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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TALK] 경계선 지능인, 보호받지 못하는 슬픈 교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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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TALK] 경계선 지능인, 보호받지 못하는 슬픈 교집합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2.11.06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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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이현주 기자)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A씨는 고등학교 남학생 3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A씨와 그 가족을 더 괴롭게 만든 건, 법이 내린 결론이었다. '합의 하의 성관계'. 법은 A씨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고등학생 3명에게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A씨의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고 일관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사건이 발생한 후 A씨의 웃는 모습이 CCTV에 찍힌 데다, A씨가 사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진술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만을 두고 보면, 'A씨가 진짜 피해자가 맞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사건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데 있어 중요한 사실이 간과됐다.

바로 A씨가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점이다. 

-경계선 지능, 무엇이길래?

경계선 지능이란 지적장애 수준은 아니지만 평균보다 낮은 지적능력을 의미한다. 표준화 지능검사상 IQ 70~85 사이에 있다면 경계선 지능에 해당한다. 전체 인구의 13.6%가 경계선 지능인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계선 지능인들은 보통 이해력, 상황대처능력, 감정통제능력이 떨어진다. 또 작업을 빠르게 수행하거나, 논리적으로 사물을 설명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발단 지연은 경미한 수준으로,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장애와 비장애의 사이, 위태로운 경계선에 서다 

경계선 지능은 법적으로 지정된 장애에 속하지 않는다. 경계선지능인 가운데 언어장애, 자폐성장애에 해당하는 자만이 장애등급을 받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장애 수준은 아니지만, 또래 친구들과 학습적·언어적인 부분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경계선 지능인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또래 집단으로부터 소외를 당하기도 한다. 이들의 공허한 마음은 가상세계로 향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만남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긴다.

경계선 지능인은 성폭력, 성매매 등 성범죄 피해에 노출되기 쉽다. 장애로 인정되지 않는 경계선 지능인의 경우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라 해도 보호받지 못하는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사회적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경계선 지능인은 범죄를 당한 후에도 피해자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A씨 사례도 이에 해당한다. 성폭행을 당한 후 웃음을 짓고, 가해자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화를 이어간다.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납득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더욱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이 부족해 상황에 대한 구체적 진술도 불가하다. 자신이 가진 능력 안에서 피해사실을 증명해보지만, 경계선 지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회에서 A씨는 그저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으로 치부될 뿐이다. A씨는 명백한 피해자지만, 피해자가 될 수 없었다.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보호막'이 필요하다

경계선 지능인의 연약하고 순수한 마음을 악용하는 성범죄 사례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보호자를 통해 사건의 내막이 알려진 경우도 있지만, 세월에 묻힌 억울한 사연들도 적지 않을 터.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지난해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은 브리프에서 경계선 지능 여성의 성범죄 피해실태 및 예방 방안을 다뤘다. 홍미영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계선 지능 여성의 성폭력, 성매매 문제는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지역사회 차원에서 주목해야 할 사안"이라 강조했다. 문제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는 ▲경계선 지능의 법적 근거 확보 ▲사회적응 지원체계 구축 ▲전문가 신속대응 협력망 구축 ▲학교 내 경계선 지능 아동 돌봄 지원 ▲부모 인식 개선 교육 및 협력모임 결성 ▲경계선 지능 피해 아동 대상 맞춤형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이 언급됐다.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선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한 발짝 떼는 것조차 어려운데, 경계선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는다 해도 치유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경계선을 감싸는 촘촘한 안전망이 마련되어야만, 경계선 지능인들이 안심하고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다. [시사캐스트]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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