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SISACAST= 박이슬 문화평론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연다.
분명 먹을 것은 있다. 계란도 있고, 두부도 있고, 며칠 전 야심 차게 사둔 채소도 있다. 문제는 음식이 없는 게 아니다. 나에게 남은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다.
아침의 나는 꽤 건강한 사람이었다.
“오늘은 진짜 집밥 먹어야지.”, “배달 좀 줄여야지.”, “냉장고에 있는 것부터 처리해야지.”
그런데 밤 9시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신발을 벗는 순간부터 이미 방전 상태다. 가방을 내려놓고, 씻고, 잠깐 소파에 앉으면 끝이다. 냉장고 안의 재료들은 나를 향해 조용히 말하는 것 같다.
“나 아직 여기 있어.”, “너 나 사놓고 또 배달 시킬 거야?”
미안하지만 그렇다. 오늘도 배달 앱을 켠다.
1인가구에게 배달 앱은 단순한 유혹이 아니다. 어느 날은 거의 구조 요청 버튼에 가깝다. 요리를 하기 싫어서라기보다, 요리까지 도달할 힘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의 식사는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메뉴를 정하고,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하고, 먹고, 설거지하고, 남은 재료를 보관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한 끼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나눌 수 있는 일이지만, 1인가구에게는 전부 혼자의 몫이다.
게다가 1인분은 이상하게 늘 비싸다.
대파는 한 단으로 팔고, 양파는 한 망으로 팔고, 두부는 한 모로 판다. 혼자 먹기에는 많고, 버리기에는 아깝다. 소분 제품은 편하지만 가격이 높다. 절약하려고 장을 봤는데 며칠 뒤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는 채소를 발견하면, 돈만 아까운 것이 아니다. 이상하게 마음까지 찔린다.
“아.. 조금 더 부지런할 수는 없나?”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성실함 문제가 아니다. 1인가구의 생활은 애초에 1인분에 친절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가족 단위, 대량 구매, 공동 식사에 맞춰진 시스템 안에서 혼자 사는 사람은 계속 조금씩 손해를 본다.
배달도 마찬가지다. 배달비는 혼자 낸다. 최소 주문금액도 혼자 채운다.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을 시키고, 남은 음식은 다음 날 또 먹는다. 그러면서도 결제 버튼을 누른다. 왜냐하면 그 순간 필요한 것은 완벽한 식사가 아니라,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가 사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다.
칼질하지 않을 자유, 설거지하지 않을 자유, 메뉴를 더 고민하지 않을 자유, 오늘 하루의 마지막 체력을 아껴둘 자유를 산다.
그래서 어떤 1인가구의 배달·외식·편의점 지출은 한 달에 45만~50만 원은 우습게 올라간다. 숫자만 보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식비만 들어 있지 않다. 다음날 삶을 영위하기 위한 비용,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생활노동을 잠시 외주화하는 비용이 들어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체력 방어비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가 육아나 가사를 외주화하는 현실은 비교적 쉽게 이해한다. 시간이 없고, 돌봄이 부족하고, 두 사람이 모두 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구조라고 말한다. 그런데 1인가구가 식사를 외주화하는 것에는 여전히 박한 시선이 따라붙는다.
“집에서 해 먹으면 되잖아.”, “배달 줄이면 돈 모을 수 있잖아.”, “조금만 부지런하면 되잖아.”
물론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너무 쉽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재료비를 아끼는 일이 아니다. 시간, 체력, 조리 공간, 보관 능력, 마음의 여유가 모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특히 하루 종일 무언가에 찌들어서 살아낸 1인가구에게 저녁 식사는 작지만 꽤 무거운 과제가 된다.
문제는 이 지출이 조용히 쌓인다는 데 있다. 월세나 관리비처럼 한 번에 크게 빠져나가는 돈은 눈에 잘 보인다. 하지만 배달비, 편의점 간식, 카페 음료, 외식비는 작은 결제로 흩어진다. 오늘 1만 원, 내일 1만 5천 원, 주말에 2만 원. 그러다 월말이 되면 통장 앞에서 잠시 멈춘다.
“내가 뭘 이렇게 많이 썼지?”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돈은 많이 먹어서 쓴 돈만은 아니다. 너무 지쳐서 쓴 돈이다. 피곤해서 돈을 쓰고, 돈을 쓴 뒤 불안해지고, 불안해진 마음은 다시 나를 지치게 만든다. 그리고 지친 몸은 다시 가장 쉬운 선택을 한다. 배달 앱, 편의점, 외식. 이 순환은 의지만으로 끊기 어렵다.
그러니 1인가구에게 필요한 것은 잔소리가 아니다. “배달 줄여라”는 말보다 필요한 것은 혼자 사는 사람도 무리하지 않고 건강한 한 끼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다. 1인분 식재료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되고, 퇴근 후에도 이용할 수 있는 동네 기반 건강식이 늘어나고, 혼자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식사 선택지가 많아져야 한다.
1인가구 정책도 이제 고독사 예방이나 주거비 지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혼자 사는 사람의 일상은 주거 안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먹고, 쉬고, 회복하고, 다시 일어나는 생활 전체가 중요하다. 특히 식사는 생존의 기본이면서도 가장 자주 뒤틀리는 영역이다.
우리는 1인가구의 식생활을 조금 덜 도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배달 앱을 켰다고 해서 자기관리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고 해서 삶을 대충 사는 것도 아니다. 어떤 밤에는 그것이 하루를 버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니 1인가구와 대화할 때 발상의 전환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왜 또 배달을 시켰을까가 아니라,
왜 오늘은 밥을 차릴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까.
왜 돈을 아끼지 못했을까가 아니라,
왜 혼자 사는 한 끼는 이렇게 비싸고 번거로울까.
왜 의지가 약할까가 아니라,
왜 우리의 생활환경은 방전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일을 요구할까.
1인가구의 밤은 조용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냉장고 앞에서 망설이고, 배달 앱을 열었다 닫고, 결제 버튼 앞에서 잠깐 죄책감을 느끼는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살림의 부담, 노동의 피로, 돈에 대한 불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생활의 무게가 모두 그 안에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배달 앱을 켠다. 그 손끝에는 단순한 식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은 마음, 내일도 무너지지 않기 위한 계산, 오늘 하루를 간신히 마무리하려는 작은 생존 본능이 있다.
그러므로 1인가구의 배달비를 너무 쉽게 낭비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때로 밥값이 아니라 체력값이다.
사치가 아니라 방어다.
게으름이 아니라, 혼자 사는 삶이 매일 치르는 조용한 생활비다. [시사캐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