습이라 하여, 갓바위 부처님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중생의 질병과 재앙을 구원해준다는 약사여래로서 정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얘기가 천년을 넘게 이어오기 때문인지 해마다 이곳은 지성을 드리러오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만큼 전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소원 성취의 장소로 유명하다는 얘기다.

덕문 스님은 “소원을 빌기 위해 정성껏 기도드리는 이들, 세속의 찌든 심신을 달래고자 하는 분들 모두가 갓바위 부처님을 찾아 온다”며 “너그러운 부처님의 위용에 마음을 위탁하고 묵언을 수행하다 보면, 살그머니 머금은 부처님 미소에 저절로 기쁨을 안는 듯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가파른 산세를 지나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참배객들로서는 다소의 불편함이 따르기도 한다. 이에 스님은 접근의 편이성을 높이고자 경산시 와촌면 부근의 공영주차장부터 갓바위 등산로 입구까지 전기 모노레일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보로 승격될 가능성 높아, 학술 연구 '활발'

얼마 전 선본사는 불교문화재단(소장 각림스님)과 함께 갓바위 부처님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발굴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자료들은 1872년 제작된 <하양현지도>라는 제목의 고지도, 그리고 1821년 범해 스님이 작성한  <선본사사적기>에 대한 사진이다. 덕문 스님은 선본사 성보문화재에 대해 정밀 조사를 하던 중 이 자료들이 발견됐다며 이를 통해 갓바위 부처님이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성됐다는 점, 당시에도 영험 있는 부처님으로 기록됐다는 점, 조선 후기 때도 갓바위 부처님으로 불렸다는 점 등을 추정했다고 설명했다.

근래 갓바위 부처님의 갓 위에서 꽃문양이 발견된 것도 국보로 승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덕문 스님은 앞으로 다양한 학술조사와 세미나를 통해 선본사 갓바위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를 확인하고 올 하반기쯤 국보 신청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선본사는 4월 2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선본사 갓바위 부처님’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덕문 스님의 기념사로 시작한 이날 대회는 팔공산 선본사와 갓바위 부처님, 선본사와 불교문화재의 보존, 불교문화재 조사와 연구의 방향성 등이 논의 됐다.

 

"부처님의 자비와 같이 복된 마음 짓기를"

선본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직영 사찰로 갓바위 부처님이 내려다보는 팔공산의 완만한 지대에 위치해 있다. 천년을 넘게 사바세계의 중생을 지켜온 갓바위 부처님을 모시는 절로 유명하며, 해마다 이웃 사랑 실천에 앞장선 까닭에 자비와 나눔의 절로 불리기도 한다.

매년 1천만 원을 ‘사랑의 열매’에 기부하는 가운데 지역아동센터 및 저소득층 지원, 설맞이 사랑의 쌀 전달 등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또 올 초에는 계사년 새해를 맞아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이대공)에 1천만 원을 기부하는 등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사시사철 나눔 실천에 앞장서는 덕문 스님은 “어려운 때일수록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자비의 마음을 내어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복된 마음을 일으켰을 때 스스로 행복해짐은 물론 하시는 모든 일 또한 원만한 성취를 이룰 것”이라고 자신했다.

끝으로 덕문 스님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되새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제 큰스님의 말씀인데, 직역을 하면, ‘있는 곳에 따라서 주인이 되라. 그러면 서있는 곳 모두가 참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가 처한 곳에서 주체성을 갖고 전심전력을 다하면 어디서나 참된 것이지 헛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스스로 복을 짓는 주인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한편 아름다운 소리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연화종은 팔공산 갓바위 약사여래 근처의 범종각 안에 설치될 예정이다. 선본사 관계자 말로는 현재 신축단계에 있으며, 오는 하반기 준공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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