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계약 ‘계약학과’를 아시나요?
상태바
현대판 노예계약 ‘계약학과’를 아시나요?
  • 이현이 기자
  • 승인 2019.01.10 15: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이현이 기자)

-‘계약학과=노예계약’ 오명 얻은 까닭은?
-‘산학협력의 결실’로 포장... 실상은?
-다쳐도 병원 못 가, 치료비는 ‘알아서’
-52시간 근로시간은 ‘남의 집’ 얘기

각 대학의 계약학과 설치가 늘어나고 있지만, 근로자(학생)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어 제도 보완 및 감찰이 필요하다.

낯선 이름, ‘계약학과’란?

계약학과는 산업교육기관(전문대, 산업대, 4년제포함)이 국가, 지방단체, 기업 등의 요청에 따라 계약을 맺고 설립하는 특정 분야 학과를 말한다. ‘기업체에는 맞춤형 인력을, 일자리를 찾는 사람에게는 취업과 교육의 기회를 한꺼번에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다. 

계약학과는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 제8조를 근거로 2003년부터 설치가 이뤄졌으며, 산업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 관계부처는 ‘산학협력의 결실’이라고 자평을 하기도 한다.

계약학과의 형태는 두 가지로 나뉜다. 특정 기업체 직원의 재교육이나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재교육형’과 채용을 조건으로 특별한 교육 과정의 운영을 요구하는 ‘고용보장형’으로, 등록금 절반을 해당 기업체가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계약학과는 정해진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회사의 폐업이나 정리해고로 퇴사할 경우 6개월 이내에 동종 업계에 취업하면 학생 신분이 유지되지만, 자신의 의사에 따라 퇴사할 경우에는 곧바로 학생 신분을 잃게 된다.

좋은 취지를 가진 만큼 대학들은 계약학과를 늘려가고 있고, 취업과 공부를 동시에 만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늘고 있다.

그러나 ‘기업 맞춤형 인재 양성’을 모토로 만들어진 계약학과가 ‘노예계약’이란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 계약학과에 대해 산업체, 교육기관, 근로자(학생)가 골고루 만족하고 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계약학과인 미용학과에 재학중인 A씨가 근무지인 경기도 모 미용실에서 커트를 하고 있다.

“계약학과는 나를 노예로 만들었다”

A씨는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S대학 계약학과인 미용학과에 들어갔다. A씨는 이 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학교와 계약을 맺고 있는 미용실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근로 계약서는 근로자(학생) 당사자와 미용실 간에 체결했다. 주 5일 출근을 하고, 학점이수를 위해 주 1회는 S대학에 가서 학점이수를 위한 강의를 들어야 한다. 강의는 아침 9시부터 보통 저녁 8시까지 이어진다. A씨의 휴일은 주 1회인 것이다.

그러나 3개월의 인턴기간이 지나고 근무 조건이 달라졌다. 근무는 격주 5일 근무가 됐고, 근무 시간도 하루 10시간을 넘어섰다. 국경일이나 명절에도 근무를 해야 했고, 휴가도 지급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애초에 작성했던 근로 계약 내용을 한참 벗어났다.

그뿐 아니다. 이후 날선 가위에 크게 손가락 부상을 당한 A씨에게 미용실은 병원을 방문해 치료 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병원비도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A씨는 항의할 수 없었다. A씨가 근무중인 미용실에서는 ‘하기 싫으면 관둬’라는 식으로 배짱을 부렸지만, 이곳에서 그만두면 대학에서 자동으로 ‘재적 처리’가 되기 때문이다.

A씨와 같이 계약학과인 미용학과에 재학했던 B씨와 C씨는 부조리한 계약 조건으로 이미 자리를 뜬 상태다. 이들과 같은 학생들이 무수하다고 A씨는 귀띔했다.

A씨는 “계약학과가 학생들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지고 있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교 계약학과인 조경예술학과에 재학중인 D씨는 “기업체가 학생 신분 유지를 위한 ‘의무근로기간’을 악용해 학생들을 노예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A씨와 D씨처럼 학생이자 근로자인 이들은 기업체의 횡포에도 퇴사를 고민하기란 쉽지 않다. 퇴사할 경우 곧바로 학생 신분을 잃기 때문이다.

계약학과 학생들은 주 1회 오전 9시부터 저녁8시까지 학점 이수를 위해 수업을 받는다.

산업체와 대학만 배부른 계약학과

2009년부터 계약학과 완전 자율화가 이뤄져 전임교원, 강의실, 교육용지 등을 확보하지 않아도 대학에서 계약학과를 설치할 수 있게 되자 계약학과 수는 급증하게 됐다.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마련하지 않아도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에는 계약학과 부정입학과 근로자(학생)들을 상대로 한 기업들의 갑질이 보도된 바도 있다.

완전 자율화 이후 급증한 계약학과로 인해 대학에서는 학생 유치에 적극 나섰고, 학위 장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정원이 없는 계약학과의 특성을 이용해 부정입학을 하는 경우까지 발생한 것이다.

한 산업체는 등록금 일부를 납부해준다는 이유로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지불하기도 했다. 노동착취는 최저임금은 물론 근로시간도 지켜지지 않고 이뤄졌다.

일부 산업체의 경우 계약학과의 ‘자격연계형 일학습병행제’를 신청할 시 고용부의 금전적인 지원을 받기도 한다. 저렴한 임금으로 근로자를 취할 수 있고 정부의 지원까지 받게 되니, 산업체에서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대학도 다니고, 일찍 기술도 배울 수 있다는 판단에 계약학과를 선택했다”는 한 근로자(학생)는 “기업은 제도를 악용해 나를 노예로 만들었고, 학교는 내게 아무것도 해준게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나는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대접받는 근로자도 아닌 존재같다”며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계약학과의 제도개선이 절실한 때이다.

대학과 산업체가 잇속을 챙기는 동안 근로자(학생)들은 ‘꿈 많은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노예계약에 휘둘리고 있는 청년들을 방관할 뿐, 제도개선은 뒷전이다.

진정한 ‘산학협력의 결실’을 말하고 싶다면, 실태조사와 제도보완, 꾸준한 관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제 갓 스무살이 된 ‘꿈 많은 노예’를 더 이상 만들어내선 안 된다.

[사진=시사캐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