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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D아트컨설팅의 Biz. Story] 내 안에 스며든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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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D아트컨설팅의 Biz. Story] 내 안에 스며든 가족 
  • 이신애 HRD아트컨설팅 시네마 코치
  • 승인 2023.10.23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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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시네마심리코치 이신애)

 

영화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歩いても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8). [이미지=네이버 영화정보]
영화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歩いても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8). [이미지=네이버 영화정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잔잔한 영상으로 가슴을 후벼파는 메시지를 준다. ‘가족’의 이야기를 자주 그리는 감독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좋다. 영화 속 가족은 중요한 행사때면 모여서 식사를 함께 하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의 영화는 감동을 주기 위한 가족 영화가 아니라 가족의 의미를 뒤집어 보게 하는 영화다.

<들어가며>

얼마전 여의도 불꽃축제가 있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방송에서는 사람들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화면에 뜨고 있었는데 아주 많은 댓글에서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고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가족은 얼마나 중요한가.. 화려하게 터지는 멋진 찰나의 불꽃에도 가족의 행복을 염원할만큼 사람들에게 가족은 가장 중요한 대상이다.

연중 가장 큰 명절중 하나인 추석이 지나간지 얼마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고 차례상과 가족 및 친척들을 위해 많은 돈을 썼는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어느 집은 이를 당연한 명절 문화라 여기고 즐기지만 어느 곳에서는 명절이 마음 아픈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명절증후군을 토로하는 사람들, 명절이 지나면 증가하는 이혼율이 가슴에 와닿지 않더라도, 누구 좋으라고 매년 힘들게 지키는지 그 의미를 잃어버린 명절의 단상이 풀어야 할 숙제처럼 가슴 한 켠에 쌓여간다.

이 시기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그려낸 가족의 모습을 통해 천둥소리처럼 울리는 침묵의 메시지를 읽어보기 좋은 계절이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유교문화권이어서 그런지 가족의 모습과 소통방식을 보면 공감할 수 있는 면면들이 많이 보인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화를 내거나 큰 소리로 주장하는 사람이 없지만 각 사람의 마음 속 가시가 서로를 찌르며 아파하는 걸 볼 수 있다. 문제는 그게 가족이라는 거다. 그리고 다들 익숙한 듯 아프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만약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 남이라면 멀리해도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테지만 가족의 경우는 안 보고 사는 것도 쉽지 않다. 내가 아파서 보지 않고 사는데도 스스로 죄책감을 무겁게 지니게 되는 게 가족관계의 문법이다. 왜 그럴까? 가족은 일반적인 인간관계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특수한 경우에 해당한다. 아마도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필요로 하고 의미부여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歩いても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8). [이미지=네이버 영화정보]

영화 속 가족이 부모님 집에 다 모이는 날은 죽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이다. 똑똑해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려던 준페이가 물에 빠진 어느 초등학생을 구하고 익사한지 15년이 되었다. 차남 ‘료타’는 부모님 댁에 가기를 싫어한다.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안 가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데 집에 가도 부모님과 할 얘기가 없다고 하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하나를 키우는 ‘유카리’와 동거하는 료타는 현재 실직 상태지만 이를 숨기고 말하지 않는다.

딸 ‘지나미’가 일찍 와서 엄마를 도와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딸은 친정집 한 쪽에 은퇴한 아버지의 병원을 방으로 개조하여 이사 올 생각을 하고 있다. 딸 가족까지 보살피게 될 것 같아 자신이 파출부나 다름없는 신세라고 느껴지는데다 사위도 남처럼 불편한 엄마는 딸의 계획이 내키지 않는 듯 그 속내를 드러내고, 아버지는 평생 자신이 일해서 지은 그 집을 자녀들이 할머니 집이라고 할 때마다 얹짢은 기색을 내비친다.

사실 엄마의 속마음은 아들이 들어와서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쇼핑을 가는게 꿈이라는 엄마는 평생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신다. 아버지가 불편한 료타는 아버지와 함께 언젠가 축구경기를 보러가자는 무의미한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료타는 부모와의 심리적 거리를 조금도 좁히지 못하고 3년 뒤 부모를 떠나보낸다.  

<수면 아래>

영화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歩いても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8). [이미지=네이버 영화정보]

평범해보이는 부모의 세계는 마치 잔잔한 호수 같아 보이지만 그 수면 아래 엄청난 역동이 있다. 엄마와 아버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그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성실하게 삶을 살아온 부모에게 소중하지 않은 자녀가 있으랴마는 가족 이기주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모의 대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민망함을 느끼게 한다.

자랑스러운 장남 준페이를 잃고 난 뒤 그에 대한 기억은 모두 좋은 기억으로 왜곡된다. 심지어 차남의 행동이나 말을 장남의 것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준페이가 살린 아이 요시오는 다 자라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되었는데도 매년 연례행사로 이 집을 찾아와 조의를 표하고 준페이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는 인사를 하고 간다.

등을 돌리고 앉아 요시오를 쳐다보지도 않는 아버지는 저런 하찮은 놈 때문에 우리 애가 죽었다며 한탄을 한다. 료타는 엄마에게 이제 요시오를 그만 부르자고 하지만 엄마는 ‘왜 그래야 하는데?’라고 반문한다.

요시오가 괴로와하는 것 같다고 하자 엄마는 “그래서 부르는 거야,. 겨우 10년 정도로 잊으면 곤란해.” 라고 하며 1년에 하루 정도 그 아이를 괴롭게 한다고 해서 벌 받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엄마도 아버지도 자식을 잃은 부모로서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간다는 점은 같겠지만 여기서는 엄마에게 집중해보자.

<엄마의 세계>

영화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歩いても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8). [이미지=네이버 영화정보]
영화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歩いても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8). [이미지=네이버 영화정보]

영화에서 가족의 중심에는 엄마가 있다. 가족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헌신적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이상적인 엄마와는 달리 아들이 선택한 여자를 중고라며 흉을 보고, 며느리의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모습에, 아이를 낳으면 헤어지기 어려우니 아들에게 잘 생각하라고 한다. 사위가 욕실 타일을 고쳐준다더니 먹고 낮잠만 자다 갔다며 불평하는 모습은 차라리 귀여우시다.

젊은 시절 남편이 외도하는 현장에 둘째 아들을 업고 갔었지만 내연녀에게 불러주는 남편의 노래소리를 듣고는 발길을 돌렸던 엄마는 그 다음날 그 노래의 음반을 사서 가끔 그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그 오랜 시간 남편에게도 티를 내지 않고 어느 자식에게도 얘기를 한 적이 없는 엄마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엄마의 행동이 이해되는 사람도 이해되지 않는 사람도 엄마를 보며 복잡한 심경을 느끼는 자녀의 감정에 공감할 것이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역사적으로 문학과 예술 속에서 언제나 이상화되어 왔다. 어머니는 우리 존재의 출발지로서 자기 정체성의 뿌리가 된다.

그래서 어머니는 존경과 사랑의 대상으로서 불멸이다. 그러나 영화는 어른이 된 자녀의 눈을 통해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을 모두 해체한다. 두 자녀의 엄마인 딸을 여전히 이마가 예쁘다며 가리지 말라고 앞머리를 쓸어올려준다든지, 오랜만에 오는 아들과 손님을 위해 새 파자마와 칫솔을 준비하고, 온 가족이 좋아하는 옥수수튀김을 해주는 엄마지만 그 엄마의 사랑은 혈연이라는 경계를 넘지 못했다.

엄마의 울타리는 너무 좁아서 자녀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두르지 못하고, 자녀들에게마저도 조건적인 사랑이어서 잘난 큰 아들 준페이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엄마의 울타리가 이리도 좁은 이유는 그게 엄마의 세계 전부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세계를 알 수 있는 단서는 영화 속 곳곳에 드러난다. 남편의 외도, 자녀들 뒷바라지와 집안 살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회생활, 콘서트에 가서는 잠이 드는 빈한한 예술적 경험과 안목, 나비에 대한 미신과 사회적 통념이 그녀의 신앙이며 남편의 무시와 무관심 속에 문화적으로 형성된 엄마라는 역할에만 충실하게 살아왔다.

어느 누구도 엄마의 세계를 이해하거나 그 세계를 넓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영혼의 친구도 없이, 존중받거나 사랑을 받아본 기억도 없이, 비록 비뚤어진 욕망일지언정 자녀들을 잘 키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를 만들고팠던 소망에 대한 보상도 없었다. 그것이 엄마의 세계였다.

<엄마라는 세계>

영화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歩いても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8). [이미지=네이버 영화정보]
영화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歩いても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8). [이미지=네이버 영화정보]

그런 엄마는 마음에 들던 안 들던 자녀들의 삶에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엄마라는 세계는 자녀들의 기억과 삶 속에 남아 있다. 엄마가 너무한다고 생각했던 료타도 어느샌가 가장이 되어 엄마가 했던 행동을 따라하고, 엄마가 했던 말을 자녀들에게 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마라는 세계가 자기라는 세계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장점과 단점까지 벗어버릴래야 벗어버릴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엄마라는 존재를 이상화하고 그 이상이 깨어질 때 실망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닐까? 자기 자존감의 근원일 수도 있는 엄마라는 세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엄마라는 세계가 나의 일부라고 하면 혹시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을까?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라고 다짐한 사람들이나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코칭에서 가족의 이슈는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가족과 심리적, 물리적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상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가족을 수용하고 극복하면 자기의 세계를 넓히고 자기객관화를 통해 인격적으로 성숙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2020)에서는 이러한 주제를 가볍고 로맨틱하게 풀어낸다. 대학생 개츠비는 갑자기 엄마로부터 엄마의 삶에 대한 고백을 들은 후 엄마를 이해하고 또 자신을 이해하고 완전히 달라진다. 무엇보다 허세투성이라고 생각했던 엄마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됐고 엄마와 가까워진 기분으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 던진 듯 자기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걸어도 걸어도>속의 주인공들은 서로의 경계를 확고히 하고 그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가다 떠나간다. 각자의 생각은 변화하지 않고 원하는 것만 얘기하다 그 자리에 머물러서 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낸 것이다. 그들의 길은 걸어도 걸어도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었다. 그런 그들의 삶이 평범한 보통의 가족이자 가장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이라고 인정해도 우리에게는 변화에 대한 희망이 필요하다.

<스며들기>

영화 속에서 료타의 의붓아들인 아츠시의 눈을 따라가면 가족의 의미를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료타의 가족은 혈연관계가 아니다. 준페이의 죽음 이후 료타 가족을 통해 요코야마 가족은 비혈연을 포함하여 재구성된다. 부모의 편견으로 인해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장면도 많이 있지만, 동시에 세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통해 혈연이 아니어도 순수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아츠시가 한밤중에 마당에 나와 혼잣말을 하는 장면에서 어떻게 가족이 서로에게 스며드는지 잘 묘사되었다. 아츠시는 료타를 아직 아버지라 부르지도 않는다. 아직 가족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한발짝 물러나 관찰한다. 아츠시는 료타에게 어린 시절에 왜 의사가 되고 싶었는지를 물었다.

자신도 죽은 아버지처럼 피아노조율사가 되고 싶었던 아츠시는 아마 료타의 어린 시절을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이미 상실감을 경험한 아츠시는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이 가족의 일부가 된다. 아츠시는 곧 의사가 되고 싶은 새로운 꿈을 품고 장래에 피아노조율사 아니면 의사가 되고 싶다고 달빛 속에서 아버지에게 고백하듯이 말한다. 료타가 자기에게 스며들어오도록 내어준 것이다.

<나가며>

영화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歩いても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8). [이미지=네이버 영화정보]
영화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歩いても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8). [이미지=네이버 영화정보]

이 영화에서는 ‘계단’이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가족이 늘 걸어다니는 길과 계단은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이 카메라를 벗어난 이후 장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걸어도 걸어도 길은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걷는 그 길은 어디론가 가는 길이 아니라 늘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 엄마가 사서 들었던 음반의 노래 가사에도 ‘걸어도 걸어도’가 나온다. 마치 남편이나 가족을 벗어날 꿈도 꾸어보지 않은 것처럼 엄마의 길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과 물리적 거리를 벌릴 수는 있어도 그 인연을 완전히 끊기는 어렵다. 가족에 대한 성찰이 결국 가족은 소중하고 중요한 대상이니까 무조건 잘 지내야 한다는 결론이면 곤란하다. 또 뿌리깊은 유교적 가치관을 강화하는 방식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 이상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 때문에 괴롭지 않고 집이 편안한 공간이 되길 바란다면 가족에 대한 이상이 불가능한 환상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족을 보는 새로운 눈이 필요하고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정말 가족이 소중하다면 불꽃에다 행복을 빌게 아니라 오늘 가족 안에서 새로운 불꽃을 피워보는 것이 어떨까?

불편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고치고 솔직하게 소통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다음 코칭 질문에 답을 해 보자.

Q 1. 자신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Q 2. 자기 안에 스며든 가족의 모습은 어떤가요?

Q 3. 가족과 소통하는 방식을 바꾼다면 무엇을 할 건가요?

[시사캐스트]

 

이신애 HRD아트컨설팅 시네마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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