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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터뷰]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 하죠” 피 뽑아 남 주는 헌혈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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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터뷰]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 하죠” 피 뽑아 남 주는 헌혈맨 이야기
  • 박상은 기자
  • 승인 2019.08.21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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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1때 처음 시작한 헌혈이 어느덧 151회
- 헌혈은 내가 먼저 건강해야 할 수 있어
-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한 보험이라 생각

(시사캐스트, SISACAST= 박상은 기자)

◆ '혼터뷰'는 우리 주변에 혼자 사는/하는/버는 사람들의 다양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기사입니다.

헌혈은 수혈이 필요한 사람에게 피를 뽑아주는 행위다. 혈액은 현재까지 인공적으로 만들 수도, 대체할 수도 없기 때문에 피가 부족한 이에게 헌혈은 생명줄과도 같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은 혈액의 상업적 유통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그것은 생명은 사고 팔 수 없다는 인류 공통의 윤리 때문이다. 따라서 헌혈은 누군가의 자유의사에 따라 대가 없이 이루어진다. 오늘은 20여 년간 헌혈을 실천하고 있는 이두규 씨(남·36)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헌혈을 시작한 계기와 현재까지의 헌혈 횟수는?

처음 헌혈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17세 때였다. 헌혈 가능 나이가 만 16세부터 69세인데, 가능한 나이부터 바로 시작한 셈이다. 등·하굣길에 '헌혈의 집'을 자주 지나다니면서 '주민등록증 나오면 헌혈 한 번 해봐야지'라는 호기심에서부터 시작한 것 같다.

당시 헌혈의 상징은 흰 우유와 소보로빵이었다. 그런데 처음 헌혈한 날에 내가 받은 것은 흰 우유와 계란과자였다. 아주 어렸을 때 계란을 먹다가 기도가 막혀 큰일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계란은 냄새도 못 맡았었는데, 소보로빵을 기대했던 나에게 그때 받았던 계란과자는 배신과 상처로 남아있다(웃음). 계란과자로 기억하는 첫 번째 헌혈부터 지금까지 총 151회 헌혈을 했다.

이두규 씨가 2001년 처음 헌혈을 했던 시기에 받은 헌혈증서. 초반에 받은 헌혈증서 4장 이외에는 모두 기부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헌혈자 정보를 직접 손으로 써서 줬다. 현재는 프린트 된다고 한다.
이두규 씨가 2001년 처음 헌혈을 했던 시기에 받은 헌혈증서. 초반에 받은 헌혈증서 4장 이외에는 모두 기부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헌혈자 정보를 직접 손으로 써서 줬다. 현재는 컴퓨터로 프린트 되어서 나온다.

[헌혈지식] 헌혈증서
헌혈자가 헌혈을 한 번 할 때마다 1장의 헌혈증서를 지급받는다. 의료기관에서 수혈을 받은 환자가 진료비 계산시 헌혈증서를 제출하면 수혈비용 중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 한도 내에서 진료비를 공제받을 수 있다. 이때 무상으로 수혈 받을 수 있는 혈액량은 헌혈 1회당 혈액제제 1단위다.

 

- 헌혈을 꾸준히 하는 이유가 있다면?

고등학교 때 헌혈을 시작하고 나서 몇 년 안 됐을 때 어머니가 악성빈혈 진단을 받으셨다. 수혈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 ‘만약을 대비해 내가 헌혈을 해놔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주기적으로 헌혈을 했다.

헌혈의 집에서는 음료와 간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좋았다(웃음). 그리고 헌혈을 할 때 1시간 30분 이상 소요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헌혈의 집에서 노트북을 빌려주기도 한다. 스마트폰이 아직 안 나왔을 때에는 USB에 영화를 담아가서 보기도 했다. 

헌혈을 하면 사은품을 받는다. 화장품, 여행용품, 햄버거 교환권, 문화상품권, 영화표 등 정말 다양한 사은품을 받아봤다. 그중에서도 영화표가 가장 실용적이다. 당시 20대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헌혈해서 영화도 많이 봤다(웃음).

그리고 헌혈혈액 검사결과서를 받을 수 있다. 안전한 혈액만 수혈돼야 하기 때문에 헌혈자의 혈액을 검사하는데, 그 검사결과를 통해 나의 건강까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헌혈에 매력을 느꼈고 후에 어머니가 쾌차를 하시고나서도 헌혈을 꾸준히 하게 됐다.

 

- 헌혈을 많이 하면 상장 등을 받는지?

헌혈 30회를 하면 헌혈유공장 ‘은장’을 받고, 50회를 하면 헌혈유공장 ‘금장’을 받는다. 100회를 하면 헌혈유공장 ‘명예장’을 받고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그 다음에는 ‘명예대장(200회)’, ‘최고명예대장(300회)’을 받는다. 내가 100회 헌혈했던 때가 2010년이었는데 ‘명예장’부터는 2015년 이후에 신설됐기 때문에 명예장은 못 받았다.

이두규 씨가 헌혈 50회를 하고 받은 헌혈유공장 ‘금장’
이두규 씨가 헌혈 50회를 하고 받은 헌혈유공장 ‘금장’

[헌혈지식] 헌혈 종류
1) 전혈헌혈 : 혈액의 모든 성분(적혈구, 백혈구, 혈장, 혈소판)을 채혈하는 것. 약 10분~15분 소요. 휴식기 2개월 필요. 연 5회까지.
2) 혈소판성분헌혈 : 성분채혈기를 이용하여 혈소판만을 채혈하고, 나머지 성분은 헌혈자에게 되돌려주는 헌혈. 약 1시간~1시간30분. 휴식기 2주 필요.
3) 혈장성분헌혈 : 성분채혈기를 이용하여 혈장만을 채혈하고, 나머지 성분은 헌혈자에게 되돌려 주는 헌혈. 약 30~40분 소요. 휴식기 2주 필요.
4) 혈소판혈장성분헌혈 : 성분채혈기를 이용하여 혈소판과 혈장 성분을 채혈하고, 나머지 성분은 헌혈자에게 되돌려 주는 헌혈. 약1시간~1시간30분. 휴식기 2주 필요.
※ 성분헌혈(혈장, 혈소판, 혈소판혈장)이 연 24회인 경우, 혈소판성분헌혈, 혈소판혈장성분헌혈은 불가능 함.

 

- 헌혈증서 또는 헌혈유공장을 팔거나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얘기를 들으면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좋은 취지로 한 헌혈일텐데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면 그 가치의 빛이 바래는 것 아닌가? 그런 일은 근절돼야 한다고 본다.

- 헌혈을 많이 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헌혈 주사바늘이 일반 주사바늘보다 조금 더 두꺼운 편인데 팔 찌르는 곳에 반복해서 찌르다보니, 주사자국이 두드러지거나 흉터가 생기기도 한다. 여름에 반팔을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때가 있다. 20대 땐 마약 때문에 생긴 주사바늘 자국으로 오해하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까무잡잡하고 머리도 짧게 잘라 인상이 험하게 보여서 더 오해를 받은 것 같다(웃음).

 

-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많은 사람들이 “헌혈을 하면 뭐가 좋아요?”라고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대답하는 말이 있다. “헌혈에 대해 생각할 때 병원에서 수혈을 기다리는 어떤 불쌍한 이를 위해서 봉사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헌혈은 당신과 당신 주변 사람들을 위해 들어놓은 보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라.”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헌혈은 건강할 때만 할 수 있는 것인데 건강할 때 나의 건강을 헌혈증서라는 작은 종이에 조금씩 기록해두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언젠가 내가 아프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플 때 사용할 수 있는 보험인 것이다. 어떤 거창한 봉사정신이나 대의를 위해 헌혈한다 하지 말고 본인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헌혈하라고 말한다. 그래야 헌혈을 시작할 수 있다.

17세부터 현재까지 151회 헌혈을 실천하고 있는 이두규 씨.
17세부터 현재까지 151회 헌혈을 실천하고 있는 이두규 씨.

- 헌혈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헌혈은 꼭 건강한 상태에서 해야 한다. 헌혈을 할 수 있는 기준이 생각보다 까다롭다. 헌혈을 위해서는 몸무게, 헤모글로빈 수치 및 혈압, 맥박, 체온을 측정하는데 기준치 미달이면 헌혈을 못한다. 그리고 문진을 통해 잠은 충분히 잤는지, 아침밥은 먹었는지, 기름진 음식을 먹진 않았는지 등을 확인한다. 헌혈을 하려면 나부터 건강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헌혈인 것 같다.

 

- 앞으로도 계속 헌혈을 할 것인지?

나의 151회의 헌혈을 통해 151팩의 피가 누군가에게 수혈되거나 생명을 살리는 데 쓰였을 것이고, 151장의 헌혈증서를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한 번의 헌혈이 두 번의 가치있는 일을 만든다. 가치있는 일을 위해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꾸준히 헌혈을 할 것이다.

 

[사진=시사캐스트]
[출처=헌혈지식 :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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