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47 (금)
[Journey의 싱글라이프-52회] 분노의 한해를 보내고 비움의 한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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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의 싱글라이프-52회] 분노의 한해를 보내고 비움의 한해를
  • Journey
  • 승인 2022.02.0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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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칼럼니스트 Journey)

 

설날을 맞이한 아침, 나의 첫 외출지는 동네의 한 커피숍이었다.
밤새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예쁜 풍경, 새해의 개운한 바깥공기도 마실 겸 따뜻한 니트를 입고 커피숍로 향했다.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무언가 시끌시끌하다. 

한 가족일행이 점원에게 큰 소리로 항의하고 있었는데 계속 사과하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점원이 죄송하다고 하자 갑자기 이리 와서 제대로 사과하라고 하더니 소파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어쩔 줄 모르며 재차 사과를 해보지만 가장으로 보이는 50대 초반의 남성은 계속 큰 소리로 왜 일을 크게 만드냐며 더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무릎이라고 꿇으라는 기세네...' 

나는 갑자기 불쾌해진 기분으로 계산을 하고 있는데, 문을 박차고 나가던 남자도 이런 상황에 화가 났는지 혼잣말을 하면서 떠났다.

"목소리 큰 게 유세다 유세야 아주!"

점원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커피숍에서 대단한 잘못을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중년남성의 어머니로 보이는 70대  할머니도 아들이 하는 말에 맞장구를 치며 계속 "사과해! 사과하라고!"만 외치고 있었다.

나이도 지긋하게 먹은 양반들이(역설적인 표현으로 양반은 아닌 것 같지만) 20대 아들뻘이자 손주뻘의 점원에게 그렇게 모질게 몰아치고 소리를 지르며 모든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모습을 보고 문득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무언가에 화가 많이 나있다

집에 돌아와 분노의 가족에 대한 잔상을 지우고 싶어 온라인 뉴스를 뒤적거리는데 또 다른 분노의 노인에 대한 기사가 보인다.

대구에서 65세 남성이 호떡집에서 호떡을 안 잘라줬다고 끓는 기름에 호떡을 던지는 바람에 주인이 화상을 입은 것이다. 그는 결국 징역 1년을 받았다고 한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한결 같았다. 

'곱게 늙어라', '사회생활 불가능자', '죽이는 게 낫다', '태형을 부활시켜라'...

댓글에도 묵은 분노들이 가득하다. 

피해자가 내 가족이나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이런 심정일 것이다. 

끝까지 붙들고 싸우겠지. 1년은 너무 적다고...추가적인 징역이나 벌금 등 그 사람의 반인륜적 행동에 대한 대가를 아주 혹독하게 치르기를 바랄 것이다.

며칠 전 일을 하다가 갑자기 나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상사의 모습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며칠동안 그 불편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상사들과 수평적 관계로 일을 하던 내게 최근 생긴 수직적 관계는 이미 내가 이전의 내가 아님을, 이전에 참던 것을 참지 못하고 아니 더 이상 참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사는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누구도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화를 내거나 협박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해서는 안된다. 그 누구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부모요, 자식이며 형제고 친구이므로 인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다면 남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배려를 잘하는 사람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지능이 높아서 남의 기분까지 미리 고려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 관계를 탄탄하고 온화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에게 화를 내는 일이 이미 일상인 사람들이 있다면 100% 확신할 수 있는데, 그는 아주 외롭고 고단하게 살다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이 아무리 돈이 많건 사회적 지위나 명성이 있건 인성이 괴팍한 것은 그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듣기 싫은 성난 말을 하지 말라.
남도 그렇게 너에게 대답할 것이다.
악이 가면 화가 돌아오니
욕설이 가고 주먹이 오간다.

-공자-

지인 중에 이혼전문변호사가 있는데, 그녀는 명절이 지나면 유독 바빠진다고 했다.

부부들의 해묵은 분노들이 터지는 빈도수가 설, 추석 연휴에 가장 많기 때문이란다.

명절 상차림 노동 등의 가사 노동 차별에 대한 관행으로 인해 각자의 이유로 오랜 시간 참아왔던 부부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이 터져버리면서 주워 담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르는 일이 많단다.

특히 남편들의 무심한 한마디가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말들이다.

"하루 음식 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어머니가 하실 순 없잖아"
"아무리 멀어도 우리가 가야지 그럼 오시라 그래?"

그렇다. 아주 결정적이다.

같은 말이라도 더 예쁘게 할 수 있을텐데...역시 지능 문제일까?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6년에 접수된 이혼 신청은 총 10만8880건으로 하루 평균 298건 수준이었다. 그러나 설날과 추석 전후 10일 동안은 577건으로 두 배가량 껑충 뛰었다. 연간 이혼의 20%가 이때 집중되는 것이다. 특히 설 연휴 직후엔 하루 838건, 추석 후엔 1,076건의 이혼 신청이 들어왔다. 
[출처 : 뉴스렙(http://www.newsrep.co.kr)]

최근 지인들의 설 근황에 대해 물었을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번 연휴는 조용히 보낸다는 답을 받았다. 코로나가 극성인데다가 물가는 치솟고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서로 만남을 자제하기로 했다고 한다.

조용히 서로 만남을 자제한다는 것은 이전처럼 온 친척들이 모여 음식을 해먹고 며칠 씩 한집에서 함께 묵으며 차례를 지내고 조상의 산소를 찾는 것을 생략한다는 것이었고, 식구들과 가까운 지방으로 여행을 가거나 집에서 가만히 쉰다는 말이다.

여전히 지방의 부모님 댁을 찾아뵙고 차례를 지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음식은 명절음식 전문 가게에서 소량만 구매해서 처리하고 가족끼리 오붓한 한끼를 먹는 정도라고 했다.

싱글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지인들은 연휴 내내 그간 못했던 여가들을 보내는데, 와인 애호가는 낮부터 밤까지 와인바에 앉아있겠다고 했고, 죽어라 일만하던 한 회사원은 연휴 첫날 백화점 쇼핑을 시작으로 배달음식과 밀린 넷플릭스를 보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꽉 채우겠다고 했다. 부모님들과는 전화 한통화로 명절인사를 대신했고 세상이 잠시 쉬어가는 연휴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계획이라고 하는 싱글들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분노의 시간들이 많이 줄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언젠가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싸움이 아니라 안부조차 묻지 않고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3년째 계속되는 코로나 블루, 경기 침체, 물가 상승 등으로 사람들의 시린 마음 한구석을 꿰차고 들어온 분노가 연휴를 끝맺음으로 인해 역시 사그러들기를 바라며 배려 넘치는 지능적인 새해를 맞이하길 바란다. [시사캐스트]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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