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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 사탕 나눠주고 학교 직접 꾸미는 ‘교육계 큰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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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 사탕 나눠주고 학교 직접 꾸미는 ‘교육계 큰 별’
  • 정수백 기자
  • 승인 2008.06.21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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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훈 선일여상 교장

선일여상 첫 부임후 20년 넘게 근무
운동장 고치느라 손에 심한부상 당해
아침 7시 어김없이 출근 학생들 맞아
856명 전교생 이름 왠만하면 기억해

어려운 학생많아 장학금-후원 적극나서
사제동행 여행 매년 실시해 情쌓고
교실에 깐 장판 전부 디자인으로 채택
취업률 100%-진학률도 90% '명문고' 우뚝

지난 21일 선일여자상업고등학교 홍병훈 교장을 만나기 위해 학교 교장실을 찾았다. 지하철 연신내 역에서 내려 꽤 오래 걸어야 했다. 아침 이른 시간에 지하철로 등교하는 학생들에겐 멀게 느껴지는 길 같았다. 그날따라 비도 추적추적 와서 그런지 초행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홍 교장을 만나기로 한 10시 조금 전 한 교사의 안내로 교장실에 들어갔다. 기자는 홍 교장이 체육대학을 나온 체육 교사 출신으로 알고 그를 만났다.

그러나 실제 그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체육선생님다운 면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도 편견일지 모르지만 홍 교장의 첫 인상은 너무나 온화하고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어 학자다운 풍모가 느껴졌다.

기자가 교장실에 들어갔을 때, 홍 교장은 김영돈 교감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첫 눈에도 홍 교장이 자기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보였다. 홍 교장은 1987년 선일여상 생활부장이 된 이래 2000년 교감, 2006년 교장으로 취임했다.

기자가 홍 교장에게 “학교에 애착이 강한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손가락 중 두 개가 약간 굽어 있었다.
 
홍 교장이 선일여상에 처음 왔을 때 그는 학생들에게 “선일여상은 제주도”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운동장이 고르지 못하고 돌이 널려 있어 돌, 여자, 바람이 많다는 제주도에 비유한 것이다.

홍 교장은 학교 운동장을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도중 손가락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한 부상을 당했다. 그 때 입은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아 지금도 손가락이 약간 굽어 있는 것이다.

홍 교장은 “내 손길, 발길, 땀이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는 말로 선일여상에 대한 애착을 표현했다. 그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홍 교장이 선일여상을 위해 확신을 갖고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존경스러웠다.

홍 교장의 교육자적 마인드는 ‘학생에게 부모 같은 교사가 되자’, ‘학교를 집처럼 가꾸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교장실부터가 다른 학교와는 확연히 달랐다. 교장실 벽에 벽지가 도배돼 있는데 가정적 분위기가 감돌아 인터뷰가 아니라 자연스런 대화를 주고받는 듯했다.

홍 교장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말하며 자신이 교회 장로라고 밝히기도 했다. 학교의 발전 목표를 설명할 때는 타고난 교육자였지만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는 교육자이기에 앞서 신앙인에 가까웠다.

홍 교장은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출근해 등교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인사로 맞이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어느 학교에서도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선일여상은 각 학년 9학급씩 27학급에 856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7%의 학생이 가정형편이 어렵고 시설(고아원)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홍 교장은 1998년 IMF 당시 부모에 의해 고아원에 맡겨진 학생이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본 후 학생들과의 친밀한 접촉의 중요성을 자각했다. 홍 교장을 경계하던 그 학생도 홍 교장의 마음을 안 후 부모에 대한 증오심을 버리고 이제는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고 한다.

홍 교장은 학생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해 보강시간을 가끔 내는데 교장 선생님이 자기 이름을 기억하는 걸 알게 된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몰라보게 좋아지곤 한다. 홍 교장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모자 가정 학생들은 점심과 등록금을 지원받고 있다.

홍 교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하면서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저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저녁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홍 교장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종교단체에서 학교에 후원금을 희사해 학생들에게 점심과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교육목사이기도 한 김 교감에게도 후원금이 들어와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홍 교장과 교장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냉장고 위에 놓여 져 있는 ‘추파춥스’ 사탕이 눈에 들어 왔다. 홍 교장은 교장실 문을 열어 놓아 언제라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교장실 출입을 할 수 있고 교장실에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사탕이나 음료수,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주곤 한다.

다른 학교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다. 홍 교장과 김 교감은 점심을 제일 늦게 먹는다.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부족하거나 불편한 것이 없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나서야 점심을 먹기 때문이다.

홍 교장은 교사와 학생들의 인간적 교류를 확대시키기 위해 사제가 동행하는 야영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그는 교사들에게 학생들을 안아 줄 것을 부탁하는데 교사의 진심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이 꼭 있다고 전했다. 사제 동행 야영에서 돌아오면 학생과 교사들이 친해져 학교 분위기가 좋아진다고 한다.

선일여상의 교실을 둘러보면 다른 학교와는 다른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감동마저 느껴진다.

홍 교장은 교장실처럼 교실도 가정적 분위기가 들도록 도배를 하려고 했지만 유해물질이 발산될 수 있다는 이유로 교육청에서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실 바닥에 장판을 깔아 아늑하고 품위 있는 공간분위기를 연출했다.

더욱 놀라운 건 2, 3학년 18개 교실이 전부 다른 디자인으로 장판을 깔았다는 사실이다. 교실 장판을 담당한 디자이너는 모든 교실을 같은 디자인으로 하기를 원했지만 홍 교장의 강력한 요청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고 교실마다 디자인을 따로 했다는 것이다.

홍 교장은 이에 대해 “학생마다, 학급마다 개성이 있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살리려는 의도에서 교실마다 디자인을 다르게 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과는 너무나 다른 교실 모습에 머리가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선일여상을 찾는 장학사도 이구동성으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장학사가 불시에 학교를 방문해도 학교 모습은 그대로여서 장학사들도 놀라워한다고 홍 교장은 전했다.

홍 교장은 학생 사랑에서는 아버지 같고 신앙인이지만 학생들의 진학과 취업, 창업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할 정도로 전문가요 열정가였다. 학교와 관서, 기업체의 연계를 위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간다.

홍 교장을 만난 기업체 인사담당자나 공무원들은 처음에는 관심 없는 듯이 듣다가 홍 교장의 진심과 성실성을 알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한다. 홍 교장이 관, 산, 학 협력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협약만 맺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옮겨 성과를 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선일여상 출신 취업자 8명이 명지대에 진학해 우수한 평가를 받아 올해는 16명으로 진학 대상자를 늘릴 계획이다.
 
이들의 등록금은 기업체와 대학에서 반씩 부담해 학생은 전액 장학금을 받는 셈이다. 선일여상의 학생들은 대학 진학과 취업 비율이 대략 절반씩으로 나뉘는데 취업률은 거의 100%에 가깝고 진학률도 90%를 거의 상회하고 있다.

오후 3시 50분까지는 정규 수업을 하고 ‘방과 후 교육’으로 취업반과 진학반으로 나눠 별도의 수업을 2~3시간 더 하고 있다. 전문계고임에도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학생이 250명이나 된다.

홍 교장은 의욕적으로 오는 6월 5일 ‘학교 기업’인 ‘예스선일’(yessunil.com)을 오픈한다. 예스선일에는 기업체가 입점해 물건을 팔고 이익금을 학교와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학교에 배당되는 이익금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쓸 계획도 세우고 있다. 홍 교장은 ‘전자상거래는 선일여상’이라는 인정을 받는 것이 궁극적 목표의 하나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홍 교장은 내년부터는 교육 과정을 혁신하고 교사의 특성화를 위해 교사 연수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선일여상의 교사들은 각종 연수에 가장 성실히 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기자는 홍 교장의 안내로 음악실과 강당을 둘러보고 또 한 번 놀랐다. 학교 음악실과 강당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전문 공연장이나 콘서트홀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홍 교장은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1인 1악기 연주를 추진 중이지만 비용 상의 문제로 아직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홍 교장은 “악기 지원을 받기 위해 유인촌 장관이라도 만나겠다”고 의욕을 보였고 문화예술 진흥원과 문광부를 찾겠다고 덧붙였다.

홍 교장의 열정과 인간미가 선일여상과 학생들에게 훌륭한 결실로 돌아오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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