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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도덕성' 무너진 방위사업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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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도덕성' 무너진 방위사업에 미래는 없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3.10.1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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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기자
이현주 기자

(시사캐스트, SISACAST=이현주 기자)

시험에서 커닝을 하면 0점 처리는 물론 근신, 정학 등 지침에 따른 징계가 이뤄진다. 분명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경쟁의 굴레 속에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 공부 좀 한다 하는 의대생·약대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명문대 학생들의 집단커닝 사건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바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사람들의 판단은 갈린다.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입장과,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럴 수 있다는 입장. 후자에 힘이 실릴 경우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사한 논란이 빚어졌다. 논란의 중심이 된 기업은 HD현대중공업이다. 지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방위사업청과 해군 본부 등을 방문해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KDDX), 장보고 사업 등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사진 및 동영상 촬영으로 불법 취득했다.

군사기밀을 유출한 직원들이 검찰에 송치된 2020년, HD현대중공업은 KDDX 사업의 첫 단계인 기본설계 사업을 수주했다. 당시 수주전에서 0.056점 차이로 떨어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이 불법으로 자사의 설계도를 훔쳐 사업을 따냈다며 방위사업청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왕정홍 전 방위사업청장은 2020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법원 판결이 나와야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답했다. 

HD현대중공업 ci.
HD현대중공업 ci.

지난해 말 직원 8명의 유죄 확정 판결이 나왔지만 직원들의 '판결문 열람 금지 신청'으로 인해 HD현대중공업은 징계를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방위사업청이 판결문을 확보하면서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유출 범죄에 대한 제재가 빠르게 이뤄질 전망이다. 방위사업청은 세부 내용과 징계 여부 등을 검토 중이라 밝혔다.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방위사업청 사업에서 보안감점이 적용된 HD현대중공업은 해군 3600톤급 신형 호위함(울산급 배치-Ⅲ 5·6번함) 건조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탈락했다. HD현대중공업은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 보안 감점에 대해 반발했지만, 이는 되려 업계의 비난을 샀다.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린 기업이 심사의 공정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최근 진행된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HD현대중공업을 감싸는 듯한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함정 분야 방위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지만, 보안 사고에 대한 벌점이 과하다는 지적은 고개를 내젓게 했다. 

기술 자료를 훔친 기업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다면 경쟁주체들의 도덕적 판단이 무뎌지면서 불법 행위는 만연해질 수 밖에 없다. 법을 어긴 기업은 규정에 따른 패널티를 받는 것이 온당하다. 공정 경쟁의 틀이 마련돼야 장기적인 산업 발전을 꾀할 수 있다.

방위사업청도 원칙을 중시한다는 입장이다. 군사기밀보호법을 어긴 업체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은 국정감사에서 "업체가 군사기밀보호법을 위반함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우위에 있다고 해서 선정되는 것은 배제돼야 한다"고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더욱이 HD현대중공업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10년간 13건의 국내 함정 사업의 제안서 평가결과, 한화오션은 7차례나 현대중공업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방위사업청이 HD현대중공업에 대해 부정당 제재 검토를 예고한 가운데 방위사업청의 후속 조치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모럴 해저드를 벗어나 공정 경쟁의 기틀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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