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8 10:30 (화)
[Journey의 싱글라이프-㊷] 사람의 '결'
상태바
[Journey의 싱글라이프-㊷] 사람의 '결'
  • Journey
  • 승인 2021.08.24 13: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칼럼니스트 Journey)

 

인간관계에 있어 흔히 접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너는 그 사람과는 의외로 가깝게 지내지 않더라?"
"우린 좀 결이 달라"

 

 '결'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

 

성품이 좋건 아니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표현했을 경우 아마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필자도 이따금 이 말을 사용한다.

미국에서 잠시 한국에 입국한 지인 언니와 오랜만의 회포를 풀기위해 3명이 함께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20년 넘은 관계에 오랜만이라는 시간의 벽은 크지 않았고 우린 이내 20년 전 어린 아이들처럼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문득 미국의 그녀가 물었다.

"며칠 전에 OO이도 만났어. 너무 오랜만인데 궁금해서 봤는데 애들은 어쩜 늙지도 않더라."

해맑게 이야기 하는 그녀의 입에서 OO이의 이야기가 나오자 친구와 나는 순간 눈을 마주치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미국의 그녀에게 물었다.

"언니, 원래 걔랑 친하게 지냈던가?"

"아니, 한국에 잘 못 오니까 온 김에 어릴 적 애들 보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으로 DM 보내서 만났어."

그러자 나보다 더 냉정한 내 친구는 언니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언니, 걔는 안 만나도 돼. 그 애랑 어울리면 언니가 이상한 부류로 오해받을 수 있어."

이렇게 차갑고도 냉소적일 수가!

영문을 모르는 미국 언니는 당황했고 나는 친구를 도와 이내 부연 설명을 해나갔다.

"언니, 그냥 그 아이는 결이 다른 사람이야. 언니와도 우리와도 많이 달라. 20년을 지켜본 결과 그 아이와 얽힌 사람들 모두 끝이 안 좋았어. 얘는 언니를 걱정해서 오랜 만남을 할 사이는 아니라고 말하는 거야."

결이 다르다. 냉소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런 부류의 사람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한마디로 그냥 싫어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경우는 지인의 모임에서도 경험한 바가 있다.

재벌 3세들의 모임이 있다. 그들은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사교클럽에 모여 세미나를 한 후 디너를 하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항상 디너 후에 진하게 애프터를 했다.

나의 지인인 몇몇의 멤버 외에 가끔 디너 자리에 부르곤 했던 그들의 동생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는데 막상 멤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리에서는 그들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멤버들에게 물어봤다.

"지난번에 봤던 OO이는 자주는 안 만나시나 봐요? 꽤 친한 동생 같던데."

그러자 멤버 두 명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나에게 말했다. 마치 나와 내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아...가끔 봐. 걔는 좀 뭐랄까...결이 달라. 동생이니까 뭐 가끔 우루루 몰려오면 보는 거지."

그들을 지켜본 결과 그들 사이에도 멤버를 나누는 기준이 있는데, 나는 처음에 이들이 나름의 기준으로 진골이냐 성골이냐를 가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원래 3세들의 멤버도 아니었지만 한참 동생 형들이랑 너무 친해지려고 애를 쓰니까 오히려 관계가 어색해진 것이다. 결국 그는 멤버들 사이에서 “우리와는 좀 다른 결을 가진 아이”라고 정리되어 버렸다.

주말에 절친한 동생과 점심을 먹다가 그의 연애 근황에 대해 들었다.

최근 이별을 결정했는데 아직 말을 못했다고 한다. 상대방 여성은 멋진 외모는 물론이고 투 잡을 뛸 정도로 열심히 사는데다가 자신에게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고 요리도 잘한다면서 칭찬을 늘어놓더니 이내 이별을 결정했다고?

헤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다 훌륭한 분이시긴 한데...그냥 우리랑 뭔가 좀 달라. 그분이 가진 좋은 것들이 좋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다른 무언가가 불편해"

남자치고는 꽤나 섬세하고 고상한 취향을 가진 동생의 기준에 못 미치는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이 문제였다.

좋은 것을 함께 해도 충분하게 채워지지 않고 무언가 비어있다는 느낌이 드는 기분. 

그녀는 그를 위해 그가 좋아하는 골프를 배우고 그가 편하게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장소까지 마련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별의 대상이 된 계기는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그를 위해 주말여행을 계획한 그녀, 놀러가서 먹을 것을 혼자 잔뜩 장을 봐놓고 숙소예약에 서핑을 위한 각종 렌탈 예약까지 모두 마쳐놓았다고 한다. 

막상 그녀가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니 강원도에 있는 한 펜션이었는데, 동생은 그 펜션에서 자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다고 했다. 동생은 원래부터 혼자서 호텔에서 주말을 보낼 정도로 호텔을 너무나 사랑하는 친구였다. 그녀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그의 취향과 성향, 이런 모든 것이 여행 내내 그는 얼마나 불편하고 거슬렸을지 상상이 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동생과 나는 8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 만나지만 만날 때마다 우린 기본 10시간 정도는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저 이야기를 할 뿐인데 말이다.

그와 나는 10년 지기 사이로 우리는 참으로 결이 비슷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외모까지 닮아 남매가 아니냐는 이야기는 수억번 들었고 음식 취향, 와인 취향, 골프를 좋아하고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한다. 주기적으로 혼자서 시간 보내는 것을 반드시 해줘야 하는 성격에 놀랍게도 우린 사주풀이마저 똑같다.

이렇게까지 나를 닮은 사람을 만나면 이유 없는 편안함과 함께 안도감이 생긴다. 

또 다른 나와 종일 이야기를 하니 거슬릴 것이 없고 내내 존중이 되고 혼자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다. 그러니 시간가는 줄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사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결이 같은 사람들은 서로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면서 또 다른 내 편으로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기분이다.

반대로 결이 달라서 불편한 관계가 사실은 대부분이 아니던가 싶다.

심지어 부모와도 잘 맞지 않는 경우는 수두룩하고, 부부나 오랜 연인도 참으로 많이들 다투고 서로 미워한다. 친구나 지인이야 그야말로 생판 남이니 언제든 정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인간관계 아니던가? 

결이 맞다 못해 결이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경험은 태어나서 어쩌면 한 번도 해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에 당신과 비슷한 결을 가지거나 운 좋게도 거의 흡사한 사람을 만난다면 절대로 놓치지 말고 가까이 두고 살도록 하자. 

우린 사실 곁에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나, 가장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단 한명만 있어도 내 삶은 결코 외롭지 않다.

 

@사진=픽사베이

지금 당신의 삶에서 가장 결이 비슷한 분신같은 존재는 누구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