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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D아트컨설팅의 Biz. Story] 빈(Wien), 벨베데레 궁전 (Schloss Belved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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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D아트컨설팅의 Biz. Story] 빈(Wien), 벨베데레 궁전 (Schloss Belvedere)
  • 김성민 HRD아트컨설팅 인문학파트 강사
  • 승인 2023.11.29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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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김성민 콘서트가이드 / HRD아트컨설팅 인문학파트 강사)

 

오스트리아 빈, 벨베레데 궁전. [김성민 강사 제공]

아빠 키스가 뭐야?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딸의 질문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뽀뽀하는 거라고 대답했는데, 그러면 키스와 뽀뽀의 차이가 뭐냐고 물어보았다. (예리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뽀뽀는 좋아하면 가볍게 할 수 있지만, 키스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길게 하는 거라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딸은 “그러면 앞으로 엄마 앞에서는 우리 뽀뽀하고 엄마 없을 때는 우리 키스하자.”라고 말했다.

육아는 어렵다. 이번 시간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과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키스라는 작품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도나우 강 서쪽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은 서유럽의 길목으로 예전부터 상업의 중심지였고 이후 신성로마제국을 주도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도가 되면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은 결혼과 전쟁을 통해 다양한 민족들을 다스렸는데 그런 영향으로 19세기 말이 되면 외국인의 비율이 도시 인구의 30%를 차지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금융과 상공업을 담당했으나 천대받았던 유대인비율로 그 도시의 다양성을 가늠할 수 있는데,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오스트리아 빈은 파리 다음으로 유대인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다양성을 기반으로 오스트리아 빈은 유럽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문화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벨베데레 궁전 앞 정원. [사진= 김성민 강사 제공]

클림트의 작품이 있는 벨베데레 궁전은 원래 북이탈리아의 토리노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사보이아 가문의 왕자, 유진(Eugen)이라는 사람이 만든 곳이다. 1752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그 건물을 매입하고 이곳을 벨베데레 궁전이라 명했다.(이탈리아어로 벨베데레는 전망이 좋다는 뜻이다.)

이후 1775년부터 벨베데레 궁전은 황실 회화 전시장으로 사용되면서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궁전은 상궁(上宮)과 하궁(下宮)으로 나누어지는데 클림트를 비롯하여 주요작품들은 상궁에 위치하고 있다.

벨베데레 궁전 내부 모습. [사진=김성민 강사 제공]

구스타프 클림트 가난한 가문에서 태어난 클림트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여 동생 에른스트와 함께 정식으로 미술수업을 받게 된다.

초기 클림트는 사실적인 그림을 기반으로 간혹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클림트가 30살이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와 동생 에른스트가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 때부터 클림트는 자신의 생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중부도시 라벤나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모자이크 회화. [사진=김성민 강사 제공]

집에 있기를 좋아하고 고향에 대한 애착도 강했던 클림트는 생애 몇 차례 짧은 여행을 하는데, 특히 1903년 이탈리아의 라벤나에서 보았던 비잔틴 시대 모자이크의 찬란한 빛에 매료된다.

그 이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유리 조각의 세밀한 조합과 라벤나 장인들이 사용하던 재료의 화려함을 되살리려는 시도를 했다. 또 이때부터 몇 년간 금 소재를 많이 쓰면서 상징적인 그림들을 제작했는데 그 시절 최고의 작품이 바로 벨베데레 궁전을 대표하는 키스라는 작품이다.

벨베데레 궁전의 대표작, 키스. [사진=작가 제공]
벨베데레 궁전의 대표작, 키스. [사진=김성민 강사 제공]

클림트의 키스

작품 속에는 남녀가 하나가 되어 뜨거운 키스를 하고 주변의 찬란한 황금빛 색채와 기하학적인 문장들은 감상자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여러 가지 극단의 감정들이 동시에 느껴져서 좀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극단의 감정들은 100년 전 세기말 빈에서 활동했던 클림트가 느꼈던 감정이기도 했다.

세기말 빈은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던 시대였다. 산업의 발전으로 생활수준이 상승하고 편리한 세상이 펼쳐졌지만, 반대로 프로이센과의 전쟁 패배(1866)와 만국박람회의 실패(1873)로 나라의 기운은 쇠락하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립된 요소가 공존한다. [사진=김성민 강사 제공]

키스라는 작품을 자세히 보면 대립된 극단의 요소가 공존한다. 대비되는 남성과 여성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남성은 직사각형의 기하학적인 문장이고 반대로 여성은 둥근 원형의 문장이다. 이는 남성과 여성, 직선과 곡선으로 대비된다. 또한 기하학적인 문장들은 이성적인 것을 나타내지만 반대로 남녀가 밟고 있는 꽃밭의 화려한 색채는 감성적인 것을 나타낸다.

그림의 오른편 아래를 보면 꽃밭과 대조적인 심연의 낭떠러지가 있고 이것은 안전하고 아름다운 꽃밭과 어둡고 두려운 낭떠러지로 대비된다.

낭떠러지에 있는 여성의 발 부분. [사진=김성민 강사 제공]

그 낭떠러지에서 아슬아슬하게 키스를 하는 남녀는 도대체 어떤 상황인걸까? 누군가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전에 여성을 구한 후에 하는 키스라고 말하고 반대로 이별 키스 후 그녀를 낭떠러지로 밀기 전의 모습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키스라는 작품은 극단의 감정을 한꺼번에 느꼈던 세기말 빈의 시대정신을 가장 잘 대변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은 화가 클림트가 회장으로 있는 빈 분리파의 초대를 받고 빈을 방문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여기 당신들 나라에서 풍기는,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이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극히 비극적이며 행복이 넘치는 당신들의 작품과 모습, 음악 그리고 당신들의 주변, 당신들 속에 있는 맑고 밝은 순진한 기쁨,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요?”

그때 화가 클림트는 “오스트리아”라고 짧게 답을 했다고 한다.

다양성의 시대에 중요한 덕목 “공감” 음악이란 우울증에는 좋지만 슬픈 일을 당한 사람에게는 안 좋은 것이고 귀가 먼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400년 전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이 말은 개성이 점점 강해지는 현대사회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만약 한 그룹의 리더가 조직원들에게 오로지 하나의 음악을 강요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조직은 다양성에서 얻어지는 활력과 창작의 동력을 잃고 오로지 하나의 음악에 자신을 맞춰서 생활하는 그저 그런 조직이 될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쉬운 말은 아니다. 사랑해서 결혼까지 한 사람들도 살다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헤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자신이 조직의 리더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편의를 위해) 하나의 음악을 강요하기보다 조직의 창조적 역량을 생각하며 조직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공감의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식당에서 메뉴를 가지고 아내와 약간의 의견충돌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4살 딸은 “나는 저 음식 싫어하는데, 아빠가 좋아하는 것 같으니 오늘 한 번 먹어보자 엄마.” 이렇게 말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팀원의 마음을 얻는 참 감동적인 리더의 모습이었다. 엄마 없을 때 딸과 긴 뽀뽀를 한 번 해봐야겠다. [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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