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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_나이트] 눈부신 과거에 움츠러든 시간,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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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_나이트] 눈부신 과거에 움츠러든 시간,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2/2
  • 양태진 기자
  • 승인 2023.08.18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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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삶인의 야밤을 흔들어 깨우는 시간. 꿈꾸는 다큐 만큼 빛나는 진실도 없을 테니.

한 평범한 여인의 역대급 사진 스크린전. 서울에도 상륙했던 내막은? 그 2/2시간

(시사캐스트, SISACAST= 양태진 기자)

약 1년 전, 서울 성수동의 한 전시관에서는 평범함과 특별함을 넘나든 사진들이 대거 출몰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잘 짜여진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미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치렀던 '비비안 마이어'의 눈부신 작품들이었던 것.

현상도 되지 못한 어마어마한 양의 필름을 제외하고라도, 약 15만 장의 사진 중 일부만 공개된 상황이었건만, 쉬지 않고 몰려든 인파는 곧, 다큐 내에 등장했던 작품들은 물론, 최초의 셀카라 일컬어지는 '비비안'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대체 왜, 이 많은 사진들을 찍고도 현상을 하지 않거나, 본인이 직접 공개 조차 하지 않은 걸까?"

 

지난해 열렸던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의 전시장 입구 모습. 그녀가 직접 사진을 찍던 셀카 모습의 전시관 벽면이 인상적이다.(상단) 그런 그녀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기종의 '롤라이플렉스' 내부 모습. 마치 그녀가 된 느낌으로 카메라 속에 잡힌 상을 바라보니, 렌즈 정면에 놓인 거울로 인해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하단) (사진=시사캐스트)

감히 추측컨대, 그녀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쉬이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유한의 흐름 선상에서 무한한 정보와 사진의 가치를 치열하게 지켜낸, 또는 그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작은 박스 안에서 만큼은 자신 만의 세계를 구축해 영원히 머물 수 있기 만을 바란 것이었을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세상을 더 자유롭게 바라보던 관찰자로서, 여태껏 자신이 고수해온 삶의 방식 그대로, 현실은 오직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만 존재할 뿐, 작품이 만들어지고 난 이후부터는 오직 미래 사람들과만 대화 나눌 수 있길, 손꼽아 기다려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같은 생각은 모두 추측일 뿐, '비비안 마이어'가 행한 모든 작품 활동이란 그저 셔터를 누르던 때의 행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었을 것. 

2007년 한 남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10만통의 필름과 '비비안'이 직접 녹음하고 녹화한 엄청난 수의 테이프들은 사실상, 누구에게도 공개된 적이 없던, 소위 말해 그녀만의 개인적인 작품들일 뿐, 대부분은 완벽한 작품이라 칭송 될 만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의 엄청난 양의 작품들 중, 진짜 작품으로서 인정될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인데, 비비안이 직접 인쇄한 작품들 또한 그녀의 최고작은 아니란다. 사실 인쇄에 관해 그리 놀랄 것도 없는 것이, 당대 가장 위대한 사진가들 또한 모두 인쇄에는 젬병이었다는 것.

어쨌든 벼룩시장을 통해 발견된 그녀의 유품들은 곧, '비비안'의 실제 삶과 증언자들로 인해 또 하나 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리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그녀였기에, 주로 거쳐갔던 직업 중 하나였던 '유모'의 역할에 있어서도 그리 긍정적인 평가가 뒤따르진 않는 상황. 

그 밖에도 신문더미를 가득 모으는 등, 일종의 편집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던 그녀였건만, 이러한 그녀의 개인적인 히스토리는 그녀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큐 밖에 감춰져 있을 만한, 또 다른 '비비안'의 발자취를 더 찾아나서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그녀 작품에 다시금 몰입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올라오는데, 

인간사 모든 것이 하나로 귀결될 수 있듯, 무한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의 사라진 이들의 발자취를 감상한다는 건, 정말이지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시간의 손길이 닿기 전까지, 그 원천의 모습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건,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또한 더욱 생동감 있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들과 그녀 만의 살아있는 시선은 이렇듯, 우리 모두의 삶에 잔잔한 파도를 선사해주는 것이었다. 그녀 자신의 삶은 비록 시간의 뒤안길로 밀려나 오직 작품들만 남은 상황이었지만, 그 밀물이 쓸고 간 자리에 남은 그녀 만의 아름다운 시선들은 순간의 진실과 더불어, 순간의 소중함을 남긴 채, 현재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이같은 찰라의 가치를 꼭 끌어안고 싶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인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이 가진 단서들을 뽑아내야 해요. 비비안의 사진은 다정함과 인간의 비극에 대한 즉각적인 경계심, 너그러움과 상냥함의 순간들을 보여주죠. 주의 깊고 관찰력이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런 자질들이 있어서 유모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 조엘 메이어로윗츠, 사진작가 (Joel Meyerowitz, Photographer)

 

이러한 면면이 흐르고 있는 그녀의 사진들을 바라볼 때면, 전하려는 메시지를 딱히 느낄 수 없다 하더라도, 때론 쓰레기를 뒤지며 사진을 찍거나, 누군가에게는 친절하다가도 때론 과격하기도 했던 한 평범한 여자의 모습이 이젠 수많은 이의 호기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어버려다는 것, 이것 하나로도 '비비안 마이어'의 살아생전 외로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 재차 언급해도 지나치지 않은 - '비비안 마이어'의 권리, 즉, 이러한 다큐 제작이 결코 그녀의 결정이 아니었던 이상, 그녀의 삶과 작품들이 세상에 공개되는 건 더욱 신중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만일 어느 하나의 작품을 내보이고 싶었다 해도, 그녀의 사생활 만큼은 예외없이 필히 존중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 세상을 뜬 사람이라고 해도, 그녀의 발자취를 마음대로 파헤치는 행위에는 큰 책임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이젠 세상이 그녀를 요구하고 있다. '비비안' 또한 평생을 기다려온 것이었을지 모를, 천재 사진 작가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것과 더불어, 영화(다큐) 속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역사적인 피사체들과 함께 호흡하던 매 순간의 고귀함이 영원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재탄생 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있을 비비안 마이어. 그녀의 존재감이 작품들로 확실하게 드러난 이상, 이젠 세상 너머 저편 어딘가에서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길 바라 마지않는다.

[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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