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SISACAST= 김선우 스페셜MC 대표)
어린 시절, 어른들이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시험 날짜가 다가올 때 빼고는 그리 빨리 가는지도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요즘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을 체감 중이다.
분명 모두에게 주어진 1년은 365일로 같은데, 10대에 느껴지는 시간이 다르고 20대에 느껴지는 시간, 30대와 40대에 느껴지는 시간이 왜 다른 걸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세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렀는데, 크로노스, 아이온, 카이로스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우리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기도 하면서 연속적인 시간인 것이다.
아이온은 그리스어로 영원을 뜻하며, 동시에 고갈되지 않은 창조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아이온은 순환적인 시간으로 이번 생 말고도 다음 생이 있다고 믿는 것이며, 불교나 힌두교에서 뜻하는 윤회의 개념이다.
즉, 선한 생을 살게 되면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자식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이 대물림된다는 뜻이다. 카이로스는 그리스어로 적절한 기회라는 의미로, 순간적으로 주어지는 기회, 운명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즉, 적절한 시기를 의미하며, 개개인의 주관적인 시간이다.
누군가에게 도약하는 단계가 20대라면 누군가에게는 30대일 수도 있고, 40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 카이로스를 경험하는데, 즐거움을 느끼거나, 행복한 느낌을 받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설렘을 느끼는 그 순간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객관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 주관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에 따라 시간의 흐름은 같게 느껴지기도,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시간은 개인차가 큰 것일까?
시간은 안정적이고 일상이 반복될수록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TV만 하루 종일 보는 휴일을 맞이한 적이 있을 것이다. 눈뜨니, 정오에 가깝고, TV 잠깐 보다 보니, 해가 지기 시작한다. 회사에 출근해서 일할 때보다 시간이 훨씬 순삭인 느낌이 든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휴일에 여행을 갔다고 해보자. 새로운 볼거리, 먹을거리에 비교적 하루가 알차고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반복된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느껴지는 시간의 빠름은 그만큼 안정적이고 반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자극이 줄면 시간의 빠름을 경험한다. 취업을 준비했던 시간을 생각해 보자. 채용에 대비해 스터디에도 참여하고 매번 뜨는 공고 체크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적이 있을 것이다.
미래라는 불안정 한 스푼과 1차 면접, 2차 면접이라는 합격, 불합격 발표로 하루의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그 시간은 힘들기도 하면서 왠지 더 더딘 느낌이 든다.
20대는 여러모로 자극이 있는 삶이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해외봉사활동, 공모전, 인턴 등 다양한 경험을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취업을 하고 나서 점차적으로 삶의 안정감을 얻어 가면서 자극은 줄게 되고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줄기 때문에 시간이 빠르다고 느낀다. 어린 시절에 다채로운 경험들을 하고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반면에 어른이 되면, 이미 해 본 일이거나, 경험치가 생겨버린 일이기에 예측이 가능하므로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시간에 관한 과학적 탐구를 담은 앨런 버딕 저자의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라는 책에서 ‘사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한 것처럼 기억할 시간이 많아야 그만큼 더디게 간다고 느끼고, 기억할 시간이 없으면 빠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처럼 우리에겐 똑같은 1년 365일, 하루 24시간, 1시간 60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안정적으로 흐르고 자극이 적어지며, 기억할 시간이 적어지면서 빠르게 흐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즉, 안정적인 30대와 불안정한 30대는 각자 다른 주관적인 시간을 느낄 것이며, 안정적인 30대와 안정적인 40대는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동시에 느낄 수도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 20대에 정말 알차게 썼다면, 30대에는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도 되고, 30대에 치열했다면, 여유 있는 40대를 보내면 되지 않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너무 쫓겨서도, 너무 혼자만 더디게 걸어가지도 말고, 카이로스의 시간처럼 기회의 시간들을 만들어 나가면서 기쁨과 즐거움, 설렘도 느끼는 하루이길 바란다. [시사캐스트]