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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D아트컨설팅의 Biz. Story] 문제만 들여다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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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D아트컨설팅의 Biz. Story] 문제만 들여다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HRD아트커설팅 시네마심리코치 이신애
  • 승인 2024.03.2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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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시네마심리코치 이신애)

 

-영화 <패치 아담스>(1998, 톰 새디악). [이미지=네이버 영화]

명배우 로빈 윌리암스의 세밀한 감정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 <패치 아담스>는 죽음의 그림자에 눌려 지내던 한 남자의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스토리의 영화다. 
불우한 삶을 비관하고 우울해하던 한 남자는 자살충동에 시달리다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살고 싶은 의지가 있어 의사에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해보지만 환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듣는 둥 마는 둥 시계만 보다 대충 대화를 마무리하고 환자를 내보낸다. 그저 업무의 일환으로 앉아있다는 듯이 무관심한 태도가 역력하다.  

정신병원이라 이상한 사람투성이다. 같은 병실에 있는 ‘루디’는 다람쥐 때문에 침대에서 내려오지를 않는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다람쥐가 루디의 눈에만 보이기 때문이다. 다람쥐가 자기를 공격한다고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고 벽으로 기어올라가면 간호사들이 와서 바로 진정제를 놓는다. 다른 병실의 ‘비니’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한 손을 높이 들고 움직이지 않는다. 하루종일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이 남자는 문제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고, 처음으로 남을 돕는 경험을 한 뒤 사명감을 갖게 된다. 

<패치 아담스>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던 환자에서 다른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로 거듭난 실존 인물 헌터 아담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병원에 입원할 때는 그냥 일반 환자 헌터 아담스’였는데 어느날 병원에서 다른 환자의 새는 종이컵에 반창고를 붙여주고 패치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 환자는 헌터에게 손가락이 몇 개인지 묻는 질문을 했고, 누가 봐도 엄지를 접은 손가락은 네 개였지만 그는 아니라고 한다. 그는 매우 유명한 천재 기업가 아더 맨델슨이었는데 모두들 그가 미쳐서 그런 줄 알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헌터는 어느 날 밤에 그를 찾아가 답이 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이 바로 헌터를 패치로 만들고 이름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 직업, 삶의 태도, 정체성이 변화되는 계기를 만든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품게 되면 위대한 질문이 만들어지고 이에 따른 위대한 답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비로소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헌터의 손을 잡고 아더 맨델슨은 말한다. 손가락 너머를 보라고… 그의 말을 따라 초점을 옮기자 손가락이 흐릿하게 8개로 보였다.
 
“문제에만 초점을 두면 해결책을 볼 수 없어!”

이 말을 듣고 헌터가 그에게 한 질문은 아마도 자기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질문일 것이다.

“나에게서 뭐가 보이나요?”

남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인생을 바꾸게 된다. 자기 문제에만 빠져 우울 속으로 침잠하던 헌터는 그의 대답으로 드디어 자기 관점을 내려놓고 다른 관점으로 자신을 보게 된다. 아더 맨델슨의 대답은 ‘패치’였다. ‘내 컵을 고쳐줬잖아’… 그는 자기 문제 속에서 허우적대는 남자에게서 다른 사람의 문제를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을 본 것이다. 아더를 찾아간 것 자체가 이미 헌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나에게서 미치고 한맺힌 늙은 남자밖에 보지 못했다면 너는 처음부터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거야..” 라는 아더의 말에서 두 사람의 관점이 이미 현실을 초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아더 맨델슨은 헌터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었다. 문제를 보는 관점을 바꿔주고 ‘패치’라는 새 이름까지 주자 그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 듯 달라진다. 그뿐만 아니라 아더는 의대생이 된 패치가 무료진료소를 열 때도 도움을 준다. 이런 귀인을 정신병원에서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패치라는 이름을 얻고 방으로 돌아간 뒤 그는 루디가 침대에서 몸을 흔들며 삐걱거리는 통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지만 다람쥐 때문에 못 간다는 루디에게 패치는 또 놀라운 질문을 한다. 

“몇 마린데?” … “다람쥐가 어디에 있는데?”

그리고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루디가 가리킨 곳에 다람쥐를 쏘는 시늉을 한다. 루디는 신이 나서 다른 다람쥐들이 나타난다고 알려주고 패치는 루디의 말을 듣고 바주카포까지 동원해 다람쥐를 다 해치워준다. 드디어 루디는 침대를 뛰어넘어 화장실로 달려간다. 나중에 그는 이 경험을 ‘처음으로 자기 문제를 잊어버린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한 그는 스스로 ‘패치’라는 별명을 자기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며 당당한 모습으로 스스로 병원을 나온다. 

패치patch는 옷감을 수선하는 작은 헝겊조각이나 반창고를 뜻하는 단어다. 종이컵에 반창고를 붙여 더 이상 새지 않게 만들었던 행동으로 그는 사람 패치가 된다. 이미 새는 컵을 완전한 종이컵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새는 곳을 막는 ‘패치’처럼 그는 아픈 사람들을 돕는 의사가 되기 위해 2년뒤 버지니아 의대에 입학한다. 열정에 불타는 패치는 3학년이 되어야 환자를 볼 수 있다는 규칙을 어기고 1학년부터 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만나는 등 남다른 행동 때문에 학장의 눈 밖에 나게 된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자주 찾아와서 환자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패치 덕분에 어린 환자들은 웃음을 되찾아 아픈 검사나 치료를 훨씬 더 잘 견디고, 죽음을 앞두고 분노하던 젊은 남자 환자가 더 이상 간호사에게 변기를 던지지 않게 된다. 노인 환자들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주기도 해 병원에 웃음이 넘치자 간호사들까지 모두 그를 좋아하고 병원 분위기가 밝아진다.

그는 웃음으로 환자들의 엔도르핀이 증가하도록 기꺼이 가운을 입은 광대가 되었고, 환자들을 병명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며 인간답게 대우했으며, ‘지금-여기’에서 그가 도울 수 있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병원에서 행정절차 때문에 바로바로 도움을 못 받는 환자들을 위해서 숲 속에 무료진료소를 열고 친구들과 함께 운영하였다. 웃음치료를 실천하며 환자들이 서로서로 돕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패치가 의사가 되지 못할 뻔했던 위기가 두 차례 있었다. 첫번째는 같이 의학공부를 하던 여자친구 ‘카린’이 무료진료소를 찾아온 우울증 환자 래리에게 살해당한 일이다. 괴로움에 빠진 패치는 자기를 만나지 않았으면 카린은 죽지 않았을 거고 원하던 대로 의사가 되었을 거라고 스스로 자책하면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절벽으로 간다.

분노 속에서 신에게 따지듯이 질문을 던지던 패치는 자기 가방 위에 앉은 나비를 보게 되고 늘 아름다운 나비가 되고 싶었다던 카린의 말을 기억한다. 패치의 가슴에서 다시 패치의 손가락으로 옮겨 앉았다가 날아가는 나비를 보고 패치는 모든 걸 포기하려던 결심을 돌이킨다. 

두번째는 퇴학 위기였다. 광대 같은 패치의 행보가 의사의 권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한 학장은 무료진료소 운영을 불법 의료행위라는 이유로 그를 퇴학시키려 하지만 패치는 의료위원회에 제소하여 스스로를 변호하며 결국 이긴다. 성적은 상위권이었고 그의 자기 변호는 모두를 감동시켰다. 어린 환자들과 보호자들까지 와서 그의 상징인 빨간 코를 만들어 보여주며 그를 지지한 덕분에 그는 졸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소원대로 좋은 ‘의사’가 되었고 졸업식에서까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면서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좋은 롤모델과 나쁜 롤모델을 잘 대비해서 보여준다. 인간애와 유머, 초월성 같은 긍정심리학의 미덕과 강점들을 잘 그려낸 영화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패치가 관점을 바꾸면서 자기 문제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인간애를 실천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과정이 감동을 준다. 코칭적 관점으로 보면 영화에서 다음 네 가지 질문을 얻을 수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1. 패치는 왜 다른 사람을 돕는데 열중했을까?

패치가 의사 가운을 입고 환자들과 웃음을 주고받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 [사진=픽사베이]

병원 룸메이트 루디의 이야기에서 언급했듯이 패치라는 이름을 얻고 난 직후, 루디의 다람쥐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다람쥐들을 물리쳐서 루디가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도와준 그 순간을 패치는 처음으로 자기 문제를 잊어버린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자기 문제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만 해봐도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아주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패치가 자기 문제를 잊기 위해서 남을 돕는 의사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어두움과 빛을 모두 경험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맛본 사람으로서 자신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 결코 권위적인 의사로 다가가지 않았다.

의사 가운을 입고 환자들과 웃음을 주고받을 때 패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 새는 컵은 불완전해서 쓸모없어 보이지만, 새는 부분에 반창고를 붙이면 완전하지는 않지만 쓸모 있어진다. 누군가의 패치가 되기로 결심한 듯, 그리고 과거의 자신에게도 패치를 붙여서 완전히 잊기라도 한 듯 그는 달라졌다. 즉 문제를 보는 관점을 바꾸면서 그는 자신도 변화되고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스스로 패치가 된 시점은 그의 생애에 있어 완벽한 전환점이었다.

2. 패치는 어떻게 사람들의 욕구를 알았을까?

패치는 병원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고 귀를 기울인다. 처음엔 같이 지내고 싶지 않았던 루디의 다람쥐 이야기, 아더 맨델슨의 손가락 이야기, 병원에서 치료받는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까지 그의 관심과 마음은 그의 귀를 열게 했다. 

패치는 먼저 잘 듣는다. 또는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리고 환자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마지막 사파리 사냥을 하고 싶어하는 ‘재키’ 할아버지를 위해 풍선으로 동물들을 만들어 자고 있는 재키 할아버지의 손에 모형 권총을 쥐여준다. 눈을 뜬 재키 할아버지는 눈 앞에 날아오는 풍선 동물들을 향해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그 옆 침대의 ‘케네디’ 할머니에게 질문한다. ‘당신의 판타지는 무엇인가요?’라고… 어린 시절 스파게티 면을 만질 때의 촉감과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언제나 면으로 가득 찬 풀장에서 헤엄치고 싶었다는 케네디 할머니...

여자친구가 죽고 모든 걸 포기하려던 패치가 다시 돌이켰을 때, 병원으로 돌아와서 바로 스파게티 풀장을 만든다. 오랫동안 식사를 하지 않던 케네디 할머니는 스파게티 면이 가득 찬 풀장에서 어린 아이처럼 웃으며 즐거워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웃게 만드는 것처럼 인간답게 존중하는 태도는 없을 것이다. 

패치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그들을 돕는 적절한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경청은 결코 쉽지 않다. 경청이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상대방이 말할 때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생각하느라 집중하지 못한다. 사실상 전혀 듣지 않는 것이다. 경청이 잘 안될 땐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의 말 끝부분을 따라하듯이 속으로 반복하거나 말로 반응해주면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게 된다. 눈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다.

화음과 울림이 잘 어울려야 아름다운 음악이 되듯이 사람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인간 관계에서 대화가 통하는 것처럼 기분 좋은 것은 없다. 두 사람의 대화가 화음처럼 어울리면 마음이 같은 울림으로 공명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대화가 통했다고 느낀다. 통하려면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어야 한다. 그 주파수를 맞추는 방법이 경청과 반응이다.
 
3. 패치의 위기는 어떤 의미일까? 

패치는 왜 래리의 위험성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카린은 첫눈에 그가 매우 불안정하고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패치는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그를 대했다. 무료진료소를 열기 이전에 자해로 응급실에 들어온 래리를 보았고, 그의 문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힘들어하는 래리의 상황이 자신과 똑같아서 그를 객관적으로 못 보았을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방법을 지나치게 자신함으로써 위험성이 작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일반적인 치료보다는 사명감으로 접근해야 하는 특별한 환자를 만났을 때 제3의 관점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스로의 관점 전환도 중요하지만 때론 다른 사람의 관점이 필요하다. 패치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은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이 사실 대부분이다. 그러나 특별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라도 때때로 이런 제3의 관점이 필요하다. 문제나 장애물에 몰두하여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또는 선의와 사명감으로 일을 하는데도 극복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 찾아올 때… 우리에게는 객관적인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코칭은 관점의 전환을 돕는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조명하는 코치의 질문을 받으면 생각이 그 부분을 탐색하면서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늘 안전지대에만 머무를 수도 없고,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그렇게 위험이나 위기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4. 그는 어떻게 ‘죽음’을 남다른 관점으로 보았을까?

패치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마음을 잘 읽었다. [사진=픽사베이]

패치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마음을 잘 읽었다. 그래서 죽음 앞에 분노하던 젊은 환자 ’빌’의 마음도 열 수 있었다. 빌에게는 단순한 위로나 웃음이 아닌 죽음에 대한 직면과 이를 초월하는 블랙유머로 다가간다. 죽음에 대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죽음을 비웃는 것이다. 이는 두려움이나 불안을 오히려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이렇듯 사람마다 다른 방법으로 도움을 주었던 패치는 ‘죽음이 뭐가 어때서요?’라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죽음 직전까지 가본 경험이 있다.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삶 가까이 있는지를 아는 패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고, 자신도 우울에 빠져 스스로 죽음 가까이에 갔으며, 한 순간에 사랑하는 카린을 잃었다.

누구보다 치가 떨리도록 죽음을 멀리하고 싶을텐데도 패치는 오히려 ‘왜 죽음을 인간답고 품위있게, 예의바르고 유머있게 다루지 못하느냐’고 반문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 어떤 것보다도 압도적이다. 일단 두려움에 압도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줄로 꽁꽁 묶어놓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죽음이란 인간의 힘으로 막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를 가장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런데 패치는 우리의 적은 죽음이 아니라 가장 지독한 병인 ‘무관심’이라고 한다. 의사란 죽음을 막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하는 사람이라는 철학을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패치는 이렇게 죽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동료 의대생들에게는 "성적에만 초점을 두지 마, 성적은 네가 어떤 의사가 될지 못 가르쳐줘."라며 인간 신체의 놀라운 작동에 초점을 두고 삶의 기적에 무감각하지 말라고 한다. 패치는 이처럼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바뀌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으로 인한 자기상실이 사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보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모두 정신에서 나온다.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죽음은 삶의 일부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누구나 죽게 된다. 죽음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면 좋겠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했을 때 두렵다면 그 두려움을 한번 직면해보자. 

패치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준다. 하나하나 생각해서 써보고 관점을 바꿔본다면 작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게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Q 1. 나는 지금 무엇에 초점을 두고 있는가?

Q 2. 초점을 옮겨 그 너머를 보면 무엇이 보이는가?

만약 패치에게 그 이름을 준 아더 맨델슨 같은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면 지금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자. 거울 속의 자신에게서 무엇이 보이는지 초점을 옮기면서 발견해보자. [시사캐스트]

 

HRD아트커설팅 시네마심리코치 이신애.

저서 :
<불안코칭-영화로 읽는 불안과 시네마코칭>
<우주감기 - 영화가 읽어주는 우울증>

번역서 :
<영화, 심리학과 라이프코칭의 거울>
<수퍼비전 : 조력전문가를 위한 일곱 눈 모델>
<마스터 코치의 10가지 중심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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